생각만으로 컴퓨터 조종? 성큼 다가온 미래, BCI
[IT동아 권택경 기자] 우리가 컴퓨터를 조작할 때를 생각해보자. 키보드로 원하는 글자를 눌러서 입력하거나, 마우스로 원하는 메뉴와 아이콘을 클릭한다. 스마트폰을 조작할 때도 키보드와 마우스 대신 손가락을 이용할 뿐 기본 원리는 같다.
이처럼 우리가 기계와 상호작용을 하게 돕는 입력장치나 입력환경 같은 매개를 '인터페이스'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키보드나 마우스, 손가락을 쓸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조작할 수 있으면 어떨까?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지난 9일 유튜브에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뇌에 칩을 이식한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원숭이 뇌에 이식된 칩 때문이다. 원숭이가 조이스틱을 조작할 때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 즉 뇌파를 칩이 기록하고 분석해서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렇게 뇌와 컴퓨터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라고 부른다. SF영화를 즐겨본다면 아주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뇌에 직접 컴퓨터를 연결해서 가상현실로 들어가는 것도 BCI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의외로 가까운 미래
BCI는 미래에서나 가능한 기술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미 7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2010년대 이후에는 어느덧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전 세계 BCI 시장은 12억 달러 규모였다. 2027년에는 37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아무래도 의료나 군사 분야처럼 한정된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다 보니, 일반인들이 널리 관심을 가질만한 제품이 많지는 않다.
BCI는 크게 침습형과 비침습형으로 나뉜다. 침습형은 앞서 말한 뉴럴링크 사례처럼, 뇌에 직접 마이크로칩을 이식하는 형태다. 정확도는 높지만, 뇌에 직접 이식하다 보니 부작용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도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칩을 심으려면 두개골을 열어야 하니, 지금 단계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여지기 힘든 기술이다.
그에 비하면 비침습형은 부담이 훨씬 덜 하다. 머리에 헤드셋이나 헬멧 형태의 장비만 쓰면 된다.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두개골을 열 필요도 없고 언제든지 썼다 벗었다 할 수 있으니 접근성도 높다. 현재 개발되고 있거나 출시된 BCI 제품 대부분도 비침습형 제품이다. 먼 미래에는 몰라도, 당분간 상용화되는 BCI 제품들은 대부분 비침습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BCI,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BCI가 가장 널리 연구되고 활용됐던 영역은 의료 분야다. 뇌 질환 예방 또는 치료하는 용도로 쓰거나 신경손상 환자 재활에 활용할 수 있다. 가령 손상된 뇌 기능 일부를 대신하는 칩을 이식해 뇌 질환을 치료한다거나, 팔다리가 마비된 사람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나 휠체어를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
BCI로 자동차나 비행기, 드론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실제로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지난 2019년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비수술적 미래를 향한 6가지 경로'라는 자료를 통해 활성 사이버 방어 시스템 및 무인 항공기의 제어 등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군사 분야는 의료 분야 다음으로 BCI 활용 연구가 활발한 곳이다. DARPA는 지난 2009년에는 '조용한 대화'라는 프로젝트에서 말을 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신경신호를 직접 주고받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텔레파시로 의사소통하는 기술인 셈이다.
아직은 먼 미래같지만, 인간 뇌를 인공지능 컴퓨터와 연결해 그 능력을 확장하는 일도 상상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도 뉴럴 링크의 장기적인 목표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생을 말한 바 있다. 혹시 바둑기사 인공지능 훈수 사건을 들어봤는가? 지난해 1월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45회 입단시험에서 한 바둑기사가 몰래 인공지능을 참고해 바둑을 뒀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만약 BCI로 뇌를 인공지능에 직접 연결한다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몰래 볼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서 인공지능의 보조를 받아가며 바둑을 두는 일도 가능해질지 모른다.
최근 현실에 가까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가 떠오르면서 주목받는 AR·VR(증강·가상현실) 업계에도 BCI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나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을 보면, 현실과 분간이 불가능한 수준의 가상현실 세계가 등장한다. 이 정도로 실감 나는 가상현실을 구현하려면 BCI가 필수다. 현재 VR 기기들은 작은 디스플레이를 렌즈로 확대해서 시야를 채우는 형태인데, BCI 기술이 발달하면 시청각 신호를 뇌에 직접 전달하는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
미래 먹거리로 AR·VR 사업을 밀고 있는 페이스북은 지난 2019년 BCI 스타트업인 컨트롤랩스(CTRL-labs)를 인수하기도 했다. 컨트롤랩스는 손을 움직일 때 뇌가 보내는 전기적 신호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한 업체다. 페이스북은 현재 VR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에서 카메라로 손 움직임을 읽어서 물리적인 컨트롤러를 대체하는 '핸드트래킹' 기술을 선보인 바 있는데, 나중에는 BCI 기술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 개발사 밸브도 BCI에 관심이 많다. 밸브 회장 게이브 뉴웰은 지난 1월 뉴질랜드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갈레아'(Galea)라는 오픈소스 BCI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뉴웰이 얘기하는 BCI는 지금 단계에서는 ‘메타버스’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BCI로 뇌의 신호를 읽어서 수집한 데이터를 개발자들이 활용하거나, 이용자가 느끼는 감정에 게임이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정도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게임을 하다 지루함을 느낄 경우 난이도를 높여서 게임에 좀더 몰입하도록 한다. 그러나 뉴웰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BCI로 실감나는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뇌도 해킹 당할 수 있다?
이쯤되면 이런 걱정을 안할 수가 없다.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면, 뇌도 해킹당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실제로 지난 2016년 미국 워싱턴 대학 바이오로봇 공학연구소 연구진은 BCI로 개인 정보를 빼가는 등 악용이 가능하다면서, 늦기 전에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BCI가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뇌에 이식한 칩으로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그런 시술을 받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수 있다.
너무 섣부른 걱정일지 모르지만, 갑자기 밀려온 변화의 물결에 허덕이기 전에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