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레벨4? 각 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IT동아 이상우 기자] 영화 토탈리콜(1990)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인 더글라스 퀘이드가 로봇이 운전하는 '조니 택시(Johnny Cab)'에 탑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로봇 운전사는 직접 택시를 몰며 탑승객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만 하더라도 미래에는 사람이 앉는 자리에 로봇이 대신 앉아 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각종 센서 기술과 인공지능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운전석에 누군가가(사람이든 로봇이든) 앉지 않아도,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을 하는 자율주행의 시대가 눈앞에 왔다.
실제로 지난 CES 2018에서는 완성차 제조사, 부품 제조사는 물론, 각종 센서 관련 기업이나 인공지능과 관련한 기업 등이 참가해 당장 실현 가능한 지능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 부터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율주행 콘셉트카 등을 선보였다.
자율주행은 실현 수준에 따라 몇 가지 단계로 구분한다. 각 제조사마다 단계를 구분하는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국제 자동차 기술자 협회(SAE, 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가 나눈 0~5단계(levels 0 ~5)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각 단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0단계는 아주 기초적인 자동차로, 인간이 직접 운전석에 앉아 조향, 가/감속, 제동 등을 직접 제어하는 방식이다.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차선을 이탈하거나 앞차와의 간격이 좁을 때 경고음음을 들려주는 기능 역시 이에 해당한다. 경고를 할 뿐, 모든 조작은 운전자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1단계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 본격적인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갖춘 차량이다. 0단계에서 단순히 경고음을 들려주는 것에서 벗어나 자동차가 제동, 조향, 가/감속 등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 차량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크루즈 컨트롤 역시 이 단계에 해당하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용자의 손은 계속 운전대 위에 있어야 한다.
2단계는 오늘날 도입되고 있는 지능형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에 해당한다. 조향, 가/감속, 제동 중 한 가지 기능만 자동화할 수 있는 1단계와 달리, 2단계 부터는 이러한 조작 기능을 복합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단계의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한 층 강화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차량이 자신의 차로 가운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운전자를 도와준다. 이 단계의 자동차는 차로 구분이 확실하고 대부분의 차량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의 조향을 직접 보조해줄 수 있다.
3단계 부터는 인간을 보조한다는 수준을 넘어, 자동차가 직접 조향, 가/감속, 제동 등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단계다. 이를 통해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을 피해 움직일 수 있으며, 운전자는 주변 상황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최종 통제권은 운전자에게 있다. 인간은 운전석에 앉아서 모든 조작을 자율주행차에게 맡길 수 있지만, 특정한 위험 상황에서 자동차가 수동운전을 요청할 경우 운전대를 다시 잡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 전환 과정이 오래 걸리는 만큼 3단계를 건너뛰겠다는 제조사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10초 이내로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레벨3을 도입한 양산차를 올해 안에 출시하겠다는 제조사도 있다.
4단계는 운전자가 수동운전으로 복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안전한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스스로 달리던 자동차가 위급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운전자에게 직접 제어할 것을 요청하지만, 이 때 운전자가 잠들었거나 다른 이유로 정신을 잃었을 경우 자동차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갓길에 정차하는 등의 제어가 가능한 수준이다. 자동차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만큼, 데이터 처리를 위한 자율주행 프로세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엔비디아는 이런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자비에 프로세서를 올해 초 CES 2018에서 공개했으며, 4단계 자율주행 자동차의 사용화 단계를 오는 2021년으로 보고 있다.
5단계는 인간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한 수준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의미한다. 탑승자가 차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하거나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면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이동하는 형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단계의 자동차는 운전석이 필요 없으며, 실내를 단순히 앉는 공간이 아니라 이동형 사무실, 숙박시설, 여가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영국 SF TV 시리즈 블랙미러의 '미움 받는 자' 에피소드에서는 정부 요원과 형사가 자율주행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차량 내부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작전 회의를 진행한다. 실제로 지난 CES 2018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콘셉트카가 상당 수 등장했으며, 미래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새로운 생활 공간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는 오는 2020년대 까지 완전히 해결될 수 있지만, 제도적/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냈을 경우 그 책임을 탑승자에게 물을지, 제조사에게 물을지,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개발한 개발자에게 물을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기존 일반 차량의 존폐 역시 결정해야 한다. 기술적 준비가 거의 끝나가는 단계인 만큼 인간의 제도적/법적 준비 역시 빠르게 끝나야 할 듯하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