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상·증강현실 규제혁신 로드맵, 잘 할 수 있을까?

강형석 redbk@itdonga.com

[IT동아 강형석 기자]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와 HTC 바이브(Vive), 포켓몬 고(Pokemon Go). 이 셋의 특징은 바로 가상·증강현실(VR·AR)의 흐름을 바꿨다는 점이다. 전자는 하드웨어, 후자는 콘텐츠다. 이들의 등장으로 가상·증강현실이 주목 받을 수 있었고, 시장 또한 가파르게 성장했다. 시장조사기업 마켓샌드마켓(Marketsandmarkets)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79억 달러(원화 환산 약 9조 3,700억 원 상당) 가량의 시장은 2024년 446억 원(원화 환산 약 52조 9,400억 원 상당)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산업 및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가상·증강현실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 및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가상·증강현실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언택트 시대를 예상한 자료는 아니지만,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시장보다 기업·상업·헬스케어·항공/방위·교육 등 기업과 공공부문에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 부분이다. 비용이나 공간 등 도입에 제약이 있는 소비자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적용 범위가 다양한 기업·공공 부문이 가상·증강현실에 주목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정부도 가상·증강현실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나섰다. 규제를 완화하고, 적용 분야 모델을 세분화해 서비스 확산을 도모한다. 기기의 성능과 사용 경험 확대 등 기술 발전과 상용화 시기를 단계적으로 예측해 대응, 준비한 청사진을 주기적으로 정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인가?

비대면 시대 가상·증강현실 산업과 규제혁신을 주제로 첫 현장대화를 주재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업계 대표와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가상·증강현실(VR·AR)처럼 신산업 분야는 네거티브 규제체계로 바꾸고 사후에 규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낡은 규제는 사전에 완화하고 불명확한 부분은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미 정 총리는 지난 6월에 규제혁신 10대 의제를 발표한 바 있다. 원격교육, 바이오헬스, 로봇, 인공지능, 미래차, 리쇼어링 지원, 공유경제, 규제자유특구, 스마트 도시와 함께 가상현실도 포함되어 있다.

핵심은 이렇다. 가상·증강현실 분야는 가상의 공간 혹은 가상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위치·공간 등 데이터 활용, 원격업무 제한, 콘텐츠 심의, 시설규제, 기술기준 부재 등 여러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개발이 제한적이었다. 신산업이지만 기존 산업 제도에 발이 묶인 것이다.

정부측은 총 35건의 발굴 규제 중 명시적 규제 7건, 과도기적 규제 16건, 불명확한 규제 12건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규제체계를 정비 혹은 신설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추가로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해 규제개선 효과를 확실히 보겠다는 입장이다.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은 사후 규제 체제를 말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먼저 허용하고 추이를 지켜본 다음 부작용이 발견되거나 필요한 경우 규제하는 식이다.

분야에 따라 가상·증강현실이 도입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분야에 따라 가상·증강현실이 도입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6대 분야별 개선 과제도 마련됐다. 엔터·문화(5건), 교육(5건), 제조·산업 일반(5건), 교통(2건), 의료(4건), 공공(4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공통 분야도 10건이 있다. 총 35건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개인 영상정보의 합리적인 활용 기준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 3차원 공간정보 해상도·좌표값 등의 활용 기준 완화, 콘텐츠들이 게임물로 분류되던 것을 완화하고 세분화하는 것, 실감 콘텐츠 특성에 맞는 영상물 등급 분류체계 마련 등이다.

해외에서는 가상·증강현실 시장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의 대처는 뒷북 같다는 느낌도 적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제도를 완화하고 시장을 키우기 위한 단초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제 와서? 늦었기 때문에 제대로 해야 된다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가상·증강현실이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3단계 기간(2026~2029년) 이전인 2025년까지 규제정비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실감콘텐츠 전문기업 150개를 육성하고, 국내 시장 규모 14조 3,000억 원 달성을 위한 지원에 나선다. 정부는 규제혁신 로드맵을 통해 디지털 뉴딜을 뒷받침하고 관련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현 상황에서 규모 확대에 목적을 둔 나머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다. 당장 지난 2018년 기준 14개에 불과했던 실감콘텐츠 전문기업을 150개로, 8,590억 원 수준이었던 시장 규모를 15조 원대 규모로 키울 예정이라는 점이다. 5년 내에 10배~20배 가량 규모를 키울 수 있을지 그 계획에 물음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발생하지 않는지 철저한 관리감독도 잊으면 안 된다.

시장 확대와 기업 육성에 의문점이 드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번 로드맵이 규제혁신을 중심으로 언급되어 있어서다. 신산업에 맞춰 규제를 완화하고 교육·의료 환경에 맞춰 안전 가이드라인과 활용 지침을 마련하는 등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시장의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다.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가상·증강현실 콘텐츠와 기기를 효과적으로 도입,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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