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이 왜 '옷'을 입어야 돼?.."창업 전 사업계획서 들고 아내를 세 번 설득했다"는 이 사람

[디자인 스케일업 (한국디자인진흥원x인터비즈)] 씨포스(1)

스타트업의 현실적인 문제, 성장(Scale-Up)을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는 두 번째 기업은 지난 2018년 3월 세워진 씨포스(SIPOS, 대표: 박성호)입니다. 현재 씨포스가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베일리쉬(Veilish)’인데요. 박 대표는 베일리쉬를 소개하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WINDOWS WEAR CLOTHES"

베일리쉬를 입은 창문, 출처: 씨포스 인스타그램
베일리쉬를 입은 창문, 출처: 씨포스 인스타그램

네. 베일리쉬는 창문이 입는 옷입니다. 씨포스는 이 '옷'을 작년부터 유럽과 미국, 호주, 일본 등에 수출 중인데요. 연말까지 예상하는 매출은 100억 원에 달합니다. 베일리쉬 제품을 찾는 지역은 대부분 해외인데요. 미국이 65%로 가장 많고, 유럽 20%, 일본/호주/뉴질랜드 등이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많이 찾는 스타트업인 셈입니다.

사람을 생각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합니다

씨포스를 방문해 만난 박 대표는 자사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이종 산업간의 장점을 결합해 제품을 개발한다. 씨포스가 추구하는 제품은 이렇다. 사람을 생각하는 제품, 필요한 기능을 담은 제품,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제품, 친환경적인 제품,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라고 부연했다.

어렵다. 어려웠다. 그러니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라는 뜻인가?’라는 질문과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제조 스타트업으로 이해하면 될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현재 씨포스는 제조업이 맞다. 하지만, 제조업이 아니고 싶다.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지만, 해당 제품을 바탕으로 하나의 완성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서비스 플랫폼”이라고 답했다.

박성호 씨포스 대표
박성호 씨포스 대표

디자인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 각 산업의 특징을 융합해 또 다른 서비스를 추구한다. 아이폰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을 판매하는 애플을 단순히 제조사라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아이폰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앱은 사용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 수많은 앱 개발자가 앱스토어에 (개발한) 앱을 등록하면, 사용자는 앱스토어에서 필요한 앱을 내려받아 사용한다. 각각의 서비스를 통합한 플랫폼. 씨포스가 바라는 모습이다.

씨포스는 제조와 서비스, 유통 등 각 산업이 구분되는 경계를 지우고, 완성된 하나의 서비스를 선보이고자 한다. 이렇게 이해하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기획한다.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에 아이디어를 전달한다. 직접 유통하고 판매하며 얻은 정보로 고객과 소통한다. 씨포스는 이를 ‘기존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에 새로운 소비문화를 정착’하겠다고 자신한다.

씨포스가 추구하고 있는 사업 모델, 출처: 씨포스
씨포스가 추구하고 있는 사업 모델, 출처: 씨포스

공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베일리쉬

씨포스가 처음 바라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영역, ‘공간’이다. 박 대표는 이를 공간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창문에 옷을 입혀보자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란 무엇일까. 어렵지 않다. 잠을 자는 침실이 있고, 밥을 먹는 식당이 있으며, 일하는 사무실이 있다. 가족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거실도 있고. 이러한 공간은 바닥과 벽, 창문, 천장 등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간을 꾸민다. 벽에 벽지를 바르고, 창문에 커튼을 단다. 천장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바닥의 재질을 살리기 위해 에폭시를 작업하기도 한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셈이다. 씨포스는 이러한 공간 중 창문에 시선을 돌렸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창문을 꾸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천편일률적인, 남들과 똑 같은 디자인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WINDOW WEAR CLOTHES, 출처: 씨포스 베일리쉬
WINDOW WEAR CLOTHES, 출처: 씨포스 베일리쉬

박 대표는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전국 많은 대학교에서 매년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사회에 진출한다. 하지만, 자신의 스킬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자신들의 능력,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그 공간이 '창문'이다.

수많은 창문에 옷을 입힐 수 있다면?, 출처: 씨포스 인스타그램
수많은 창문에 옷을 입힐 수 있다면?, 출처: 씨포스 인스타그램

베일리쉬는 창문용 시트지다. 창문용 시트지는 대로변 1층에 위치한 카페의 통유리를 외부 시선에서 보호하기 위해 붙이거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사무실 창문을 가리기 위해 붙인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점이나 PC방, 노래방 등 상업 시설 창문에 대부분 붙어 있다.

여기에 착안했다. 천편일률적인, 똑 같은 창문용 시트지를 바꾸고 싶었다. 디자이너들과 함께했다. 기존 단점이었던 비싼 시공 가격, 제품 품질 등을 하나씩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고객들이 본인 공각을 촬영해서 보여주면,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편집해서 제공했다. 그리고 디자이너와 자신들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연결했고.

초기 베일리쉬 작업 영상, 출처: 씨포스 유튜브 채널
초기 베일리쉬 작업 영상, 출처: 씨포스 유튜브 채널

또한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붙였다 뗄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창문에 시트지를 붙이려면, 꼭 전문가가 현장에 나가 시공해야 한다는 인식을 깨고 싶었다. 휴대폰에 보호용 필름을 붙이듯 누구나 시트리를 붙였다 뗄 수는 없을까? 발품을 팔아 개발했다. 10~20회 정도는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접착제를 넣었다. 한번에 붙이는 접착제가 아닌, 포스트잇과 같은 점착제(국내 및 해외 특허 출원). 박 대표는 3년간 떨어지지 않도록 개발했다고 자부한다.

한가지 더, 친환경을 덧대었다. 베일리쉬 재질은 패브릭(Fabtic, 천)이다. 기존 시트지는 대부분 PVC다. PVC는 열에 약하다. 창문에 붙였을 경우, 수축/팽창하면서 유해물질이 나온다. 패브릭을 사용할 경우, 제조 과정에서조차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패브릭을 사용하면서 여러 번 붙였다 떼도 자연스럽게 기포가 생기지 않는 장점을 얻었다. 당연하다. 작은 구멍으로 뚫려 있는 천이니까.

베일리쉬 소개 동영상(KOR), 출처: 베일리쉬 유튜브 채널
베일리쉬 소개 동영상(KOR), 출처: 베일리쉬 유튜브 채널

박 대표는 “베일리쉬 개발과 테스트에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2017년부터 제품을 개발했고, 2019년 6월 첫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디자인 패턴, 재질, 쉬운 사용법 등 고민할 것이 많았다”라며, “베일리쉬를 선보인 뒤, 국내보다 DIY(do-it-yourself) 제품을 많이 찾는 해외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고 설명했다.

베일리쉬 제품 특징을 소개하고 있는 씨포스, 출처: 씨포스 홈페이지
베일리쉬 제품 특징을 소개하고 있는 씨포스, 출처: 씨포스 홈페이지

경험에서 찾은 디자인

씨포스 베일리쉬는 박 대표 경력과도 뗄 수 없는 결과물이다. 그는 지난 12년간 창문용 시트, 포인트 벽지, 포인트 바닥지 등을 유통했다. 해외 영업도 담당했다. 스스로 일하며 찾은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씨포스를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장성을 찾았다.

국내에서 창문에 시트지를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사무실이나 상업시설에서 많이 애용하지만, 우리 집 창문에 시트지를 직접 붙이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 커튼 또는 블라인드를 선택한다. 하지만, 해외(북미, 유럽 등)는 다르다. 사무실을 포함해 가정에서도 창문용 시트지를 많이 찾는다. 3M이 판매하는 파사라(Fasara) 등 관련 시장도 활발하다.

3M Fasara 제품들, 출처: 3M 홈페이지
3M Fasara 제품들, 출처: 3M 홈페이지

특히, 건물에 창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벽이 아닌 뚫린 개방감을 위한 선택이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도 대부분 창문이다. KTX 플랫폼이나 개찰구를 연결하는 구름다리 등도 좌우 측면은 모두 창문 아닌가. 박 대표는 충분히 시장성을 검토한 뒤, 씨포스 창업을 결심했고, 결과를 얻어내고 있다.

베일리쉬는 박 대표가 꿈꾸는 ‘이종 산업 결합을 통한 새로운 제품’의 첫 주자다. 디자이너들을 설득하기 위한 검증 무대기도 하다. 직접 디자이너를 찾기도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해야 한다. 결합한 산업 종사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윈윈(win-win)할 수 있는 결과를 찾아야 한다.

박 대표는 12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나 씨포스를 창업하기 전, 가장 큰 허들을 넘어야 했다. 아내다. 박 대표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들고 3번을 발표했다. 가격 경쟁에서 중국에게 밀리고, 고급 브랜드와 디자인에서 유럽에 밀리는 현실이지만, 잘 구축된 국내 제조 인프라와 유통 인프라는 더하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씨포스, 출처: 씨포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씨포스, 출처: 씨포스

박 대표가 아내를 설득한 것은 3년 전이다. 제품 출시 뒤엔 해외 시장을 설득했고, 지금의 성적표를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지금 씨포스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부족하다. 해외 시장을 확대해야 하고,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플랫폼을 시장에 안착시켜야 한다. 박 대표는 묻고 있다. 지금 씨포스는 제대로 가고 있느냐고.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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