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제품인데 30% 할인? 불경기에 떠오르는 ‘리퍼비시’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한국은행이 집계한 우리나라 상반기 경상수지는 191.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상반기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지만, 6월 경상수지가 68.8억 달러를 보이면서 다소 회복 조짐도 관측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이하 코로나 19) 여파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깊은 경기침체에 빠져들고 있고, 이는 곧 실물 경제에 반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다수 소비자들은 생활필수품을 제외한 다른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있으며, 가급적 합리적이고, 최대한 가격 대비 효율이 좋은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생활필수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은 어떨까?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구나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사이버 강의나 화상회의 같은 비대면 서비스의 확대로 노트북, 컴퓨터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서, 가능한 값싸고 쓸만한 제품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불경기일수록 ‘리퍼비시’ 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같은 물건인데 이 제품만 할인해준다구요? ‘리퍼비시’란

리퍼비시와 비슷하게 쓰이는 renewed를 아마존에서 검색한 결과. 다양한 전자제품들이 리퍼비시 상태로 판매되고 있다. 출처=IT동아
리퍼비시와 비슷하게 쓰이는 renewed를 아마존에서 검색한 결과. 다양한 전자제품들이 리퍼비시 상태로 판매되고 있다. 출처=IT동아

퍼비시(Furbish)는 금속 제품을 닦고 빛내다. 헌 것을 새롭게 하다는 영어 단어다. 즉, 리퍼비시(Refurbish)는 제품 자체를 다시금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어떤 것을 어떻게 새롭게 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제품, 그리고 제조사에 따라 기준이 다 다르며 대체로 전자제품과 가구가 ‘리퍼비시’ 제품을 주로 취급한다. 리퍼비시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완전히 새 제품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재판매를 위해 하자를 손본 제품이기 때문이다.

리퍼비시 제품이 되는 사유도 각양각색인데, 제품 판매 뒤 단순 변심으로 환불되었거나, 제품 내외관에 간단한 하자가 있어 새 제품으로 교환되고 회수한 제품, 새 제품이지만 단순 흠집이나 포장 파손으로 인해 정상가격에 판매가 어려운 제품, 파손된 제품 여러 개에서 정상 부품만 추출해 재조립한 경우까지 있다. 종종 리뷰 상품이나 매장 전시 등 직접적인 하자가 없는 제품, 스크래치 상품도 리퍼비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B급 제품이라 제값에 팔기 어렵게 된 물건을 할인 판매하는 건데, 누군가 쓰던 중고 제품과 다르게 제조사에서 직접 재포장해 판매하는 것이라 새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은 리퍼비시 제품을 직접 판매하고, 새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제공한다. 출처=애플코리아
애플은 리퍼비시 제품을 직접 판매하고, 새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제공한다. 출처=애플코리아

리퍼비시 제품을 취급하는 방식도 기업마다 다르다. 애플의 경우 신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리퍼비시 제품을 취급하는데, 품질 보증이나 보증 추가(애플 케어)도 신제품과 같다. 또한 애플 제품 사용 중 파손의 사유로 제품 수리를 요청하면, 횟수에 따라 무상 혹은 유상으로 사전에 수리된 리퍼비시 제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파손된 제품과 리퍼 제품을 교환하는 서비스는 애플을 포함한 대형 외국계 제조사들이 시행하고 있다. 에이수스(ASUS)나 HP 등 국내에서 거의 모든 수리를 진행할 수 있는 제조사는 아예 별도 채널을 통해 리퍼비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제품을 수리하지 못하더라도, RMA(Return Material Authorization, 제품 반송 서비스 요청)를 통해 본국으로 보내서 수리해주기 때문에 고장 제품을 리퍼비시로 교환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리퍼비시 제품은 보통 제품 가격의 10~30% 정도 저렴한 것이 특징인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리퍼비시 제품이 재포장 되는 사유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메인보드가 고장 나서 리퍼비시 처리 된 노트북을 구매한다고 했을 때, 소비자는 이 제품이 메인보드 고장으로 리퍼비시 됐는지 알 수 없다. 또한, 해당 부품을 완전히 교체한 것이 아니라 단순 수리만 해서 재포장한 경우라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재포장 과정에서 보증에 관한 변수를 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리퍼비시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보증기간을 절반 정도로 짧게 잡는다. 단순한 제품 하자만 놓고 저렴하게 구매하는 게 아니라, 제조사 입장에서 보증에 포함된 제반 비용을 제외한 것이다.

리퍼비시가 저렴한 이유는 하자로 인한 할인+보증 감소분 때문

2017년 배터리 발화로 인해 전량 회수된 갤럭시 노트7 역시 배터리를 새 부품으로 리퍼비시해 ‘갤럭시 노트 FE’라는 이름으로 재판매된 바 있다. 출처=삼성전자
2017년 배터리 발화로 인해 전량 회수된 갤럭시 노트7 역시 배터리를 새 부품으로 리퍼비시해 ‘갤럭시 노트 FE’라는 이름으로 재판매된 바 있다. 출처=삼성전자

리퍼비시 제품을 구매하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은 보증이다. 특히 해외구매를 이용해 리퍼비시를 구매한다면 훨씬 더 까다롭게 보증을 확인해야 한다. 해외구매의 경우 초기 불량으로 인한 반품이 쉽지 않고, 판매자와 접촉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게다가 국내에 해당 제품을 취급하는 제조사가 있더라도 월드워런티(국제보증)가 아니라면 구매 기간과 관계없이 유상 수리를 요구할 수 있다. 결국 리퍼비시는 단순히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하자로 인한 제품 가치의 하락과 보증 축소로 인한 가격이 반영됐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가격 부담이 크지 않고, 보증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물건이라면 리퍼비시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노릴 수 있고, 제품 수리비가 비싸고 보증이 중요한 제품은 가급적 일반 제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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