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업 코리아] 버넥트 BM 분석 (1) 잘 나갈 때 포스트 비즈니스모델을 준비하라!
기업 성장 지원 프로젝트 '2019 스케일업 코리아' 네번째 기업 '버넥트'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산업현장을 만들겠다는 젊은 스타트업입니다(Better Industrial Sites with AR).
산업용 AR 솔루션은 산업 현장마다 각기 다른 요구 조건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버넥트'는 어떻게 하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큰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비즈니스모델 전문가 황현철 대표가 현재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AR 기술과 버넥트의 경쟁력에 대해 점검해봅니다.
AR(증강현실)의 시대가 온다
어떤 이가 안경을 쓰고 길가를 걷는다. 길 가다 발견한 상점의 간판을 보고 안경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상점 정보가 주르륵 눈앞에 나타난다. 또 길을 걷다 보니 방향이 헷갈린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자, 현실 위에 그래픽으로 가야 할 방향과 거리가 나타난다. 식당 간판만 쳐다봐도 고객 평점과 코멘트가 나오며, 원하면 메뉴도 볼 수 있다.
< Blippar AR app, AR city, 출처: 블리파 블로그 >
필자와 같이 AR이라는 용어조차도 낯설어 하는 사람에게 '이봐, AR이란 이런 신묘한 세상을 만드는 기술이야'라고 친절히 알려준 것은 영국의 스타트업 블리파(Blippar)였다.
올해 가장 떠들썩한 기술 키워드는 5G였다. 뉴스와 통신사 광고 등에서 5G가 상용화되어 세상이 변할 것처럼 난리였지만, 정작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체감하는 생활 속 변화는 1도 없다. 그러나 5G 통신망 위에 AR 서비스가 위 그림처럼 구현되어 당신의 눈앞에 나타나면 그 영향력은 10여 년 전 스마트폰 출현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당신이 접하는 모든 미디어 콘텐츠, 그리고 정보 입력 등에도 AR 기술을 사용하고 있을 테니까.
< 이제 당신은 손가락만 움직이면 된다. 아니 쳐다보기만 해도 된다. 'Blippar's Vision for AR wearables',
출처: 블리파 블로그 >
엔터테인먼트에서 실용의 시대로
AR 기술은 '포켓몬 고'라는 게임으로 먼저 친숙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2015년에 AR 게임의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Magic Leap'의 컨셉 영상이었다. 자신이 누운 방 천정에서 좀비가 빠져 나오고, 갑자기 탱크가 벽을 때려 부수며 들어오는 이 충격적 비주얼은 4년여가 흐른 뒤 'Magic Leap One'이라는 AR 글라스 출시와 함께 현실화되었다.
< Magic Leap가 Weta Workshop과 협업하여 내놓은 AR 게임 컨셉 영상 >
이 AR 게임은 누가 봐도 끌릴 수밖에 없고, 당장 사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름신의 계시가 있다 해도 넘기 버거운 벽이 있다. 비싸다는 거다. 게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AR 글래스를 장만해야 하는데 Magic Leap One은 $2,295이고 MS 홀로렌즈2(Hololens2)는 $3,500이다. 몹쓸 장난감이다.
< Magic Leap One, 250만 원 짜리 몹쓸 장난감 >
게임용으로 사용하기에 비싸지만, 산업용이라면 아주 다른 얘기가 된다. 산업에서의 안전, 품질, 생산성 측면에서 뭔가 차원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오히려 싼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글래스는 위에 언급한 비싼 메이커(?) 제품이 아니라 60~90만 원대 보급형 기기를 써도 훌륭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간파한 세계 유수의 기업과 학자들이 AR을 이용해 산업현장에서 작업 생산성을 높이고, 점검과 관리 비용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잠깐만 검색해봐도 '보잉이 생산성을 올렸네', 'BMW가 비용을 절감했네'하는 무수한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포스 넘치는 이 글로벌 기업들이 AR을 활용하는 방법은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다단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결국 모두 "통합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해 정확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AR로 설비의 복잡다단한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고, 원격으로 수리를 지원하며, 공정에서 순서대로 작업을 지시한다. 심지어 교육하는 것까지…, 모두 본질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다.
게임이 아닌 현실 산업 현장에서 이 모든 것은 '수익성'의 문제가 되기에 투자하는 것이다.
< 설비의 점검과 수리를 이렇게 알려준다면, 출처: thearea.org >
이런 이유로 AR 기술의 활용 측면에서는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보다 부가가치가 확실한 산업용 시장이 먼저 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수치로도 엄청난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전세계 기업들이 AR에 지출한 비용은 2018년 80억 달러, 2019년 192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AR은 이미 실용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 전세계 기업 증강현실 소프트웨어, 서비스, 하드웨어 지출액, 출처: IDC >
버넥트의 비즈니스 모델
그 핫하다는 산업용 AR 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버넥트(Virnect)'라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들여다보자.
< 버넥트 비즈니스 모델, 출처: 인사이터스 >
비즈니스모델을 최대한 심플하게 분석하면, 기술과 제품이 AR일뿐 우리가 흔히 아는 IT솔루션 회사와 별다를 바 없다. 겉으로 보기엔 그런데 이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솔루션 구축형(A형) + 솔루션 판매형(B형)
버넥트 고객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개발해 달라는 커스터마이징 요구형(이하 A형)과 버넥트 제품(SDK 및
Remote 등 모듈) 중 자신들이 필요한 모듈만 구매해 자신들이 개발/출시하거나 또 다른 고객에게 납품하는 개발사(이하 B형)다. 글로벌
선두주자 PTC의 뷰포리아는 B형 고객이 많은 반면, 버넥트는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는 A형 고객이 90% 정도를 차지한다. 거의 모든 고객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요구한다. 개발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인력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소위
확장성(Scalabil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이 정말 나쁜 것일까?
성장 규모와 속도를 위해서는 B형 고객
전세계 AR솔루션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PTC의 뷰포리아와 같은 AR 개발 플랫폼은 B형 고객 유형이 9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AR 엔진과 패키지를 가져다 커스터마이징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는 PTC가 직접 하지 않고 총판과 같은 외주업체들이 담당한다. 자신들은
열심히 개발하고 배포할 뿐, 어렵고 힘든 일은 고맙게도 외부 협력자분들이 해 주시니 이 얼마나 좋은가. 성장에 유리하며 인건비도 절감되어
수익성도 좋다.
< Vuforia Developer Portal – AR Engine >
한없이 좋아 보이는 뷰포리아 비즈니스모델에도 문제는 있다. 그 문제란, 매우 괜찮은 성능과 기능을 가진 AR 엔진이 공짜로 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AR 엔진, 즉 AR의 핵심 기능을 담아 개발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SDK(Software Development Kit)를 구글과 애플이 공짜로 풀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에만 적용할 수 있지만, 내년에는 글래스용도 나온단다.
< Google AR Core, 출처: 구글 >
< Apple AR Kit, 출처: 애플 >
'공짜로 풀리는 게 오죽하겠냐'라고 생각하시는 독자들도 있으실 거다. 그래서 준비했다. 구글과 애플의 AR SDK 기능과 성능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 세상 누가 완벽히 객관적인 판단을 해줄 수 있겠냐만, IT 전문매체 'Think Mobile'에 게재된 AR SDK의 성능 비교를 보면 참고는 될 수 있을 거 같다. 보시다시피 유료로(그것도 아주 비싸게) 판매하는 뷰포리아와 동등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평가 항목이 매우 범용적인 요소들이므로 한계는 있으며, CAD 데이터를 뷰어에서 바로 인식하는 등 뷰포리아만의 독보적 기능이 있으니까 비싼 거다.
< 출처: Think Mobile >
버넥트의 커스터마이징 대응은 생존을 위한 선택
위에서 얘기한 것을 요약해보자. 솔루션(SDK)만 팔면 성장에 유리한 건 맞는데, 공짜가 풀리고 있고 그 공짜 제품이 꽤 괜찮다. 고로 웬만한 개발자들은 범용 기능을 갖춘 구글이나 애플의 AR SDK를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료로 AR SDK를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범용 SDK가 가지지 못한 기능을 가져야 하며(예: 뷰포리아의 CAD 데이터 인식), 그러려면 산업용에서도 특정 영역/특정 기능에 특화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인 거다. 덩치가 작은 후발주자는 남들이 안 가진 기능을 열심히 개발하고, 고객 요구에 맞춤형으로 대응해야 한다. 결국, 버넥트의 고객 요구 대응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버넥트는 SDK를 무료 배포하지 않는다. SDK마저도 고객사 요구에 따라 기능을 포함/삭제해 제공하고 'Remote', 'Make', 'View' 등 제품을 판매하더라도 그들의 목표 시스템 구축을 위해 커스터마이징 작업이 뒤따른다. 전력, 철도 등 유틸리티 산업과 반도체와 같은 설비 산업의 특성상 매우 높은 보안 수준을 요구하기에 단순 솔루션 판매보다 판매와 구축이 혼합된 형태의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어렵고 힘들지만 '고객의 요구에 대한 성실한 대응'이 이들의 경쟁력인 것이다. 아, 결국 후발주자의 경쟁력은 근면 성실뿐인가? 그럼 성장은 어떻게 하지?
제품군의 분석
혹시나 경쟁력이 근면 성실 밖에 없을까 봐 하태진 대표에게 꼬치 꼬치 파고들며 물었다. 다행히 HMI 및 도면 인식 기능, 번호판 인식을 통한 설비 구분, 2차원 및 3차원 동시 객체 인식 등등 버넥트 AR 엔진만의 특화된 기능이 있다는데 - 무지한 필자가 못 알아들어 그렇지 - 뭔가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필자가 이해한 수준에서 각 제품별 기능과 특징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 버넥트가 보유하고 있는 핵심기술과 제품군, 서비스 채널과 고객군, 출처: 인사이터스 >
경쟁사와의 제품군 비교
AR솔루션 시장에서 글로벌 선두주자는 PTC라는 업체다. AR 콘텐츠를 만들어 봤거나 관심있었던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뷰포리아(Vuforia)는, 이들의 개발 플랫폼 제품명이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쓴다는 게임엔진(콘텐츠 저작도구)
유니티(Unity)에 아예 기본 탑재되어 버린 이 바닥의 무시무시한 강자다. 국내에는 버넥트보다 6년이나 앞서서 AR 사업에 뛰어든
맥스트라는 업체도 있다. 이들 간 제품군을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은데, 세부적인 기능 차이는 있으나 Product Line은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도 후발 주자인 국내 기업들이 선두주자인 PTC를 벤치마킹하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한다.
< 버넥트, 뷰포리아, 맥스트 비교표, 출처: 인사이터스 >
그렇다면 결국은 각 제품이 갖고 있는 기능과 성능 차이로 시장 경쟁력이 판가름 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AR의 '기능과 성능'이라는 것에 만능이라는 것은 없어서 어떤 산업, 어떤 영역에서 특화되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뷰포리아가 가진 기존의 우월한 입지, 글로벌 영업 네트워크와 지명도, 기술력 등과 비교해 버넥트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국내 기업 맥스트 또한 현대차 제네시스 정비 매뉴얼 등 만만치 않은 레퍼런스를 자랑하고 있다. 다행히 버넥트는 스마트하게도 산업 AR, 그중에서도 '현장'에 집중했다. 그 결과 도면 인식, 설비 구분 등 남들과 다른 기술적 차별성을 가졌으며, 글로벌 선두업체 뷰포리아와 거의 동등한 Product-line을 구축했다. 각각의 SW는 타사 대비 기능과 성능 면에서 동등 이상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시장 차별성과 기능 차별성을 어느 정도 가진 셈이다. 왜 투자자들이 버넥트라는 이 회사를 주목하는지 조금 이해된다.
#좁은타겟고객 #로맨틱 #성공적
'현장'에 집중한 버넥트는 비교적 타깃 고객 군을 좁게 잡은 편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제조업', '서비스업'과 같이 벙벙한 고객 군을
목표로 하는 반면, 이들은 변전소/발전소의 설비 및 전기 가스 점검, 기계설비 없이 기술 지원 및 정비 지원 등 매우 구체적인 고객 군을
정의했다. 이들이 가진 솔루션을 마케팅하기 위해 유튜브와 블로그 등 고관여 고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채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스마트팩토리, 발전산업 등 타깃 고객 군과 깊게 연관된 전시회에 집중해 프로모션을 전개했다. 그 결과 연락이 오는 고객들
또한 자신들이 의도한 타깃 고객 군에 속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 콘텐츠산업 3대 혁신 전략 발표회에 참가한 버넥트, 출처: 버넥트 블로그 >
자원이 한정된 기술 스타트업의 바람직한 접근법이다. 그래서인지 이 회사는 지난해 22억 원의 매출을, 그리고 올해 또한 양호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부럽다. 훌륭하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새로운 방향성은 필요하다. 지금까지 쓰던 방식이 나빠서가 아니라, 매출 100억 원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제 수요고객에 대한 마케팅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 자원과의 협업이 중요해질 것이고, 다면적 마케팅 체계가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ost VIRNECT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은?
버넥트는 잘나가는 스타트업이다. 매출도 늘었고, 최근 시리즈A 투자는 90억 원이나 받았다. 그럼에도 고민은 다양하다.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하느라 인력이 늘었음에도 또 손이 부족하고, 워낙 쟁쟁한 기업들과의 경쟁인지라 제품 경쟁력을 위한 연구개발에도 뒤처질 수 없다. AR이라는 복합적 기술 특성 탓에 프로세스는 얽히고설킨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어찌 보면 작은 고민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정말 깊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PTC(뷰포리아)와 같은 글로벌 기업과 어떻게 싸워 나갈 것인가', '어떻게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할 것인가'여야 한다고 믿는다. 세계적 기업과 AR 분야에서 같은 제품군, 같은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경쟁한다는 것에 대한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이대로라면 한국이라는 우물, 그 우물에 서식 가능한 사이즈가 이들의 한계가 될 것이다. 가장 핵심적으로 지적했던 커스터마이징 요구 고객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상황은 기회에 대응하는 생존 방법이기도 하지만,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이기도 하다. 지금 이들에게는 그 구조적 한계에 도전하기 위한 새로운 그림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 새로운 그림, 즉 성장을 위한 비즈니스모델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해볼까 한다.
다음 편에서는 버넥트가 우물 너머 큰 세상에서 우뚝 서기 위한 '포스트 버넥트의 비즈니스모델'에 대하여 말씀드려 보겠다. 지금까지 산만하고 어려운 글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필자 / 인사이터스 황현철 대표
실전 비즈니스모델 컨설팅 전문가.
19년간 비즈니스 전략, 프로세스, 생산, 품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중심의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까지 실체적 비즈니스모델 컨설팅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 기업 극화 소설 '비즈니스모델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정리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