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G통신 시작 1년 지나 '5G 아이폰'이 출시된 이유는?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지난 2019년 4월,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비록 서브6(sub-6) 주파수, 즉 6GHz 이하의 주파수를 먼저 상용화하였지만, 이동통신 선진국으로서 공격적인 면모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늦게 5G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진정한 5G'라 할 수 있는 밀리미터파 주파수로 서비스를 개시했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밀리미터파 5G 서비스를 시작하려 준비하고 있고, 머지않아 LTE와는 차별된 초고속 5G 이동통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리라 기대되는 상황이다.

밀리미터파 주파수는 기존 CDMA나 LTE 주파수보다 10배 이상 높은 주파수로서, 5G 통신에서는 주로 28GHz와 39GHz 대역을 사용한다. 이는 대규모 이동통신에 사용된 적이 없던 주파수인데, 주파수가 높은 만큼 많은 기술적 난관이 존재한다.

파장이 매우 짧기 때문에 안테나 및 회로 설계가 어렵고, 선로 간의 간섭도 훨씬 심하며, 손실도 크기 때문에 신호를 멀리 보내기가 힘들다. 그 대신, 초광대역 통신이 가능해, 기존 이동통신과는 차별된 속도를 발휘한다.

이러한 밀리미터파 5G 통신을 이용하기 위한 모바일 기기 역시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초의 5G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출시했으며, 특히 미국시장에 'mm-wave 5G' 스마트폰을 공급함으로써 5G 시대를 열였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 최초의 밀리미터파 5G 스마트폰이 출시된 후 1년이 지나도록 한국 기업 외에 어느 곳도 유사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유수의 해외 제조사들은 밀리미터파 5G 폰을 출시하지 못하는 걸까? 이는 단순히 기술력의 격차가 아닌, 실제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기술진입 장벽이 존재하는데, 바로 FCC(미국연방통신위원회)의 '5G 전파사용 인증'이다.

5G 스마트폰 개발의 숨은 진입장벽 – FCC 전파인증

미국에서 무선통신기기를 판매하려면, FCC의 전파사용 인증을 받아야 한다. FCC 인증 중에 전자파의 인체영향을 제한하는 'SAR'라는 규격이 있는데, 모바일 기기에서 송출된 전자파가 인체 내부로 흡수되는 양이 기준 이하가 되도록 제한하는 규격이다.

SAR - 휴대폰 전자파가 인체에 흡수되는 양을 제한하는 인증 규정 (출처=앤시스 코리아)
SAR - 휴대폰 전자파가 인체에 흡수되는 양을 제한하는 인증 규정 (출처=앤시스 코리아)

그동안 CDMA나 LTE와 같이 낮은 통신 주파수의 SAR 인증은 이미 모든 제조사들이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밀리미터파 5G로 오면서 'PD(Power Density, 전력밀도)'라는 규격으로 변경됐고, 이는 SAR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과제가 됐다.

기존 SAR는 전자파가 인체 내부에 흡수되는 양을 측정했는데, 밀리미터파는 주파수가 너무 높아서 인체 내부로 에너지가 침투하지 못하고 피부 표면에 순간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밀리미터파 5G에서는 인체 표면에 흡수되는 PD를 측정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밀리미터파 5G의 PD 측정이 SAR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인데, 밀리미터파 특성 상 다수의 배열안테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입력신호 조건이 100가지 이상으로 매우 복잡하게 됐으며, 여러 주파수의 모든 동작조건에서 인체에 무해한 수준의 PD값이 측정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측정이 필요하게 됐다.

즉, CDMA나 LTE의 SAR를 측정하는데 1주일이면 충분했지만, 5G PD를 모두 측정하려면 1년 이상이 걸린다. 한번에 3시간이 걸리는 전자파 측정을, 5G에서는 무려 수 천번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5G 스마트폰의 개발이 완료된 후에도, 제품 판매를 위해 FCC 전파 인증을 받는데만 1년이 넘게 소요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밀리미터파 5G 모바일 기기 제조사/개발자가 직면하는 과제이며, TTM(Time to Market) 관점에서 엄청난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5G 인증의 한계, 시뮬레이션으로 극복

FCC 역시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에, 밀리미터파 PD에 대해서는 측정 대신 '3D 전자장 시뮬레이션'을 이용할 수 있게 규정을 변경했다. 시뮬레이션으로 수 천개의 동작조건에 대한 모든 PD값을 계산한 다음, 이중 가장 나쁜 결과를 보인 소수의 동작조건에 대해서만 실제 측정을 하여 FCC에서 제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복잡한 5G 스마트폰의 시뮬레이션 역시 상당한 기술 난이도가 필요하며, 이 역시 수 천번 계산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밀리미터파 5G 스마트폰 자체가 처음이라, 정확한 계산 방법론은 물론 결과 검증과정까지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정교하고 신뢰성 높은 3D 전자장 해석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는데, 자사의 'Ansys HFSS(High Frequency Structure Simulator)'가 적용됐다.

Ansys HFSS를 통해 휴대폰 주변의 전자파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출처=앤시스 코리아)
Ansys HFSS를 통해 휴대폰 주변의 전자파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출처=앤시스 코리아)

Ansys HFSS는 3D 전자장 시뮬레이션 툴로서, 세계 최초의 고주파 전자장 해석 툴이며 현재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다. 수 십년간 미국 NASA 및 국방업체에서 밀리미터파 시뮬레이션의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초고주파 영역에서 높은 정밀도를 제공하는 시뮬레이션 툴로 인식되고 있다.

앤시스 코리아(Ansys Korea)는 시뮬레이션 데이터 기반의 FCC 인증을 위해 지난 2018년부터 밀리미터파 5G 스마트폰의 효율적인 시뮬레이션 환경을 연구했고, 한국 고객사들에게 기술 지원을 제공하며 단기간 내에 측정을 대신하는 시뮬레이션 방법론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많은 양의 기술 검토와 테스트가 필요했으며, 수 천개의 유효한 PD 데이터를 계산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뮬레이션 자동화 기술의 개발이 수행됐다.

결과적으로 측정에 1년 이상 걸리는 인증용 PD 데이터를 1주일 안에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자동화 프로세스 개발에 성공해, 2019년 4월, 세계 최초로 시뮬레이션 데이터에 기반한 FCC 5G 전파사용 인증에 ANSYS HFSS를 적용하게 됐다.

대한민국, 5G 전파인증의 표준을 만들다

해외 전문가들이 FCC의 PD 인증 장벽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밀리미터파 5G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어려우리라 예측했으나, 우리나라는 해외 경쟁사들보다 1년 이상 빠르게 이런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데이터 기반의 규격인증 역시 최초 사례가 됨으로써, 시뮬레이션의 응용분야가 인증 시장까지 확장되는 결과도 낳았다. 시뮬레이션이 실제 측정을 대치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정확도를 보여주는 시대가 됐음을 의미하며, 측정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시뮬레이션이 커버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5G와 관련된 첫 인증 사례가 주는 또 다른 의미는, 최초의 인증이 향후 표준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어떤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는지, 어떤 방법론으로 해석을 수행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조건 하에서 데이터를 추출, 제시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 자체가 처음 정립됐기 때문이다.

첫 인증을 위해서는 많은 검증 과정이 필요하기에, 후발업체는 선발업체의 인증 방식은 물론 인증 보고서의 목차 구성까지 그대로 따라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개발한 5G 인증용 시뮬레이션 자동화 기술은, 한국 제조사들의 기술보호를 위해 해외로 전수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해외 5G 후발 업체들은 한국에서 먼저 제시한 FCC PD 인증보고서 수준을 따라잡는데만 1년 이상 시간이 걸렸으며, 아직까지도 밀리미터파 5G 시장 진입의 큰 장벽이 되고 있다.

결국 최초의 시뮬레이션 데이터 기반 FCC 5G 인증은 선발 업체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첫 주도권을 한국이 쥔 셈이다. 또한 Ansys HFSS가 밀리미터파 5G 설계와 데이터 구축을 위한 표준 시뮬레이션 툴로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셈도 된다.

밀리미터파 5G, 시뮬레이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

최초의 선구자가 누릴 수 있는 장점이라면, 인증과 같은 기술표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다음 단계의 기술적 장벽을 넘는데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은 시뮬레이션 기반의 FCC 5G 전파인증 기술에서 1년 이상 해외업체를 따돌리고 있는 상황이며, 앞으로도 유리한 고지에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밀리미터파 이동통신은 이제 막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지난 수 십년간 해왔던 수 GHz 대역의 CDMA, GSM, LTE 보다 고도의 기술력이 축적돼야 하며, 실험과 검증이 어려운 특성 상 많은 부분 시뮬레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5G에 있어서만큼, 시뮬레이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

글 / 앤시스 코리아 김태진 이사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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