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독서교육에 디지털 변환 시도한 세계사 선생님, 서울 광영고 최보임 부장교사

장현지 hj@itdonga.com

[IT동아 장현지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초중고등학교 내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 교과 외 활동도 침체, 축소되면서 학생들의 경험에 큰 제한이 생겼다. 그렇다고 학교와 일선 교사 입장에서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이에 일률/일반적인 교내 독서활동을 오디오북 제작을 통한 학생 주도적인 탐구활동으로 '디지털 변환'을 시도한 교사가 있다.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광영고등학교(인문계 일반고, 학교장 이건구)의 최보임 부장교사다.

서울 광영고등학교는 1984년 설립된 인문계 남학생 사립 고등학교(이사장 손광수)로, 광영여자고등학교와 함께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해 있다.

인터뷰 중인 광영고등학교 최보임 선생님
인터뷰 중인 광영고등학교 최보임 선생님

정보/기술 담당도 아닌 세계사 담당교사가 오디오북 제작을 추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Boys Voices Project'라는 활동인데, 기획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학생들의 생기부(생활기록부)에 기록될 좋은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어 시작했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고려하는 학생에게는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유의미한 활동이 입시에 매우 중요하다. 중점을 둔 건, 천편일률적인 독서활동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흥미와 관심을 가질 만한 기회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난 2019년에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서(書, 책)로 성장하는 교실' 사업을 접했고, 교사가 학생에게 전달/지시하는 일방적 독서/독후 활동이 아닌, 학생이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독서 내용을 학생 목소리로 직접 녹음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학생들에게는 오디오북 제작 활동이 생소했을 거라, 추진하면서 예상치 못한 여러 난관에 부딪쳤을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교내외 활동이 제한됐을 텐데 진행 과정은 어떠했나?

"오디오북 제작으로 전환하기 전에는, 세계사 과목과 엮어 여행가이드 소책자를 만들거나, 저자와의 인터뷰 등을 계획했다. 그 즈음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되면서, 학생들의 내외부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결국 2020년 한 학기가 무의미하게 지나면서, 수업 외 시간에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활동으로 전면 수정해야 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학생들이 제일 하고 싶은 것, 제일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최우선으로 고민했다. 많은 학생들이 '디지털 크리에이터' 또는 '인플루언서', 즉 유튜버나 팟캐스트 운영자를 꿈꾸는 것이 사실이다. 얼굴 노출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도 있어, 결국 학생들은 '목소리'를 선택했다."

학생들이 관심 갖는 분야라 반응이 좋았으리라 예상된다. 참여 학생은 어떻게 모집했나?

"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원하는 학생들만 모집했다. '유튜버 간접 체험!', '전문 스튜디오 녹음', '18살 시절 목소리 타임캡슐' 같은 문구로 교내 홍보를 하니, 순식간에 24명이나 모였다. 일단 학생 3~4명씩 조를 나누고, 목소리로 녹음할 세계사 관련 서적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울 광영고등학교 전경 (제공=광영고등학교)
서울 광영고등학교 전경 (제공=광영고등학교)

녹음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짧은 시간에 책 한권 전체 분량을 녹음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오디오북 녹음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녹음 스튜디오 섭외부터 쉽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녹음 분량이 문제였다. 전문 성우도 한 페이지를 녹음하려면 5분 이상 걸린다 하니, 학생들이라면 예상 시간의 3배 이상 필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학생들은 책 전체 또는 일부가 아닌, 줄거리를 요약해 녹음하는 걸로 결정했다. 각 조에 따라 녹음자의 코멘트를 넣거나, 콩트식의 대화형으로 각색하는 등 스스로 제작기획을 바꾸고 대본을 직접 썼다. 단 한 조도 빠짐 없이, 조원들 모두가 각자 역할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각 조마다 서로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다."

학생들이 여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들에게 좋은 경험과 기회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지도교사로서 스튜디오 섭외나 서적 구매 정도만 개입했고, 전체 기획과 진행은 모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간적, 환경적, 시간적 제약이 있었는데, 한 조도 낙오되지 않고 무난하게 녹음을 마쳤다. 대견스러울 정도로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색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경기도콘텐츠진흥원에서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학생들(출처=광영고)
경기도콘텐츠진흥원에서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학생들(출처=광영고)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학생들 반응이 여느 때와는 달랐을 것 같다.

"오디오북 제작으로 전환한 직후에는 노파심과 걱정이 많았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일련의 과정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고, 모든 걸 자신들 스스로 고민하고 기획하고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전문 성우처럼 마이크와 헤드셋을 둘러쓰고 장난끼 없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녹음에 임했다. 교과 과정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곁에서 지켜보며 학생들 활동하는 과정을 속속 영상과 사진으로 담았다. 직접 쓴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대본을 편집, 탈고하고, 어색한 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재차 들으며 자신의 평소 발성이나 발음을 교정했다. 작업을 마친 후에도 학생들의 열기와 관심은 여전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1년을 답답하게 보내야 했던 학생들에게 신선한 경험이 된 것 같아 지도교사로서 뿌듯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생들간 자유로운 협업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끼리 즐겁게 주도적으로 협업하는 모습이었다. 목소리 녹음이 처음이라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는데, 누구 하나 볼멘소리 없이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시작은 독서장려 활동이었는데, 결과는 문제해결능력, 창의력, 소통력 강화였다."

학생들이 조별로 오디오북을 녹음 중인 모습(출처=광영고)
학생들이 조별로 오디오북을 녹음 중인 모습(출처=광영고)

학생들이 녹음한 오디오북 파일은 어떻게 활용되나?

"우선 서울시교육청에 사업 결과물로 제출했다. 원래는 프로젝트 종료 발표회를 통해 교내에 알리려 했는데, 오디오북이 완성됐을 무렵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해 무산됐다. 유튜브에 올려 공유하고 싶었으나 책 내용을 소재로 녹음하다 보니 저작권, 출판권 문제의 소지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없었다면 학생 발표회뿐 아니라 교사 간담회도 개최해 결과를 공유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여러 제한이 있지만, 이런 교내 학생활동을 기획, 고민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2021년 새 학기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동료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은 바가 있다. 이 시대의 교사는 '가르치는 자'이기 보다 '교감하는 자'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학생들과 밀접히 교감하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교내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의 일상에는 자발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스스로 활동할 기회가 사실 거의 없다. 그들에게 그런 경험과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기대보다 훨씬 놀라운 결과물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

"끝으로, 여러 어려움에도 적극적으로, 자율적으로, 그러면서 안전하게 행동해준 우리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잊지 못할거야, 얘들아!'"

글 / IT동아 장현지(h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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