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내려놓은 ‘ARM’, 앞으로의 입지는?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남시현 기자] 반도체 회사는 크게 팹리스(Fabless)와 팹(또는 파운드리)로 나뉜다. 두 용어에 들어간 팹은 영어로 제조, 제작이라는 뜻의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에서 유래한 것으로 공장 유무에 따라 결정한다. 따라서 팹리스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공장은 두지 않고 설계와 개발만 추진하는 기업이다. 대표적으로 모바일 SoC칩을 만드는 퀄컴과 브로드컴, GPU를 개발하는 엔비디아가 있다.

여기에 반대되는 개념이 파운드리 기업이다. 파운드리란 팹리스 반도체 기업에서 맡긴 반도체 설계 생산에 주력하는데, 대만 TSMC나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가 대표적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최근 TSMC와 파운드리 수주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주와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종합반도체(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기업으로 분류한다. 대표적으로 자체 공장을 가진 인텔과 마이크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이처럼 반도체 개발과 생산이 분업 된 이유는 반도체 개발과 생산 효율 때문이다. 팹리스 기업은 최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공장에 투자할 필요 없이, 연구 개발에 투자하기만 하면 되고, 파운드리 기업은 연구 개발 대신 최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공장을 설립한 뒤 다수의 팹리스 기업의 라이선스 생산을 유치해 수익을 낸다. 현재 거의 모든 반도체 기업들이 이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추세며, 최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시장에 내놓은 ARM도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이다.

손정의 회장이 내놓은 ARM, 어떤 회사인가

ARM은 전 세계 컴퓨터 및 반도체 시장에 관여하고 있는 기업이다. 출처=ARM
ARM은 전 세계 컴퓨터 및 반도체 시장에 관여하고 있는 기업이다. 출처=ARM

ARM은 영국의 팹리스 기업으로, 자체 개발한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다양한 반도체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있다. ARM은 1985년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에이콘 컴퓨터로 시작했는데, 1990년 애플 컴퓨터(현재 애플)과 VLSI 테크놀로지가 조인트벤처로 투자하게 되면서 ARM으로 이름을 바꾼다. 지금의 ARM 홀딩스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1998년 기업공개를 추진하면서부터다. ARM은 모바일은 물론 연산 처리 장치가 필요한 거의 모든 사물에 관여하고 있을 정도라서, 반도체가 사용되는 산업 전잔의 숨은 강자로 손꼽히고 있다.

애플이나 인텔이 ARM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번번이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2016년 7월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비전펀드가 각각 75:25 비율에 총액 320억 달러로 ARM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구조가 되었다. ARM 인수 당시 손정의 회장은 “20년 안에 전 세계는 ARM이 설계한 제품을 1조 개 이상 사용하게 될 것인데, 지금 40조 원이면 아주 싸게 사는 것”이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되었다. 향후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거의 모든 장치에 연산 처리 장치가 사용되며, 현재의 ARM이 시장지배적인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말을 남긴 것이다.

손정의 회장이 ARM에 40조 원이나 투자한 이유는 ARM 특유의 시장 지배력에 있다. 90년대 반도체 기업들은 종합반도체 형태로 제조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ARM은 제조능력 없이 반도체 설계의 지식재산권을 판매하는 방식을 선보였고, 연구 개발이 부족한 기업들이 ARM의 지식재산권을 토대로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었다. 이어 전세계 반도체 수요가 급상승함에 따라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고, ARM의 시장지배력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동아닷컴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동아닷컴

하지만 손정의 회장이 ARM을 인수한 2016년 이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못했고, 2017년 실적도 매출 약 1조 7천억 원, 영업이익 2,800억에 머물렀다. ‘50수 앞을 내다본 결정’인 만큼 인수 가격 대비 영업이익이 적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모회사인 소프트뱅크가 2020년 3월 결산으로 1조3500억 엔(약 15조)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사태가 급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위워크 투자 실패로 인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결국 소프트뱅크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미국 T모바일 지분 22조 원을 도이치텔레콤에 매각했고, 그다음 순서가 ARM이다. ARM의 미래 가능성은 대다수 전문가가 높게 평가하지만, 지금 당장 수익 실현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

비싼 가격에 낮은 수익, 갈 곳 잃은 ARM?

최근 WWDC(애플 세계개발자회의)에서 애플은 ‘애플 실리콘’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모두 ARM 기반 AP를 사용하고 있는데,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는 맥 컴퓨터까지 ARM 기반으로 동작하게끔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애플은 ARM 설립 멤버기도 하고, ARM 기반 AP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있다. 하지만 애플은 ARM의 높은 가격과 낮은 수익률, 그리고 미국 반독점법을 의식해 인수할 가능성이 작다고 알려져 있다.

다임러그룹 올라 칼레니우스(위)와 엔비디아 젠슨 황(아래)이 2024년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 분야에서 협력한다. 출처=엔비디아
다임러그룹 올라 칼레니우스(위)와 엔비디아 젠슨 황(아래)이 2024년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 분야에서 협력한다. 출처=엔비디아

한편, 그래픽 프로세싱 유닛(GPU) 팹리스 기업인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위해 협상하고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게이밍 그래픽 카드용 칩세트 제조사로 알려져 있지만, 2017년을 전후로 그래픽 카드 전문 업체에서 인공지능 개발 기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일단 GPU는 그래픽 연산 처리에 특화돼 있는데, 이 연산 처리 방식이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 개발에 필수다. 이미 2016년에 테슬라모터스에 엔비디아 드라이브 PX2를 적용했고, 지난 6월에는 2024년 상용화를 목표로 다임러 그룹과 엔비디아 드라이브 AGX 오린(Nvidia Drive AGX Orin)을 협력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ARM 역시 자율주행 시스템이나 컴퓨팅 플랫폼, 모바일 프로세서 및 사물인터넷 시장에서의 표준 마련에 앞장서고 있고, 엔비디아가 인수했을 시 반독점법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인수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스마트폰 시장만 해도 95%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ARM 설계를 직·간접적으로 관계돼있다. 애플의 A 시리즈 칩셋과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전자 엑시노스와 화웨이 기린 프로세서까지 ARM이 빠지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앞으로 사물인터넷 시대가 오면, 거의 모든 장치가 통신과 데이터 처리를 위한 연산 처리장치를 갖추게 될 텐데, ARM가 만들어놓은 울타리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손정의 회장이 ARM을 인수했던 배경 역시 향후 도래할 사물인터넷 시대에서 ARM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RM은 사실상 소프트뱅크의 손을 떠났다. 이미 비전 펀드로 인해 일본 기업 역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해 ARM을 매각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ARM을 인수하는 기업이 어떤 기업이 되건, 손정의 회장의 시각이 틀리지는 않았음을 증명하긴 할 것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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