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RX100의 동영상 강화판, 그러나... 소니 ZV-1
[IT동아 강형석 기자] 소니가 프리미엄 디지털카메라로 분류한 RX100 제품군은 등장 초기에는 존재감이 분명했다. 일반 컴팩트 디지털카메라 수준의 크기에 1인치(13.2 x 8.8mm) 이미지 센서, 조리개 f/1.8-2.8의 고성능 칼자이스 렌즈를 품으면서 휴대성과 화질을 양립하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후 꾸준히 세대교체를 이뤄내며 완성도를 높였고, 동시에 시장의 인기를 얻으며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출 수 있었다.
문제는 꾸준히 세대교체는 이뤄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발전보다는 마치 부분변경 수준에 머무르면서 정체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는 5~6세대 이후 뚜렷하게 나타난다.
4세대 RX100은 성능이 향상되는데 초점을 뒀다. 이미지 센서에 디램(DRAM)을 적층하면서 얻은 결과다. 4K 해상도 영상과 초당 최대 960매 이미지를 담을 수 있었다. 5세대에서는 자동초점 속도가 빨라졌고, 6세대에서는 초점거리가 기존 8.8-25.7mm(35mm 필름 환산 24-70mm)에서 9-72mm(35mm 필름 환산 24-200mm)로 확대됐다.
이렇게 등장 초기부터 4세대와 6세대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제품은 기존의 아쉬움을 개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동초점 센서의 성능 개선을 통해 초점 속도를 빠르게 앞당기고, 이미지 센서의 업데이트로 정지 화상과 동영상 기능을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에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현재 소니는 3세대 RX100부터 7세대까지 모두 판매 중이며, 가격은 99만 9,000원부터 159만 9,000원까지 제품 단계별로 10만~20만 원 가량씩 차이가 난다. 매번 신제품이 등장할 때마다 가격을 20만 원씩 높였고, 기존 제품은 가격 조정을 통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가격이 높다 보니 이제 미러리스 카메라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
등장 초기 주목 받았던 프리미엄 컴팩트카메라는 현재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기가 기존만 못하다. 반전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에 소니의 관심을 끈 분야는 동영상이다. 최근 1인 매체를 시도하는 이가 늘면서 관련 시장이 커진 부분에 눈길이 간 셈이다. 최근 소니가 선보인 ZV-1은 기존 RX100을 바탕으로 동영상에 특화된 기능을 대거 투입했다.
RX100 기반인데 마감은 기대 이하
ZV-1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마감이다. 기본적인 외모는 RX100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일부 요소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RX100이 고급 카메라의 느낌을 준다면 ZV-1은 카메라인데 기능이 크게 제한되는 전형적인 보급형 컴팩트카메라에 가깝다. 쥐었을 때 느껴지는 재질의 마감과 고급 카메라의 상징과 같던 다이얼 배치와 구성이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심어준다.
크기는 폭 105.5mm, 높이 60mm, 두께 43.5mm로 7세대 RX100 대비(폭 101.6mm, 높이 58.1mm, 두께 42.8mm) 모두 커졌다. 대신 무게는 302g에서 294g으로 소폭 줄었다. 액정이나 뷰파인더 등의 부품을 모두 탑재했던 RX100과 달리 ZV-1은 이 모든 것이 변경됐으므로(뷰파인더 미제공) 무게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그 폭이 적다는 것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조작 체계도 모두 변경됐다. RX100 제품들은 자동과 수동을 한 번에 변경 가능한 모드 다이얼과 렌즈 경통부에 있는 다이얼, 후면 다이얼 등을 조합해 DSLR/미러리스 카메라 아쉽지 않은 빠른 설정 변경이 가능했다. 반면, ZV-1은 이것들이 모두 버튼으로 대체됐다. 다이얼은 후면에 탑재된 원형 다이얼 하나뿐이다. 수동 조작 시 이뤄지는 셔터 속도와 조리개 수치 변경에 불편함이 예상된다.
손에 쥐는 느낌은 RX100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저렴해진 듯한 마감으로 인해 촉감은 더 떨어진다. 가격을 너무 의식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기존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저렴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손에 쥔 듯한 감각만 남는다.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카메라를 쥐면 약지와 소지가 기기 아래에 자리하게 된다. 장시간 손으로 쥐면 약지가 불편해지니 가급적 필요할 때에만 꺼내 쓰는 것이 좋다. RX100과 동일하다. 그나마 다른 점은 RX100에 없던 그립이 소심하게 붙어 있다는 것. 하지만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립감 향상에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
상단만 봐도 많은 것이 RX100 대비 다름을 알 수 있다. 뷰파인더가 있던 자리는 액세서리 단자가 대신 차지하고 있으며, 모드 다이얼이 있던 자리는 버튼들로 채워졌다. 중앙에는 타공처리가 된 거대한 직사각형 영역이 제공되는데, 이 부분은 마이크다. 동영상 음성 녹음을 위해 고성능 마이크를 탑재했다.
상단에는 셔터 버튼과 초점거리 조작을 담당하는 줌 스위치가 있고, 그 주변으로 버튼 4개가 자리한다. 각각 전원, 모드 전환, 동영상 촬영, 보케(배경 날림) 기능을 담당한다. 확실히 동영상 특화된 기능을 제공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흥미로운 부분은 배경 날림 버튼이 따로 있다는 것인데, 사람과 산 모양의 아이콘이 있는 버튼을 누르면 조리개가 최대 개방으로 고정되면서 배경 날림 효과를 유도한다. 다시 버튼을 누르면 초기 설정된 수치로 되돌아간다.
마이크는 3캡슐 지향성 사양이다. 이 자리에 음성을 녹음하는 마이크 머리 부품이 3개 탑재됐다는 이야기. 어느 정도 성능을 갖춘 마이크를 통해 촬영자의 음성을 깨끗하게 담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추가로 제품에는 기본적으로 바람 소리를 억제하기 위한 바람차단막(윈드스크린)을 제공한다.
조작은 퇴화했다. 기존 다이얼을 돌려 직관적으로 설정하던 자동/수동(P/A/S/M) 전환과 동영상 촬영 모드는 모두 버튼을 눌러 조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과거 넥스(NEX) 제품의 조작체계와 유사한 형태다. 모드 버튼을 한 번 눌러 자동/수동/영상을 설정하고, 이어 해당 설정 모드에서 자동/수동 여부를 선택하는 식이다.
노출도 버튼을 눌러야 한다. RX100은 렌즈에 있는 다이얼과 후면 다이얼을 조합해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빠르게 바꾸는 것과 다르다. 물론, 개인 촬영 영상에 특화된 기기이므로 굳이 이 기능을 넣을 필요성이 없을 수도 있으나 혹여 수동으로 촬영하는 환경에 직면했을 때에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다. 이 부분에서는 RX100을 대체할 수 없으므로 디지털카메라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불편할 것이다.
바람차단막은 액세서리 단자에 끼워 쓰면 된다. 이를 사용하면 다른 장치는 쓸 수 없으니 참고하자. 위에 얹으면 바람 소리를 최대한 차단해 영상과 음성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기본 제공되는 액세서리의 품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그냥 영상을 위해 소니가 신경 좀 쓰는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후면도 간단하다. 기능(fn) 버튼, 조작 다이얼, 메뉴 버튼, 리뷰, 삭제 버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 부분은 RX100과 동일한 구성으로 필요한 기능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다이얼 중앙은 결정(OK) 버튼 역할을 하고 상하좌우에 각각 버튼(노출, 연사, 화면 출력 형태 등)이 할당되어 있어 누르기만 하면 필요한 기능을 불러온다.
디스플레이는 3인치로 화소는 92만 1,600. 슬슬 고화소 사양의 패널을 적용해 줘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99만 9,000원이라는 가격대를 지키고 싶었는지 변화는 없다. 굳이 RX100과 다른 점을 꼽자면 기존 틸트(상하 각도 조절)에서 회전식 액정이 적용된 것이다. 동영상 성능과 기능이 본격적으로 개선된 4세대 RX100에서 지금까지 넣어주지 않았던 이 기능을 ZV-1이 되어서야 넣어준 소니 카메라 개발팀에 박수를 보낸다.
RX100과 캠코더 사이... 이도 저도 아니지만, 핵심은 ‘개인 방송’
이제 ZV-1의 성능과 기능을 확인해 볼 차례. 이 카메라는 별도의 렌즈 교환 없이 기본 장착된 칼자이스 바리오-조나(Carl Zeiss Vario-Sonnar) 9.4-25.7mm f/1.8-2.8을 사용하면 된다. 화질에 대한 설정은 하지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 조리개와 감도를 조절하거나 자동 조절 기능을 활용했다.
ZV-1의 사진 및 동영상 화질,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RX100과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동일하다 봐도 무방하다. 2,010만 화소 이미지 센서(1인치)에 개선은 있었겠지만 영상처리 프로세서(비온즈X)의 기본기 자체도 큰 틀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자동초점 속도도 RX100 제품군에 비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기본기 자체가 뛰어나다. 초점 검출도 이전 세대와 동일한 위상차+명암 검출식을 적절히 조합해 쓴다. 추가로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의 눈을 추적해 초점을 잡기도 한다. 차라리 RX0에 이 기능을 넣었다면 굳이 이런 큰 물건을 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일상을 기록하는 브이로그(Vlog), 1인 창작자 등 영상 촬영 환경에 초점을 두다 보니 관련 기능은 이것저것 추가했다. 피부를 매끄럽게 다듬는 ‘소프트 스킨’, 버튼으로 변경하는 ‘배경 흐림 효과’, 제품에 먼저 초점을 맞추는 ‘제품 쇼케이스 모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것도 사실 RX100이나 RX0에서도 넣을 수 있었던 기능이다. ZV-1을 위한 기능이지만 ‘굳이 이 제품에서 이걸 넣었다고?’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래도 RX는 정통 사진영상, ZV는 브이로그와 1인 창작자를 겨냥한 제품군으로 나누기 위한 꼼수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한 제품에서 제대로 된 기능을 구현해 활용도를 넓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픽처 프로파일도 마찬가지다. 10여 가지 설정을 통해 밝기와 표현력, 복합 빛 신호 기록(HLG) 등이 입력되어 있는 설정을 적용해 여러 색감을 조합할 수 있으며, 편집도 가능하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창작자라면 모르겠지만 처음 시작하는 이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쪽이 그나마 나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소니는 ZV-1을 선보이면서 쉽게 촬영이 가능한 도구로 핸드그립(소형 삼각대)을 공개했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 줌 스위치 등이 그립에 있어 카메라를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다. 다리를 펼치면 소형 삼각대가 되고 잡으면 손에 쥐어 쓰는 그립이 된다. 하지만 별도 구매해야 되는데, 아무리 카메라에 고성능 손떨림 방지 기구(스테디샷)가 있다지만 이것으로 흔들림이나 떨림을 완전히 방어하지 못한다. 그래도 유선이 아닌 무선(블루투스) 기술로 연결해 다루도록 만든 부분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새로운 시도는 좋지만, 한계는 여전했다
ZV-1. RX100 제품을 통해 이룬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꾀한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고자 한 소니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관련 기능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세밀한 완성도가 조금 아쉽지만 성능이나 기능을 감안하면 자체적인 매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일부 기능은 기존 RX100 혹은 RX0에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그럼에도 펌웨어 업데이트로 이를 제공하지 않고 신제품을 출시한 것은 제품군을 나눠 운영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렇다면 160만 원에 달하는 RX100 M7의 존재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 아닌가? 이미 RX100이 있는데 동영상 보정 관련 기능이 있다고 굳이 ZV-1을 추가 구매할 이유가 없다. ZV-1의 등장으로 RX 제품군의 가치가 희미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브이로그나 기타 1인 방송은 촬영 후 편집, 영상 플랫폼에 등록하는 형태가 많다. 그래서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간혹 실시간(라이브) 방송을 하는 경우라면 ZV-1은 아무 쓸모가 없다. 관련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요즘 세대 첫번째 카메라’라고 강조하지만 그들이 스마트폰이 아닌 ZV-1을 선택할 매력적인 요소를 완벽히 제안하지 못했다.
가격은 99만 9,000원, RX100 M7의 159만 9,000원에 비하면 저렴하다. 가격 자체로만 놓고 보면 RX100 M3와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10만 원만 더 보태 RX100 M4를 선택하면 몇몇 동영상 관련 기능과 편의 기능을 제외하면 성능은 큰 차이가 없다. ZV-1의 장점도 분명하지만 과연 RX100을 밀어내고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