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8K 겨뤄보자'는 LG와 삼성, 핵심은 '화질선명도'에 있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2019년 9월 6일부터 11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9)' 전시장 내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LG전자가 전시해 놓은 8K TV 비교관이 그것. 여기에는 두 개의 TV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그 위를 측정 장비가 오가며 화질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화제를 모았던 것은 LG전자가 '화질 선명도(Contrast Modulation)'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비교 대상은 LG전자의 나노셀(NanoCell) 8K TV와 기타(Other) 8K TV였다. 정확한 제조사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브랜드다. 많은 TV 제조사들이 관련 패널을 적용하고 있기도 한데, 바로 QLED다. 중요한 것은 나노셀의 화질 선명도는 90%, 타 8K TV의 화질 선명도는 12%에 불과하다는 부분이다. 그 동안 서로 화질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LG전자가 처음으로 화질에 대해 정면으로 비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LG전자의 움직임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불쾌감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한종희 삼성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사장)은 “우리가 8K 시장을 이끌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패널 업체에서 8K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8K이고, 어떻게 화질 개선을 할지는 TV 제조사의 역할”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화질 선명도'일까?
왜 화질 선명도(Contrast Modulation)라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생소해 보이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논의되어 오던 이야기다. 지난 2016년 5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 디스플레이 계측위원회(ICDM – International Committee for Display Metrology) 정기총회는 여러 디스플레이 설계 방식에 의해 달라지는 화질을 정의하기 위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ICDM은 국제 정보 디스플레이 학회(SID – 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의 산하 기관으로 유명 인증 기관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디스플레이 제조 기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권위를 인정 받는 기관으로 꼽힌다. 여기에서 그들은 TV 디스플레이의 해상도 기준을 라인(화소 수) 외에도 '화질 선명도' 값을 반드시 명시하는 것에 합의했다. 기존에는 이 수치가 50%를 넘으면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 결정으로 측정 수치를 반드시 표기해야 된다. 소비자가 TV를 구매할 때 보다 정확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8K TV의 해상도는 7,680 x 4,320으로 4K(3,840 x 2,160)의 4배 면적을 제공한다. 이를 온전히 출력하려면 약 3,317만 개의 화소가 모여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화면을 가득 채운 화소의 수가 아니라, 화소가 뿜어내는 화면의 품질 확보다. LG전자가 IFA 2019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다양한 영상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TV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화질'이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의 반응. '제조사가 8K라고 하면 8K다'라는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지난 2016년 7월 20일, 자사 뉴스룸(영문)을 통해 화질 선명도를 언급한 바 있다. 'ICDM이 해상도에는 화소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결정하다(ICDM Decides There's More to Resolution than Pixel Count)'라는 제목에서 화질 선명도(Contrast Modulation)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해당 내용 중 두 번째 질의 내용에서는 ICDM 총회에서 어떤 결정들이 있었는지를 묻는다. 이에 화질 선명도가 디스플레이 해상도 측정을 위한 최적의 기준이라 결정됐고, 해당 내용의 전달이 의무화 되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2016년 5월 ICDM 정기총회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 규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3년 전 ICDM 총회의 기준이 4K 디스플레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8K 구현은 제조사 마음이라고 주장하는 삼성전자의 입장은 다소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ICDM의 결정에 의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디스플레이 해상도 표기 시 선명도를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매장에 배치한 바 있기 때문이다. 4K는 괜찮고, 8K는 그렇지 않은지 궁금할 따름이다.
'90% vs 12%' 중요한 것은 숫자 밖에 있다
TV에서 화질은 선택의 기준 중 하나가 된다. 그런 점에서 90%와 12%는 극명한 차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숫자 외적인 요소를 따져보면 이 같은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부분이다. 큐엘이디(QLED, QD-LCD)와 나노셀의 구조를 보면 그렇다.
기본적으로 QLED와 나노셀은 액정(LCD) 기반 기술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RGB 구조라는 점도 같다. 그러니까 화소를 구성하는 화점이 RGB(빨강·초록·파랑)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 대신 패널 특성은 다르다. QLED는 수직 전계식(VA – Vertical Alignment), 나노셀은 평면내 전환(IPS – In-Plane Switching) 방식을 쓴다. 둘 다 반응성과 색재현, 시야각 등에 이점을 보이지만 IPS 기술이 VA 대비 기술적 성능적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부적으로 봐도 차이가 있다. QLED는 양자점(Quantum-Dot) 필름을 패널 뒤 조명(백라이트)에 배치하고, 나노셀은 1나노미터(nm) 단위의 입자를 패널에 씌워 각각의 특성을 끌어올렸다.
QLED의 양자점 필름은 파란색 빛의 파장을 광원으로 쓰게 되며, 양자점 크기(흔히 2~12nm)에 따라 빛의 파장이 달라지면서 색재현 능력을 높이게 된다. 나노셀은 패널 자체에 1nm 단위의 입자를 씌워 빛이 미세한 틈을 통과하며 색재현 능력을 높였다.
그렇다면 큰 차이가 없음에도 왜 화질 선명도에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포브스(Forbes)의 존 아처(John Archer) 소비자 기술 부문 수석 기고자가 작성한 글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기고문에서 “삼성 TV의 화질 선명도가 낮아진 것은 VA 방식의 약점인 시야각을 더 개선하기 위해 취한 접근 방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액정 패널에 시야각 확대를 위해 적용한 보상 필름과 보조 화점(서브픽셀) 구동 방식을 바꾸는 등의 조치로 인해 화질 선명도가 떨어지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시야각 보상 필름을 적용하면 빛을 골고루 분산시키기 때문에 시야각이 넓어지는 장점은 생기지만 퍼지는 빛으로 인해 화소의 경계선을 흐리게 만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반면, 시야각 자체가 넓은 IPS 구조는 굳이 시야각 확대를 위한 필름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90%와 12%라는 수치는 여기에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두 디스플레이 제조사의 화질 경쟁은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화질·기능·크기·두께 등 여러 기준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와 종류의 TV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와 동시에 소비자 역시 TV를 선택할 때 단순히 8K 같은 해상도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외에 본연의 '화질'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8K 디스플레이 시대가 활짝 열렸다. 독일에서 개최된 IFA 2019 전시장 내에도 국내는 물론 소니·샤프·파나소닉·스카이워스·TCL·하이센스 등 해외 제조사도 일제히 8K 제품을 공개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초고화질 시대 속에서도 정보는 유용하다. '화질 선명도'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