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기획자가 만드는 VR은 무엇이 다를까? '진심' 강조하는 '쉐어박스'
[스케일업 x 대구대학교 창업지원단 BM FORCE] 쉐어박스 (1)
지난 2월 세계 최대 게임 다운로드 플랫폼 스팀(Steam) 운영사 밸브(Valve)가 가상현실(VR) 게임 하나를 발표했다. 밸브의 대표 프랜차이즈 하프라이프의 신작 '하프라이프: 알릭스(Half-Life: Alyx)'다. 3월 스팀을 통해 세상에 나온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그간 공백기로 불렸던 시리즈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굳이 약 반년 전 출시한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거둔 성적표 때문이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출시 일주일 만에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리고 한 달 뒤, 4070만 달러(약 4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 달 뒤 거둔 매출은 1억 2000만 달러(약 1410억 원)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패닉에 빠져있던 순간, 밸브가 선보인 신작 게임은 그야말로 하늘을 날았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성적표 외에도 더 있다. 가상현실(VR) 게임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VR 게임으로 선보인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매출은 지금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스러져가는 VR 시장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전부터 차세대 콘텐츠, 4차 산업 혁명 중 하나로 주목받은 VR은 사실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었다. 혹자는 VR을 3D TV처럼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사라지는 기술이 될 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이러한 평가 속에서 'VR, 아직 죽지 않았다'는 울림을 던진 게임, 아니 작품이다.
VR, 아직 죽지 않았다
이정표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성과는 침체된 국내 VR 콘텐츠 업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코로나19로 주춤하고 있는(사실상 올인했던) VR 테마파크 이후를 기약할 수 있다. 글로벌 VR 현황도 긍정적이다. 소셜 VR 플랫폼 'VR CHAT'은 2019년 1000만 달러(약 119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 금액은 1520만 달러(약 181억 원)에 이른다. 같은 소셜 VR 플랫폼 '클러스터(cluster)'도 올해 8억 9000엔(약 89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 누적 투자 금액 약 162억 원을 달성했다. 이외에도 소셜 VR 플랫폼 'REC ROOM', VR 영상 플랫폼 'THE VOID' 등이 2000만 달러(약 233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9년 5월 21일 VR HMD(Head Mount Display) '오큘러스 퀘스트'를 출시한 오큘러스는 그해 말까지 누적 판매량 400만 대를 달성했다. 또한, 내년 상반기 새로운 VR HMD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해 시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오큘러스 퀘스트 출시 이후 VR 스토어 '오큘러스 스토어' 매출은 10배 이상 증가했다. VR과 증강현실(AR) 전문 시장조사업체 디지 캐피털(Digi-Capital), 삼성증권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과거 대표적인 VR/AR HMD 출시와 함께 VR에 대한 투자는 크게 늘었다. 그만큼 내년 VR 시장 전망은 긍정적이다.
실감미디어를 통한 천문 교육 '우주야 놀자'
사라지다시피 한 국내 VR 시장이지만, 아직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업체가 있다. 문화콘텐츠 기술 스타트업 쉐어박스도 이 중 하나다. 쉐어박스 신연식 대표는 "문화, 교육 중심의 VR/AR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 콘텐츠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솔루션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신 대표는 과거 문화 예술 공연을 기획·연출했던 경험을 토대로 천문교육 멀티유저 시스템 '어린이 천문학', 혼합현실(MR) 천문교육 콘텐츠 '우주야 놀자', VR 교육 시스템 '그룹 VR 클래스(Group VR Class)' 등 VR/AR 그리고 MR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2015년 7월 설립된 쉐어박스는 '기술로 현실보다 더 완벽한 미래를 구현한다'를 목표로 여전히 실감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위해 노력 중이다. 2018년 4월 'K-Global ICT 재도전 패키지' 지원 사업을 통해 몰입형 클래식 콘서트 '슈만과 클라라 브라암스'를 몰입형 콘텐츠로, 2018년 8월 서울 VR/AR 제작센터 'S.T.A.R' 기업으로 선정되며 '마르테스의 꽃 클라라'라는 공연 VR 콘텐츠를 개발했다.
또한 2019년 9월에는 서울 VR/AR 제작 거점센터 수요처 연계형 사업을 통해 '천문 관측 VR', '360도 VR', '멀티유저 기술' 등을 확보했다.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는 웹 방송 송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쉐어박스가 집중하고 있는 콘텐츠는 '우주야 놀자'다. 우주야 놀자는 어린이를 위한 천문 교육 MR 콘텐츠다. 교사와 학생이 콘텐츠를 보며 양방향으로 실시간 소통하고, VR 영상에 따라 별자리와 천체 등을 관측하고 우주여행을 체험하는 커리큘럼을 담고 있다.
쉐어박스는 프로토 타입을 개발하고 어린이 천문대 운영자와 실사용자인 어린이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최근에는 요구 사항을 반영해 기존 HMD 기기와 콘텐츠의 불편사항을 개선 중이다. 어린이 신체에 맞도록 HMD를 최적화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HMD 기능을 제거해 쉽고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무엇보다 교육에 필요한 소통에 집중했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2개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선생님처럼 진행 방향을 이끌어줄 수 있도록 UI/UX를 개선했다.
신 대표는 "천문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주를 어린이 시선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우주는 그저 이론으로, 책으로 배우는 과학의 일부가 아니다. MR 콘텐츠로 우주를 구현하면, 아이들이 그 안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주에 대해 잘 모르는 비전문가 입장에서 궁금한 점을 찾고 천체학자, 우주과학자 등 전문가의 검수를 거쳐 제작하고 있다"며 "15분~20분 분량으로 총 34개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현재 10개를 완성했고 내년 4월 모든 분량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쉐어박스' 밑거름 된 가수·문화공연 기획자 경험
신 대표는 과거 가수와 문화 공연 기획·연출 등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1980년대 이영훈 작곡가와의 친분으로 가수 이문세 4집 '그녀의 웃음소리 뿐', 5집 '붉은노을' 등에 코러스로 참여했고, 1990년 성음레코드사에서 신유상이라는 활동명으로 독집 음반 1, 2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당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문화 공연 제작, 기획, 연출 등으로 활동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1993년 유선방송 개국과 함께 'TWO SI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한 신 대표는 주로 공연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방송 BGM을 제작하고 패션쇼를 연출했다. 이후 호주에서 음악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방송 프로그램, 인터넷 방송, 영화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태권도 대중화를 위한 오프닝 공연 제작사 감독으로 10개국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공연기획은 쉽지 않았다. 오프라인 공연은 빠르게 발전하는 IT 기술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갔고, PC와 모바일 속 디지털 콘텐츠에 밀려 경쟁력도 잃어갔다. 사실 태권도 공연은 쉐어박스 창업 전 신 대표의 마지막 작품이다. 어려운 상황은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재도전'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쉐어박스 창업은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절박했던 시절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저곳 전전하던 중, VR을 접했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다. 신 대표는 이를 두고 "욕심이 났다"고 회상했다. 초기 VR 콘텐츠는 게임, 테마파크 등 한정적인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냈는데, 오프라인 공연과 교육 콘텐츠를 VR로 제작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신 대표가 가장 처음 시도한 것은 공연을 VR로 옮기는 작업이다. 신 대표는 "단순하게 공연을 그대로 360도 VR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며 "3개의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공연장 벽에 아트월을 세우기도 하고, 공연장 공간과 특성을 살리는 퍼포먼스 프로젝션 매핑 등을 세우기도 했다. 클래식 공연하는 무대 뒤 벽에 클래식과 연결되는 영상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100년 전통의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라암스' 공연을 기획하며, 19세기 독일 모습을 공연장에 펼쳐 보이기도 했다.
바로 스토리다. 신 대표는 어디까지나 관객을 위한 시도였다고 설명한다. VR/AR 콘텐츠에 휘둘리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전통 공연을 유지하고, IT 기술을 보완하는 형태로 사용했다. 기술을 이용해 관객에게 콘텐츠를 보다 잘 전달하는 데 힘썼다. 순수예술을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우주야 놀자도 마찬가지다. VR 속 우주를 체험하는 어린이에게 가상공간 '우주'를 기술적으로 보여줬다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우주를 이해하고, 천체를 배우기 위한 수단으로 VR을 사용했다. 신 대표는 "VR/AR은 분명 차세대 기술 중 하나"라면서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객, 즉 고객의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 기술은 보완하는 역할이다. 콘텐츠가 담고 있는 의미, 스토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신 대표는 VR/AR 기술을 홍보하기 위해 쉐어박스를 설립한 게 아니다. VR/AR/MR/XR은 그가 기획한 콘텐츠, 그가 연출한 공연을 돋보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보완재다. 공연 속 본연의 스토리, 교육 콘텐츠가 추구하는 교육 효과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지막으로 신 대표는 "우리만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VR 콘텐츠 개발사 쉐어박스로 인식되고 싶지 않다. 우리가 개발한 콘텐츠를 통해 관객이 조금 더 감동하고, 학생이 하나 더 배우기를 희망한다. 앞으로도 쉐어박스에, 우리들의 콘텐츠에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