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 30년 한 우물 파는 '물' 전문기업, 원봉 루헨스
[IT동아]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국에 최대 화두는 누가 뭐래도 '위생'이다. 바이러스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각자가 개인건강과 위생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감이 돈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2020년 한국의 국제 위상을 분명히 바꿨다. 이른 바 K-방역이 '코리아 포비아'를 잠재웠듯, 국민,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친다면, 언제나 그랬듯 위기를 이겨내리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밤낮없이 노력해도 경기 침체를 막을 수는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해 3분기 수출액은 1,304억 2,000만 달러로, 작년 3분기(1,347억 1,000억 달러) 대비 3.2% 줄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가전업계는 기술, 자본, 노동집약적 특성을 모두 가져 국내외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데도 오히려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시대의 고객 요구에 맞는 '위생가전'을 전면 배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 품질, 성능, 공급능력 등을 갖춘 가전기업은 한국 수출시장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표 사례인 한 기업은 올해 상반기 방역강국 이미지를 등에 업고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지난 해에는 2019년 대비해 16% 성장해 매출 정점을 찍기도 했다.
전체 매출의 64%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는 'K-정수기' 선두주자인 기업. 전에 없던 위기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이 기업이 궁금하다.
위생가전 제조사 '원봉', 29년째 한 '우물'에만 집중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영향력이 확장된 위생가전 제조사 원봉. 최근 국내에서는 '루헨스(Ruhens)'로 알려지며, 외국기업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원봉은 1991년 설립된 국내 토종 기업이다. 주요 제품군인 정수기/냉온수기, 공기청정기 등으로 국내보다 해외 기업(B2B) 시장에 먼저 안착했다. 현재는 자체 브랜드인 루헨스 뿐 아니라, 국내외 기업 대상으로 ODM(제조자개발생산) 형태로 제품을 직접 개발, 생산, 공급하고 있다.
과거 원봉은 쿠쿠, LG전자, 동양매직(현 SK매직) 등 국내 가전업체 정수기 대부분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 ODM 형태로 생산해 각 주문사에게 납품했다. 국내 가정이나 사무실, 매장 등의 한 구석에 정수기를 자리잡게 한 숨은 주역인 셈이다.
창업자인 김영돈 회장은 생수 시장 성장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오랜 해외무역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윽고 원봉은 국내 최초로 생수(통)를 정수기 통에 얹어 사용하는 냉온수기(정수기)를 생산, 판매하기에 이른다.
지금이야 생수 음용이 일상이 됐지만, 1980년대 국내 생수시장은 그야말로 불모지였다. 내국인 대상 생수 판매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생수 판매금지' 조치는 1994년 헌법재판소가 '행복추구권(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을 침해한다고 선언하면서 해제됐다. 이후 원봉 냉온수기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위생가전 누적 생산량은 770만 대를 돌파했다.
60여 개국 진출, 일본과 싱가포르 '냉온수기/정수기' 시장 1위
원봉은 1993년 동종업계에서 가장 먼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물론 글로벌 진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이른 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영향을 미쳤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이 실제보다 주가를 낮게 평가받는 현상을 말한다. 군사 대치와 재벌기업 지배구조, 높은 수출 의존도, 경직된 노동시장 등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주 원인이다. 당시 국가 브랜드로 명품 이미지를 구축한 이탈리아 기업 이야기는 한국 중소, 중견 수출기업에게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원봉은 기업풍토이기도 한 '정직, 혁신, 신뢰'로 승부수를 걸었다.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건 일본 시장이었다. 일본은 냉온수기 사용량이 유난히 많은 만큼, 매우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해야 인증마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인들에겐 우수제품으로 인식된다. 원봉 제품만 찾는 일본 상위 플레이어가 꾸준히 나올 정도였다.
이후 현재는 중동, 유럽연합(EU), 러시아 등 세계 6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2017년에는 '7000만달러 수출탑’도 수상했다. 정부로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국내외에서 받은 품질인증 마크도 지난 해 기준 120여 건에 달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옛말, 코로나 이후 '코리아 프리미엄' 주도
코로나19 사태는 소비 트렌드도 변화시켰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언택트(비대면) 문화를 빠르게 확산시켰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위생과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위생가전 시장이 초반부터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분기 공기청정기 수출은 2020년 1분기 대비 178.5% 늘었고, 진공청소기(46.1%), 의류건조기(53.7%), 정수기(20.6%), 비데(117.0%)도 급증했다. 이 흐름은 3분기까지 이어졌다. 특히 해외 인지도가 높았던 원봉에게는 이 흐름을 타고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원봉이 전 세계 시장에서 인정 받은 이유는, 한류와 방역강국 이미지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해마다 전체 매출의 2%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기술력을 다지고 있다. 30년째 뚝심있게 깨끗한 물과 공기를 연구한 결과, 120개 주요 인증과 특허를 획득했다.
정수기, 냉온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제습기는 물론, 정수기 성능의 핵심인 필터까지 100%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하고, 모든 제품은 김포 본사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다. 업계에서 원봉을 두고 '코리아 프리미엄('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반댓말)'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원봉은 수출 제품 앞면에 태극기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문구를 표기한다. 제품 박스에도 한글을 적어 한국 제품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게 해외 바이어 요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시대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다. 그 동안 해외시장에서 조용히 저력을 발휘하던 원봉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해 3분기 매출은 2019년 3분기 대비 정수기/냉온수기는 14%, 공기청정기는 무려 516%나 증가했다.
원봉은 빨리 가려고 애쓰지 않았기에 멀리 갈 수 있었던 '뚝심'과 오랜시간 한 분야에 집중하며 쌓은 '기술력', 그로 인해 얻은 '시장경험'을 성장의 원동력이라 여긴다. 다만 올해도 여전히 재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수요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 최근 실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글 / IT동아 강화영(hwa0@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