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흥망사] '명품 노트북' 소니 바이오는 왜 사라졌나?
[IT동아 김영우 기자] 1990년대의 소니(Sony)는 세계 정상의 가전업체이자, 일본 경제의 상징이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사 제품과 차별화를 했으며, 디자인과 마케팅 면에서도 확연한 프리미엄을 과시하고 있었다. 특히 '워크맨'이나 '트리니트론 TV', '플레이스테이션' 등으로 대표되는 소니 제품의 위상은 누구도 넘볼 수 없었을 정도였다.
<1997년도에 출시된 소니 바이오 PCG-505 / 출처 소니>
하지만 대표적인 IT기기인 PC 관련 시장에서 소니는 의외로 소극적이었다. 1980년대에 MSX(일본 중심으로 팔리던 가정용 컴퓨터) 규격의 8비트 컴퓨터를 출시한 적도 있지만, 이후 10년 넘게 PC 시장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게다가 본래 소니는 독자기술, 독자규격에 대한 집착이 강한 기업이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운영체제)나 인텔(프로세서)과 같은 타사의 핵심기술에 상당부분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PC 시장을 그다지 달갑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95 운영체제 및 인텔의 펜티엄 프로세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인터넷의 보급도 본격화되면서 PC의 대중화 역시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과거에는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PC가 가정의 중심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소니 역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소니의 PC시장 진출 선언, 그 이름은 'VAIO'
소니의 PC 시장 재진출은 당시 소니의 CEO였던 이데이 노부유키(Nobuyuki Idei) 사장의 강한 의지도 한 몫을 했다. 이데이 사장은 단순한 제조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소니를 인터넷 비즈니스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 기업으로 변모 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선 그 매개체 중 하나인 PC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96년, 소니의 새로운 PC 브랜드인 '바이오(VAIO)'가 출범했다. 이는 '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영상 음성 통합 운영체)'의 약자로 영상 및 음향 기능을 중시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V와 A자를 연결해 아날로그적인 파형을 묘사하는 동시에, I와 O자는 디지털의 상징인 1과 0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가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된 새로운 차원의 PC라는 점을 마케팅 요소로 내세웠다.
바이오 시리즈의 첫 제품은 199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시되었고 이듬해엔 일본 시장에도 상륙했다. 이는 노트북이 아닌 데스크탑 제품(PCV 시리즈)이었다. 이 제품은 외부 영상 캡쳐 기능 및 동영상 가속 장치, CD 레코딩 드라이브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호화로운 장비를 갖춘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체 크기가 매우 작었고, 여기에 당시 고화질 트리니트론 모니터를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가격이 40만 엔에 달했음에도 높은 인기를 끌었다.
'프리미엄'으로 뭉친 보랏빛 노트북 '바이오 505'
하지만, 소니의 브랜드를 확고히 한 것은 1997년에 출시된 바이오 시리즈의 첫 노트북인 '505' 시리즈다. 이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단숨에 소니를 PC 시장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끌어올렸다. 바이오 505 시리즈는 가벼우면서 강성이 높은 마그네슘 합금 소재를 대거 적용했다. 덕분에 이전의 노트북에서 보지 못하던 얇은 두께와 가벼운 무게를 갖추고 있으면서 세련된 디자인까지 제공했다. 특히 본체에 은은하게 빛나는 보라색을 도입했는데, 이는 검정이나 흰색이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PC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점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소니 '바이오 505' 노트북>
바이오 노트북은 디자인 외에 기능면에서도 기존의 노트북과 차별점이 많았다. 고속으로 영상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IEEE1394(i-Link) 인터페이스를 기본으로 탑재했으며, 메모리스틱(소니 디지털카메라용 메모리카드) 슬롯을 자체적으로 갖추는 등,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와 같은 외부 AV기기와의 연결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본체에 달린 다이얼을 돌려 자주 쓰는 각종 응용 프로그램이나 부가 기능을 간단히 실행할 수 있는 조그다이얼(jog dial) 기능 역시 타사 제품에선 찾아보기 힘든 바이오 노트북만의 정체성이었다. 그 외에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PC에서 일반화된 아이솔레이션(Isolation, 키와 키 사이에 간격을 두는 디자인) 방식의 키보드 역시 2003년 소니에서 최초로 적용한 것이었다.
바이오 노트북의 다양한 AV 관련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전용 소프트웨어를 다수 탑재한 점도 제품의 특징이었다. 동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인 무비 쉐이커(MovieShaker), 동영상이나 음악, 사진 등을 편하게 관리하고 감상할 수 있는 'PMB(Picture Motion Browser)'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고가의 전문가용 소프트웨어 못지않은 충실한 기능을 갖췄다고 평가받아 이 역시 바이오 시리즈만의 매력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최소형 PC로 발표, 화제를 모은 '바이오 UX(2006년)'>
고급스런 디자인과 독창적인 기능, 그리고 소니 브랜드의 프리미엄까지 갖춘 바이오 노트북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PC 사용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의 상장세가 두드러졌는데, 소니는 1999년에 약 140만대의 PC를 판매하던 것이 2004년에는 약 330만대의 글로벌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 때를 즈음해 각종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전문가들이 바이오 노트북을 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는 등, 프리미엄 노트북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도 굳히는데 성공했다.
고민 끝의 방향전환, 그 결과는?
다만, 이런 와중에도 소니의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바이오 시리즈의 가장 큰 고민은 고가 모델 중심의 제품 라인업이었다. 초기의 바이오 시리즈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고급 기능을 탑재했고, 제품의 생산도 대부분 일본 현지의 공장에서만 이루어졌다. 때문에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데 한계가 있었고 일본이나 북미 등의 선진국 시장 외에서는 판매량이 미미했다. 실제로 소니의 글로벌 PC 판매량은 일찍부터 신흥 시장을 개척한 HP나 레노버 등의 경쟁사에 비해 20%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프리미엄 PC 시장에만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PC 시장의 전반적인 성장세가 둔화되었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면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소니는 판단했다. 이 때를 즈음해 소니는 대부분의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게 되었으며, 성능이나 기능을 간략화한 보급형 제품을 주력으로 삼아 시장 확대를 노렸다. VAIO라는 브랜드의 의미를 '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영상 음성 통합 운영체)'에서 'Visual Audio Intelligent Organizer(시각 음향 지능형 조율자)'로 바꾼다고 선언한 것도 이 시기(2008년)의 일이다.
<바이오 TZ 시리즈는 발열 문제로 2008년에 리콜을 하기도 했다.>
소니의 이러한 전략이 초반에는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 했다. 소니는 2009년에는 약 680만 대, 그리고 2010년에는 약 870만 대의 글로벌 PC 판매량을 달성하며 연 판매량 1000만 대 돌파가 눈 앞에 다가온 듯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던 위기가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2010년대 즈음부터 각 제조사의 기술력이나 제품의 성능이 거의 상향 평준화된 데다, PC 시장 자체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치열한 가격경쟁까지 시작되었다. 제품의 차별화가 어려워진 데다 수익성까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의 소니 바이오 시리즈는 초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상당부분 희석시킨 탓에 예전과 같은 열렬한 마니아층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또한, 소니 제품 전반의 경쟁력이 예전 같지 못했기 때문에 IEEE1394나 메모리스틱과 같이 소니 제품 연동에 특화된 기능도 매력을 잃었다. 더욱이, 판매량 증진을 위해 내놓은 보급형 제품의 경우는 타사 제품과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차별점을 느끼기 힘든 데도 불구하고 가격만 더 비싸다는 비판을 듣곤 했다.
일부 제품의 경우에는 품질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2008년에는 'TZ' 시리즈, 2010년에는 'F' 및 'C' 시리즈, 2014년에는 '피트' 시리즈가 과도한 발열로 인해 화상 및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대규모 리콜을 하기도 했다.
추락 거듭하던 '소니 바이오'의 서글픈 퇴장
다양한 불안요인이 현실화되면서 그 결과는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졌다. 사상 첫 글로벌 1000만대 돌파를 목표로 했던 2011년에는 오히려 약 840만대로 판매량이 떨어졌다. 이러한 하락 추세는 점차 가속화되며 2013년에는 약 580만대 수준으로 판매량이 하락하며 소니의 PC 사업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2014년 2월, 소니는 바이오 브랜드를 포함한 PC 사업부문을 투자펀드회사인 일본산업파트너스(JIP)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3월에 매각 계약을 체결하면서 PC 관련 제품의 개발 및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게 되었다. 이후, 7윌부터 소니에서 분리된 PC 사업부문은 '주식회사 바이오'라는 이름의 별도 PC 회사가 되어 2018년 현재까지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사업의 규모나 제품 라인업, 판매량 등은 소니 시절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축소되어 영향력이 미미하다.
디지털 시대에 '과거의 명품'은 존재하는가?
소니의 바이오 시리즈는 1990년대까지 이어지던 소니의 전성기, 더 나아가 일본 경제의 전성기를 상징하던 전형적인 브랜드 중 하나다. 타사와 확연히 구별되는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제조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굳건한 프리미엄을 형성했으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탄탄하던 일본의 내수 경기, 그리고 PC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2010년에 즈음해 각 업체간 기술이 상향평준화 되고 PC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었으며, 경제 성장의 중심지가 신흥시장으로 이동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정 이상의 성능은 어떤 업체라도 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범용성을 등한시한 독자기술은 약점이 되었다. 또한 기존의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시장 확대에 나선 결과는 브랜드의 가치를 퇴색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큰 손실로 이어졌다.
디지털 기술의 세계에서 '과거의 명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능이 향상된 신제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바이오 505'와 같은 과거의 소니 제품들을 높게 평가한다. 당시 시대를 선도할 만한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니 다움', '바이오 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뚝심 있게 사업을 밀고 나갔다면 자못 다른 결과가 있었을 지도 모를 노릇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