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흥망사] 90년대 휩쓸던 부두 그래픽 카드는 어쩌다가 사라졌나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업계 1위는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 특히 기술 발전 및 트랜드 변화의 속도가 빠른 IT업계라면 더욱 그러하다. 현재 자리에 안주하며 혁신을 게을리한다면 머지않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1990년대 컴퓨터용 3D 그래픽카드 시장의 최강자였던 ‘3dfx 인터렉티브(이하 3dfx)’ 같은 업체가 좋은 사례다.

3dfx
3dfx

고성능이라는 시대의 요구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신형 운영체제인 ‘윈도우95’를 출시하면서 PC 시장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전에 주로 쓰던 도스 운영체제 기반의 PC는 이용방법이 불편하고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구현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윈도우95는 쓰기 편한데다 강력한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PC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PC의 대중화가 본격화되면서 고품질 게임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는데, 특히 기존의 2D 그래픽 기반 게임보다 한층 화려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3D 그래픽 기반 게임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3D 그래픽을 원활하게 구동하기 위해선 강력한 처리능력을 갖춘 그래픽카드(화면을 모니터로 출력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당시 PC용 그래픽카드 시장에는 ATi(후에 AMD로 인수), 쳉(Tseng), S3, 매트록스(Matrox) 등의 업체들이 내놓은 다양한 제품이 있었지만, 성능이나 호환성 면에서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부두 그래픽
카드
부두 그래픽 카드

<최초의 부두 카드. 다른 그래픽카드에 연결해서 쓰는 3D 그래픽 가속기였다. 출처 IT동아>

이런 상황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업체가 바로 ‘3dfx’였다. 미국 실리콘 그래픽스 출신의 기술자였던 개리 태롤리(Gary Tarolli)와 스콧 셀러스(Scott Sellers), 그리고 로스 스미스(Ross Smith) 등은 1994년, 그래픽카드 전문업체인 3dfx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당시로선 혁신적인 성능의 3D 그래픽 가속장치인 ‘부두(Voodoo)’를 발표하고 1996년부터 본격 출시에 나섰다.

3dfx, 압도적인 최강자로 등극하다

3dfx의 부두는 독립적인 그래픽카드가 아니라 기존의 그래픽카드와 연결해서 3D 처리능력을 향상시키는 주변기기 형태의 제품이었다.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 드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이 제품이 발휘하는 강력한 3D 처리능력과 뛰어난 그래픽 품질은 이러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툼레이더
툼레이더

<’툼레이더’ 시리즈와 같은 인기 게임들을 원활히 구동하려면 부두 카드가 필요했다. 출처 에이도스, IT동아>

또한, 부두 시리즈 고유의 그래픽 처리 기술인 글라이드(Glide)는 고품질의 3D 게임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을 받아 당시 게임 개발자들의 선호도도 높았다. 덕분에 부두에 최적화된 게임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툼레이더’ 시리즈나 ‘퀘이크’ 시리즈, ‘니드포스피드’ 시리즈와 같은 인기 게임들이 부두를 탑재한 PC에서 최적의 품질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성능 외에 호환성 측면에서도 타사 제품을 압도하니 게임 마니아들 역시 부두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3dfx는 여세를 몰아 1997년에는 단독으로 구동 가능한 그래픽카드인 ‘부두 러시(Voodoo Rush)’, 1998년에는 기존 부두의 성능을 한층 향상시킨 ‘부두2(voodoo2)’등의 신제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승승장구했다. 덕분에 1990년대 3D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3dfx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최강자로 등극했다.

시작은 미약했던 경쟁자

이러한 와중에 다른 업체들도 분발했지만 3dfx의 아성은 여전히 굳건했다. 가속 성능이나 그래픽 품질, 호환성 면에서 부두를 능가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름 성과를 거둔 업체가 없지는 않았다. 1993년에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황(Jensen Huang)이 설립한 ‘엔비디아(Nvidia)’가 대표적이었다. 엔비디아가 1995년에 출시한 ‘NV1’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후속 모델인 ‘리바 128(RIVA 128, 1997년)’, ‘리바 TNT(RIVA TNT. 1998년)’ 등은 성능 면에서 부두 시리즈와 비교할 만하다는 평을 들으며 조금씩 사용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다만, 엔비디아의 제품이 쓸 만하긴 했지만 여전히 시장에선 3dfx 부두 시리즈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브랜드 인지도는 물론, 콘텐츠 호환성 측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드웨어의 성능이 대등하다는 것 만으로는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없었다.

성공에 취한 나머지 저지른 실수

그런데, 이 시기를 즈음해 3dfx는 큰 실수를 범하고 만다. 본래 3dfx나 엔비디아 등은 그래픽카드의 핵심 칩(GPU)만 생산했다. 그리고 각 제조사는 칩을 공급받아 그래픽카드를 생산,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키웠다. 그런데 1999년 초, 3dfx는 최신제품인 ‘부두3(Voodoo3)’를 발표하며 향후 다른 제조사에 칩을 공급하지 않고, 자사에서 독점적으로 그래픽카드까지 생산해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부두 그래픽
카드
부두 그래픽 카드

<1999년에 출시한 부두3부터 3dfx는 자사에서 그래픽카드를 독점 생산했다. 출처 IT동아>

3dfx의 이러한 발표에 대해 기존의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당연히 반발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제품 선택의 폭이 좁아질 뿐 아니라, 공급 물량 역시 줄어들고 제품 가격도 비싸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dfx는 계획을 굽히지 않았다. 압도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시장을 독점하고 수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의 엔비디아는 정 반대의 전략을 구사했다. 최신 제품인 ‘리바 TNT2(RIVA TNT2)’를 출시하면서 여전히 엔비디아는 칩만 공급하고 그래픽카드 생산은 각 제조사에게 맡겼다. 그리고 고급 사용자를 위한 고가 모델 외에도 가격대 성능비를 강조한 보급형 모델인 ‘반타(Vanta)’ 등의 다양한 추가 제품을 발표하며 시장의 크기를 키우는데 주력했다.

브랜드 선호도는 다소 낮다고 하지만, 제품 선택의 폭이 넓은데다 성능도 나쁘지 않고, 가격 면에서도 매력적인 엔비디아 계열 신형 그래픽카드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되면서 3dfx 일색이었던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3dfx에서 독점 공급하는 부두3 그래픽카드 역시 여전히 인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엔비디아 기반 그래픽카드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게임 개발사들 역시 이에 최적화된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고, 콘텐츠 호환성 면에서 유리하다는 예전 3dfx의 장점도 퇴색되기 시작했다.

잠깐의 방심이 부른 참혹한 결과

그리고 1999년 말, 엔비디아에서 당시로선 혁신적인 성능을 갖췄던 최신 그래픽 칩인 ‘지포스 256(Geforce 256)’, 그리고 가격대 성능비를 한층 더 극대화한 ‘리바 TNT2 M64’ 등의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3dfx는 결정타를 맞게 된다. 가격과 콘텐츠 호환성은 물론, 성능 면에서도 더 이상 우위를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궁지에 몰린 3dfx는 2000년에 신제품인 부두4(Voodoo4), 부두5(Voodoo5) 시리즈 등을 발표하며 전세를 뒤집어보고자 했으나, 여전히 성능과 가격 면에서 엔비디아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또다른 경쟁사인 ATi에서 엔비디아와 경쟁할 만한 상품성을 갖춘 신제품인 ‘라데온(Radeon)’ 시리즈를 출시하게 되면서 3dfx는 재기불능 수준의 타격을 입게 된다.

엔비디아
엔비디아

<엔비디아 로고>

결국 2000년말, 3dfx는 생산시설을 매각하고 주요 기술 및 인력을 경쟁사인 엔비디아에게 넘긴다고 발표하며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완전히 폐업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999년까지만 해도 3dfx가 이렇게 급격하게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는데, 그 정도로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 비즈니스 사회에서 영원한 1등은 없다고 하지만,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3dfx의 흥망성쇠는 극단적이었다.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본격화 한지 불과 1~2년 사이에 업계의 최강자로 등극했다가, 불과 2년여의 전성기를 보낸 후 거짓말처럼 갑자기 시장에서 퇴출되었기 때문이다.

3dfx는 시대를 선도할 만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업계의 정점에 올랐던 기업이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얻은 큰 성공에 취한 나머지, 자사의 근간이었던 기술 개발에 소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만한 ‘갑질’까지 시도한 결과,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3dfx의 사례는 비즈니스에서 잠깐의 방심이 얼마나 극단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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