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와 GPU, 이제는 한배를 탈 때?
요즘 PC를 사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CPU와 그래픽카드의 사양이다. CPU는 그야말로 PC의 두뇌이니 그 중요도야 말할 것이 없고, 그래픽카드는 요즘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게임이나 고화질 영상을 원활히 즐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므로 역시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그 어느 쪽이 더 많이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가려야 한다면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2008년 즈음에 CPU 업체인 인텔과 GPU(그래픽카드의 핵심 칩) 업체인 엔비디아는 상당한 껄끄러운 관계가 된 적도 있는데, 인텔은 CPU가, 엔비디아는 GPU가 더 중요하다며 언론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논쟁이 무의미해질지도 모르겠다. 세계 CPU 시장을 이끌고 있는 양대 산맥인 인텔과 AMD에서 CPU와 GPU를 하나로 합친 통합프로세서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 프로세서의 언급에 대해서는 AMD가 한발 빨랐다. 2006년, AMD는 세계 2위의 GPU 업체인 ATi를 인수하면서 CPU와 GPU를 하나로 합친 이른바 ‘AMD 퓨전(AMD Fusion)’ 프로세서의 개발을 선언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10년 9월 13일, 그 첫 번째 제품의 등장을 예고했다.
[보도기사] AMD 코리아(대표 박용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3일부터 15일까지(현지 시각) ‘자카테(Zacate: 코드명)’로 알려진 AMD 퓨전 APU의 공개 시연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자카테는 사용자의 PC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CPU와 외장 그래픽 카드 성능의 GPU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한 새로운 듀얼코어 방식의 18W(와트) TDP 프로세서다. 보급형 노트북 및 데스크탑 시장을 공략할 자카테 기반 플랫폼을 통해 최고급 사양 PC의 전유물로 자리 잡았던 화려한 디지털 컴퓨팅 경험이 보급형 제품으로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AMD는 현재 개발 중인 퓨전 프로세서를 CPU나 GPU가 아닌 ‘APU’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Accelerated Processing Unit’의 약자로서, 직역하자면 ‘가속 연산 소자’ 정도가 될 것이다. AMD 퓨전으로 인해 PC의 전반적인 성능이 향상된다는 뜻으로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은데, 과연 APU라는 이름이 업계 전반에서 널리 쓰이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인텔 역시 CPU와 GPU의 통합에 열심이다. 통합 프로세서의 예고 자체는 AMD보다 늦었지만 제품은 한 발 먼저 출시했는데, 2010년 1월에 출시한 코어 i5 600 시리즈와 코어 i3 500시리즈, 즉 코드명 ‘클락데일(Clarkdale)’이 바로 그것이다. 클락데일 프로세서는 기존의 인텔 CPU와 달리 내부에 GPU를 내장하고 있어서 함께 발표된 ‘H55’나 ‘H57’ 칩셋 기반의 메인보드에 장착하면 별도의 그래픽카드 없이도 화면 출력이 가능하다.
그리고 인텔은 AMD 퓨전 프로세서의 시연회의 바로 다음날인 9월 14일, 클락데일보다 기능을 향상시킨 신형 통합 프로세서인 코드명 ‘샌디 브리지(Sandy Bridge)’의 주요 기능을 소개하는 포럼을 개최하여 ‘맞불’을 놓았다.
[보도기사] 인텔은 인텔개발자회의(IDF: Intel Developers Forum)에서 2011년에 선보일 2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 제품군의 주요 특징들을 소개했다. 기존 기능은 향상되고 새 기능이 추가된 이번 제품군에서는 프로세서의 성능과 배터리 수명을 높이고 비주얼 관련 기능을 프로세서에 바로 내장시켰다. 코드명 샌디 브리지(Sandy Bridge)로 알려진 이 제품은 인텔에서 최초로 도입하는 비저블 스마트(visibly smart) 마이크로아키텍처에 기반하며, 차세대 하이-K 메탈 게이트 트랜지스터와 32나노 공정 기술을 통해 인텔의 최첨단 생산 설비에서 생산된다.
이렇게 양사에서 통합프로세서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 차후 PC 시장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써오던 별도 장착 방식의 그래픽카드가 갑자기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인텔에서 한 발 먼저 발표한 통합프로세서인 클락데일은 CPU로서의 성능은 상당히 우수했지만, GPU로서의 성능은 기존의 메인보드 내장 그래픽보다 다소 나아진 정도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3D 그래픽 기반의 게임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별도의 그래픽카드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한 AMD의 자카테와 인텔의 샌디 브리지에 대한 양사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풀 HD급의 고화질 비디오 재생’, ‘메인스트림(Main Stream: 주류, 평균)급의 온라인 게임’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이전의 통합 프로세서나 메인보드 내장 그래픽에 비하면 향상된 성능이지만 기존의 이른바 하이엔드(High end)급 그래픽카드를 넘볼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통합 프로세서의 시대는 지금이 시작이므로 앞으로는 분명 이보다 나은 성능의 제품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2000년 즈음까지만 해도 따로 장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운드카드나 랜카드 등이 지금은 메인보드에 통합되는 것이 당연해진 것처럼, CPU와 GPU의 통합도 어찌 보면 정해진 수순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따름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