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미안, 자이 입주민들이 '그' 샤워기와 사랑에 빠진 이유
[디자인 스케일업 (한국디자인진흥원x인터비즈)] 세비앙(1)
딜리셔스, 위키박스, 피플카, 더코더, 비주얼캠프, 버넥트, 클로봇.
2018년과 2019년 창업이 아닌 성장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케일업 프로젝트'와 '스케일업 코리아'에 참여한 스타트업입니다. 7개 기업 모두 여전히 현업에서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스케일업팀은 참가 기업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가 기업들은 자신의 단점과 문제점을 많은 분들이 지켜보는 공간에 숨김없이 공개했습니다.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비전, 현 프로세스에 대한 비판도 들었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날선 조언도 받아야만 했죠. 이제 막 시장에 나와 좌충우돌하는 시점에 분석 대상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스케일업팀은 7개 스타트업 모두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비판과 비난을 넘어서고 극복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근거 없는 칭찬보다는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참여 스타트업 모두 현재 각자의 자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여러 협력기관과 스케일업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지난 서울먹거리창업센터에 이어 이번에 소개할 곳은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입니다. KIDP는 디자인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가 설립한 디자인 선도·진흥기관인데요, 1970년 설립 이래 지난 50년간 디자인 기업 지원, 문화 확산, 인재 육성, 미래 연구, 정보 제공 등 디자인 영역 전반을 아우르며 한국 디자인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힘써왔습니다.
올해 KIDP는 디자인 인력양성 및 교육, 디자인 연구 및 정책개발, 디자인 문화 확산(공모 및 선정, 전시), 디자인 해외시장 진출, 기업지원 및 창업 육성, 서비스디자인 및 제조 혁신, 플랫폼 구축 및 정보제공, 디자인 제조기업 혁신 등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KIDP는 저희 스케일업팀과 함께 두 디자인 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을 분석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로 지난 1993년 설립한 국내 유일 샤워 전문 기업, 세비앙을 소개합니다.
욕실을 바꾸는 이름, 세비앙
세비앙은 1993년, 가야 리빙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1993년은 빌 클린턴이 42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우리나라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했던 해다. 지금은 전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창동에 첫 매장을 오픈한 해이기도 하다. 27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세비앙은 욕실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비앙은 욕실 전문 기업, 바꿔 말해 욕실에서 사용하는 여러 상품을 개발·생산하는 업체다. 다양한 상품 중 세비앙이 주목한 것은 바로 샤워기다. 주요 제품 라인업도 샤워기에 맞춰져 있다. 시스템 샤워기, 바디 샤워기, 샤워기 세트 등 샤워기 하나에 집중해다양한 상품을 개발했다. 지난 27년간 세비앙을 이끈 류인식 대표는 "욕실 문화를 바꾸고자 노력했다. 욕실의 질을 높여야 주거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건축 자재에서 욕실의 주요 인테리어 요소로 변모시킨 세비앙 샤워기는 앞으로도 살아 숨쉬는 디자인, 계속 혁신하는 제품을 선보이겠습니다'. 세비앙 회사소개서 앞단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욕실로부터의 가치창조다. 일상의 익숙함에 젖어 무심코 지나치는 불편함을 찾아 해결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고자 노력했다. 욕실의 중심을, 샤워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류 대표의 확신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디자인을 넣었다. 세비앙은 2003년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며 욕실에 디자인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저 물만 뿌리는 샤워기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이 더 편안하고 편리하게 샤워할 수 있는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샤워기에 접근했다. 일종의 사용자경험이다. 그저 독특하고, 반짝거리는 색상의 샤워기가 아니다. 사용자가 욕실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양한 경험을 분석하고 불편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디자인이다.
이 같은 세비앙의 노력은 국내외 디자인 부문 어워드·공모전에서 40여개의 상을 받는 실적을 세웠다. 디자인 특허 출원 4건·등록 36건(해외 1건), 특허 출원 6건(해외 1건)·등록 6건, 실용신안 출원 2건(해외 1건)·등록 2건, 상표 출원 1건(해외 5건)·등록 33건(해외 5건) 등의 성과를 올렸다.
또한, 세비앙은 래미안,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자이, 롯데캐슬, 더 샵, 아이파크, e편한세상, SK VIEW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영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11개국에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주거와 뗄 수 없는 디자인, 욕실과 샤워기
욕실·화장실은 주거 공간 디자인에서는 뺄 수 없는 요소다. 과거에는 방 3개에 화장실 1개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접어들며 큰방 옆에 독립된 화장실을 추가로 배치하는 구조가 트렌드가 됐다. 최근에는 방 개수에 따라 각각의 화장실을 별도로 디자인하는 주거도 늘었다. 같은 가족이더라도 서로의 생활 반경을 침범하지 않는, 독립된 공간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해진 공간에 화장실을 추가로 배치하다 보니, 효율적인 공간 인테리어가 필요해졌다. 예전에는 방 3개, 화장실 1개를 배치하던 24평 아파트에 화장실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욕실 인테리어가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천편일률적인 디자인과 인테리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세비앙은 남들과 다르고,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편리한 디자인을 찾아야만 했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 세비앙은 욕실에 수납 공간을 추가했다. 샤워기와 선반을 일체형으로 디자인해 작은 욕실엣도 편리할 수 있도록 동선을 기획했다. 수납일체형 샤워기 'UP' 모델과 소형 욕실을 위한 올인원 개념의 'ALLIN-5' 모델이 대표적이다.
특히, 세비앙은 2007년 이후 늘어난 1인가구와 원룸 세대를 위해 올인원 개념의 샤워기를 제작했다. 거울, 다용도 걸이, 수납공간, 콤팩트 세면대, 핸드 샤워기, 선반형 행거, 컨트롤 레버, 히든 수납 등을 하나로 디자인해 공간 효율성을 높인 제품이다. 디자인에 편의성을 덧입혀 트렌드를 이끌기도 했다. 류 대표는 "건설사는 기존의 욕실 디자인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 샤워기를 많이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을 추구하다 보니, 국내 주요 건설사와 프로젝트를 할 일도 많았다. 일종의 맞춤형 개발 상품이다. 샤워기 판넬에 도자기와 칠기를 사용해 포인트를 주기도 했고, 유명 아티스트와 협력해 제작한 디자인 상품도 유통했다. 서서 샤워하기 불편한 사용자를 위해 샤워기 판넬에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제작했다. 반려동물을 씻기는 데 편리한 샤워기 디자인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류 대표는 전국의 평균 주거 인원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1인 가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과거 3인, 4인 구성원의 주거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에 맞춰 욕실도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욕실에 화장대를 넣기 위한 시도, 아이의 시선에 맞춘 샤워기, 직접 머리에 염색하는 시니어를 위한 욕실 구조 등 다양한 시도를 계속했다. 우리가 얘기하는 디자인은 이처럼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는 욕실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B2B에서 B2C로, 리빙 상품 선보이다
그런 세비앙이 이제 변화하려고 한다. 주거 트렌드를 반영한 욕실 디자인을 확대해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리빙 상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 사업 모델의 변화다.
욕실 인테리어 디자인 상품의 주 구매처는 건설사다. 즉, B2B 사업이다. 그동안 세비앙은 아파트, 오피스텔, 빌라 등 대단지 주거에 상품을 소개해 판매하곤 했다. 이번에 선보인 리빙 상품은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도 직접 구매해 사용할 수 있다. B2C 사업이다. 세비앙은 27년간 욕실 하나만을 보고 뛰어온 전문 업체이기에,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처음 선보인 제품은 샤워기 헤드 '펀치'와 '아치'다. 손에 쥐었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실리콘 그립으로 제작했으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내부에 히든 필터를 적용했다. 118g의 가벼운 무게, 110㎜의 분사판, 10가지 색상 등을 적용해 욕실을 꾸밀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나만의 샤워기, 선물용 샤워기로 일반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개발했다.
이어 세비앙은 '샤워 캐디'도 선보였다. 누구나 쉽게 DIY할 수 있도록 제작한 샤워 수납 세트다. 욕실 벽면에 구멍을 뚫는 타공 없이도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이다. 거울이나 수납통 등의 위치를 마음대로 조절해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으며, 가격도 기존 제품의 절반대로 낮춰 경쟁력을 높였다.
'20년치 경험'을 담았습니다
세비앙은 지난 27년간 욕실에 집중했다. 아니, 집착했다. 국내 주요 건설사와 파트너사로 사업하며 전국 아파트, 오피스텔, 빌라 등에 샤워기를 납품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A/S와 보상판매 등으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위에 소개한 리빙 제품도 이미 오픈마켓 및 자사 쇼핑몰에서 판매 중이다. 연매출 100억 원 이상으로 업계에서 활발하게 사업하고 있는, 제조 중소기업의 강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비앙은 여전히 신제품을 개발하고, 기존 제품 디자인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새 샤워기는 아직 출시 전이지만, 이미 양산체계도 갖췄다. 내년 봄에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사실, 킥스타터가 그 전초전이다.
샤워캐디의 경우 타공하지 않고도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류 대표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는 개념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선도하자는 마인드를 늘 갖고 있다. 얼마 전, 정수장에서 유충이 발견돼 필터형 샤워기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난 일이 있었다"며 "그때 시류에 편승해 제품을 시중에 선보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더 완벽한 제품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세비앙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만하면 됐지. 어떻게든 더 팔아보자'라는 생각은 버렸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건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기술 개발과 디자인 역량을 위해 내·외부 파트너와 꾸준히 협력하는 이유"라며 "대졸 신입직원으로 들어온 직원 중 올해로 16년을 함께하는 직원이 있다. 10년차 이상의 직원 8명이 모여 대화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그게 우리 세비앙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세비앙은 제조 기업의 기본을 지키고자 노력 중이다. 사용자에게 좋은 제품을 판매하자는 것, 2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세비앙이 안정적인 B2B 사업에서 벗어나 낯선 B2C 도전을 시작했다. 어려운 도전이고 급격한 변화다. 그래서 고민한다. 세비앙에게 이번 도전은 과연 옳은 선택일까?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