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제품이 크라우드 펀딩에... 소비자 기만에 환불 요구 거세
[IT동아 이상우 기자] 최근 국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진행 중이던 일부 펀딩이 펀딩 자체를 취소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기업의 자체적으로 개발 및 생산한 제품이라는 설명과 달리, 중국에서 이미 생산 및 유통 중인 제품을 저렴하게 수입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후원자를 모집하는 등 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기본적으로 제품, 공연, 사회공헌 등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초기 기업에게 부족한 자금을 군중(Crowd)을 통해 모은다는 의미로, 소셜 벤처, 소셜 펀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령 새로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한 기업은 이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군중으로부터 투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이용해 제품을 완성 및 출시한다. 대신 초기 투자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을 비교적 싼 가격에 제공하거나 출시 이전, 투자자에게 먼저 제품을 공급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 11월 18일 펀딩 자체를 취소한 '다모칫솔'의 경우 이미 중국 제조사에서 생산하고, 알리바바나 타오바오 등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으로 펀딩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 한 인플루언서에 의해 알려지면서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의 후원 취소가 이어졌다. 결국 해당 펀딩은 완전히 무산됐으며, 와디즈 역시 '다모칫솔'을 포함해 진행 중인 혹은 최근 진행이 끝난 프로젝트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모칫솔 펀딩을 진행하던 바른리빙은 중국 제조사에서 생산하던 기존 제품의 디자인을 일부 개선해 유통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소비자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다른 사례도 있다. 한 이어폰 제품의 경우 펀딩을 마쳤지만, 해당 제품이 이미 해외 직구로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밝혀지고 품질 역시 논란이 되면서 펀딩에 참여한 사람에게 환불해주겠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같은 플랫폼에서 펀딩을 진행한 무설치형 식기세척기 역시 해외에서 동일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 드러나 결국 펀딩 자체를 취소했다.
사실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에서 유통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가령 OEM(주문자상표 부착 생산)은 기업이 자체적으로 설계 및 디자인한 제품의 생산을 외부 제조업체에 맡기는 방식이다. '주문자상표 부착'이라는 말 때문에 완성품에 로고만 붙인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설계 및 디자인을 기업이 직접 하고, 생산만 위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를 개발한 기업의 제품으로 인식한다. 애플의 아이폰을 중국 폭스콘에서, AMD 프로세서를 대만 TSMC에서 위탁생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ODM(생산자 개발제작)은 여기서 더 나아간 방식으로, 제조업체에서 직접 설계 및 디자인까지 한 제품을 유통사와 협력해 브랜드화 하고, 유통하는 방식이다. 국내 중소브랜드가 유통하는 미니 가습기나 공기 청정기 혹은 휴대용 선풍기 등이 유사한 디자인을 갖춘 이유 역시 이러한 제품을 총판 계약 등을 통해 수입/유통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부품이나 구성품 등을 변경하는 등 가격이나 구성을 조절해 국내에 유통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ODM은 국내 대기업 역시 이용하는 방식으로, 보급형 제품군에 대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ODM을 채택해 자사의 브랜드로 유통/판매한다. 이러한 경우 국내 대기업이 제품 검수나 환불, 교환, AS 등의 업무를 모두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라우드 펀딩의 경우 기업이 실제 제품 기획 및 제작에 더 많이 참여해 제품을 완성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펀딩의 경우 대부분 중국에서 이미 생산/유통 중인 제품을 가져왔으며, 이를 고지하지 않고 마치 직접 생산한 것처럼 소비자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게다가 소비자는 해외 직구로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만큼 굳이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 따르면 펀딩을 진행할 수 있는 제품은 크게 4가지 유형이다. 먼저 설계부터 생산까지 거의 대부분을 직접 하는 경우로,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크라우드 펀딩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다음은 설계에서 생산까지 기업에서 이뤄지지만 국내외 제조업체에서 위탁생산하는 OEM 방식이다. 대부분의 초기기업은 직접 생산 라인을 갖출 만큼의 자본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제조 부분만 위탁생산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시중에 유통 중인 ODM 제품의 일부를 개선하거나 변형해 위탁 생산하는 방식으로, 이 때는 독점위탁계약서나 국내 유통에 필요한 각종 인증을 취득하고, 사후 관리에 대한 내용을 증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외 ODM 제품을 국내에 독점으로 유통할 수 있도록 총판계약을 맺을 경우 이를 서포터에게 공지하고 해외 직구와 비슷한 형태로 펀딩을 진행할 수 있다.
논란이 된 다모칫솔의 경우 제조업체와 협력해 일부 디자인을 개선했다고는 하지만, 펀딩이 끝나기도 전에 거의 동일한 제품이 이미 시중에 유통됐으며, 해외 직구로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직접 개발한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며, 해외 직구보다 더 비싼 가격에 후원자를 모집한 만큼 여기에 참여한 소비자의 불만은 클 수밖에 없다.
사실 크라우드 펀딩에서 이러한 논란은 꾸준히 이어졌다. 예를 들어 산소통 없이 잠수할 수 있다는 '인공 아가미' 트리톤은 물에서 산소를 분리해 호흡한다 -> 액화산소를 이용한다 등으로 말을 바꿨지만, 기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못했고, 결국 많은 후원자들이 등을 돌렸다. 마이티 넘버9이라는 게임 역시 록맨의 정신적 후속작을 내세우며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지만, 출시가 지속적으로 연기되고, 결국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출시돼 후원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 밖에도 목표한 모금액을 달성한 후 잠적하거나 진행이 지나치게 늦어져 출시가 불투명한 경우도 있으며, 제품 출시 후 설명했던 기능이나 성능이 탑재되지 않는 등 완성도가 떨어져 소비자의 원성을 사는 경우도 많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크라우드 펀딩은 쇼핑몰이 아니라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는 소비자가 직접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격이나 성능을 비교하고, A/S 가능 여부 등을 충분히 고려하며 구매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크라우드 펀딩은 일종의 투자다. 기업이 펀딩에 성공했지만 제품 개발에 실패하거나 수준 낮은 제품을 개발했다면 후원자는 결국 투자에 실패한 셈이다. 때문에 후원자의 주의가 필요하며, 플랫폼 역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을 국내에 가져와 유통하는 것은 절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값싸게 들여온 제품에 그럴듯한 스토리를 붙여 판매하는 창구가 아니다. 이러한 고지 없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마치 직접 개발해 생산한 제품인양 소개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것은 엄연한 사기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역시 장기적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때문에 플랫폼에서는 펀딩을 진행하기 이전, 기업과 제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조사한 뒤 이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