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거와 현재를 담다, 인텔 코어 i7 8086K
[IT동아 강형석 기자] 역사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IT 분야에서는 과거의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한 사례가 종종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도 어떻게 보면 이전 기술(분산 컴퓨팅)에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기술(스마트 컨트랙트나 암호화폐 보상)들을 추가해 완성한 것이다.
프로세서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64비트가 주류지만 과거에 이미 선보인 마이크로 프로세서 설계들에 기초, 꾸준히 살을 붙이며 발전해 왔다. 그 시작은 인텔이 약 40년 전에 선보인 8086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프로세서들은 다양한 신기술을 품고 있어도 기본적인 틀은 40년 전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 프로세서의 조상과도 같은 8086의 탄생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한정판을 선보였다. 코어 i7 8086K가 그것. 지난 2014년 출시되어 화제가 됐던 펜티엄 20주년 기념판 G3258과 같은 성격의 제품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펜티엄과 달리 코어 i7 8086K는 수량 자체가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전설의 프로세서 '8086'의 탄생 40주년을 기념하다
8세대 인텔 코어 i7이 주류인 2018년은 흥미롭게도 지난 1978년 인텔이 출시한 첫 16비트 프로세서 8086의 출시 40년이기도 하다. 이는 흔히 x86 아키텍처라고 부르는,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PC 프로세서의 역사가 약 40년 가량이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전에도 프로세서는 존재했지만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됐기에 그 가치가 더 빛나는 듯 하다.
8086은 과거 8080에 기반했다. 8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1974년 탄생했다. 제품에 따라 4.77MHz(GHz 아니다)~10MHz로 작동했으며 1972년 출시된 8008 대비 처리 속도를 10배 가량 개선한 점이 특징이다. 8086은 여기에서 구조를 더하기/빼기 연산만 가능하던 과거 구조에서 곱셈/나눗셈 연산 명령을 추가하고, 설계를 16비트로 확장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복잡한 이야기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8086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데스크탑 프로세서들의 뿌리와 같은 존재라 하겠다. 그만큼 존재 가치가 높은 이름 중 하나다.
아무튼 인텔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프로세서를 내놨고, 이름도 8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비슷하기 때문에 8086이라고 지었다. 제품명은 코어 i7 8086K. 현재 주력 라인업 중 하나로 코어 i7 8700K가 운영 중인데 숫자만 보면 혹시 성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만 그런 것이고 실제 작동속도는 8700K보다 우위에 있다.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작동속도다. 코어 i7 8700K는 기본 3.7GHz, 최대 4.7GHz로 작동하도록 설계됐지만 코어 i7 8086K는 기본 4GHz에 최대 5GHz로 작동하게 된다. 수치로만 보면 인텔 프로세서 처음으로 최대 작동속도 5GHz에 도달한 셈이다. 아무래도 8086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한 듯 하다.
이 외에 기본적은 틀은 기존 8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큰 차이가 없다. 6코어, 12스레드(6C/12T) 구조에 열 설계 전력(TDP) 95W 등의 사양을 제공한다. 내장 그래픽도 인텔 UHD 그래픽스 630으로 기존과 동일하다. 대신 원격관리와 보안 기능을 위한 브이프로(vPro), 기업 환경에서 유연한 플랫폼 전환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안정화 이미지 플랫폼 프로그램(SIPP) 등이 제외되어 있다. 기업 환경에 특화된 기능이 제외되어 있으므로 코어 i7 8086K는 완전한 소비자용 데스크탑 프로세서라는 의미가 된다.
플랫폼도 변화는 없다. 기존 8세대 코어 프로세서가 쓰는 인텔 300 시리즈 칩셋 메인보드라면 바이오스 업데이트만으로 즉시 사용 가능하다. 바이오스는 해당 메인보드 제조사에서 배포하고 있으니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면 굳이 프로세서를 쓰지 않더라도 미리 최신 판으로 갱신해 두자.
코어 i7 8086K의 성능은?
코어 i7 8086K 프로세서의 성능을 확인해 볼 차례.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Z370-G 게이밍 메인보드와 지스킬 트라이던트Z PC4-24000(3,200MHz) 메모리 16GB(8GB x 2),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 3GB 그래픽카드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에서 간단한 벤치마크 애플리케이션과 게임을 구동해 봤다. 자체 성능 외에 타 프로세서와의 성능을 비교하기 위해 자체 보유한 코어 i7 8700K 프로세서를 활용했다. 아무래도 두 프로세서간 구조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PC 성능을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벤치마크 애플리케이션인 PC마크 10을 먼저 실행했다. 여기에서는 앱 실행에 대한 기본적인 부분(Essentials)부터 사진 편집과 3D, 영상 작업 성능을 확인하는 부분(Digital Content Creation), 문서나 도표 작업 등 생산성(Productivity), 게이밍(Gaming) 성능 등을 파악하게 된다.
먼저 기본적인 요소와 디지털 콘텐츠 생산에 대한 성능을 알아봤다. 우선 300MHz 속도가 높은 코어 i7 8086K가 일부 영역에서 제법 앞선 성능을 보여준다. 앱 실행 성능과 비디오 컨퍼런스, 웹 브라우징 등 모든 요소에서 속도만큼 성능이 뛰어나다. 디지털 콘텐츠 생산 부분에 있어서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보니까 부하가 많이 요구되는 렌더링 요소에서는 빠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 외 사진이나 비디오 편집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소폭 하락한 모습이다.
이번에는 생산성과 게이밍 성능을 봤다. 생산성은 코어 i7 8086K가 조금 떨어지는 모습이다. 오차범위 내의 작은 수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부분도 조금은 인지해야 될 것 같다. 그만큼 코어 i7 8700K 프로세서의 완성도도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게이밍 성능은 두 프로세서간 차이가 미미한 수준이었다.
3D 렌더링 성능을 파악하는 시네벤치 R15 테스트에서도 이 같은 성향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코어 i7 8086K 프로세서가 1,455점, 코어 i7 8700K가 1,328점으로 차이를 보인다. 300MHz 차이지만 그것이 성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 게다가 이 한정판 프로세서는 오버클럭에 대한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른 체감 성능을 경험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준비도 철저해야 된다. 성능이 올라가면서 발열이 상승하므로 수랭식 혹은 고성능 공랭 쿨러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안정적인 전원공급장치나 메인보드 구성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까다롭지만 그만큼 성능 향상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에는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 3GB 그래픽카드와 조합된 상태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실행했다. 해상도는 풀HD(1,920 x 1,080)에서 그래픽 설정은 일괄 높음이다. 가장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그래픽 설정. 원활한 테스트를 위해 전장은 최근 추가된 사녹(SANHOK)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게임을 실행해 보니 상황에 따라 편차는 크지만 대체로 80~90 프레임(1초에 흘러가는 이미지 수)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주변에 큰 사물이 없다면 120 프레임 전후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며, 플레이어가 많은 경우 최저 70 프레임 정도까지 하락하지만 자연스럽게 즐기는데 문제 없는 성능이다.
의미 있는 한정판, 그러나 무작정 구매는 글쎄...
40년 전 프로세서들의 기초가 된 8086을 기리기 위한 한정판 코어 i7 8086K. 솔직히 한정판이라고 해서 이 제품에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리뷰에 쓰인 제품은 엔지니어링 샘플이지만 실제 제품에도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8086을 기념한다는 종이, 그리고 이 프로세서를 구매해 고맙다며 브라이언 크르자니치(Brian Krzanich) 전 인텔 최고경영자의 서명(친필도 아니다)이 있는 종이가 전부다. 남는 것은 이름 뿐인 셈이다.
과거 펜티엄 20주년을 기념해 약 4년 전 출시된 펜티엄 G3258도 어떻게 보면 구성 자체의 특별한 점은 없었지만 오버클럭 성능 하나는 엄지를 세워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잠재력을 보여줘 화제가 된 바 있다. 코어 i7 8086K는 처음으로 최대 5GHz에 도달한 프로세서라는 내부적 의미는 있어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그 이상의 오버클럭 성능을 내려면 그만큼 투자를 감행해야 해서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프로세서의 조상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코어 i7 8086K 자체의 가치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름 뿐이고, 코어 i7 8700K와의 차이를 생각하면 큰 매력이 있다고 보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오버클럭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접근해 보면 300MHz 빠른 것에 의한 성능 향상은 있다. 기본 상태에서 나은 컴퓨팅 성능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이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