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의 변화] 매크로그래프, "아티스트가 여유로운 미래를 꿈꾼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14년,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전세계에서 유명한 픽사가 그래픽제조사 엔비디아와 함께 '시그라프(SIGGRAPF)'에서 재미있는 발표를 진행했다. 당시 픽사는 '실시간으로 3D 랜더링을 작업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2016년, 픽사는 같은 시그라프 행사장에서 8,000만 폴리곤의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를 보여주며, 실시간 랜더링 작업을 시연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고기의 눈과 코, 입, 눈썹, 지느러미 등 각각의 부위를 별도의 레이어로 처리하고, 색상이나 조명, 모듈 등을 최종 단계에서 바로 조절한 것. 마치 포토샵으로 제작물에 여러 레이어를 중첩해 다양한 효과를 구현하듯 손쉽게 변경하는 모습은 현장에서 찬사를 이끌었다.

최근 3D 업계의 주요 관심사는 4K, 8K 등으로 확연히 늘어난 해상도와 3D/VFX와 같은 CG, 실시간 랜더링, 보다 효율적인 작업 단계(파이프라인)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높은 해상도의 콘텐츠를 이전 방식보다 더 빠르고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한다. 특히, 3D 작업은 많은 인력과 높은 PC 자원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래 작업할수록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 단축'은 주요 관심사다.

픽사 발표는 그래서 주목받았다. 픽사는 기존 3D 파이프라인과 다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어서 픽사는 발표 내용을 'USD(Universal Scene Description)'라고 명명한 뒤, 모두에게 공개했다. 더이상 3D/VFX를 작업할 때, 특정 툴에 끌려 다니지 말고, 더 쉽고, 더 편리하고, 더 빠르게 작업 프로세스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픽사는 현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특정 제작 프로그램만 집중해 사용하지 않는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각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여러 콘텐츠(모델링, 음영 처리, 애니메이션, 조명, FX, 랜더링 등)를 하나로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해 제작 시간을 줄였다.

이에 IT동아는 국내 3D 콘텐츠 제작 및 CG 전문 업체와 만나며 변화하고 있는 3D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디지털 아이디어와 스튜디오M, 2L IMAGEWORKS, 자이언트스텝, 덱스터 스튜디오, 모팩 스튜디오에 이어 국내 역대 흥행 1위 '명량', 중국 역대 흥행 1위 '미인어' 등의 VFX를 담당한 매크로그래프의 김종필 이사를 만났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매크로그래프의 대표작으로는 앞서 언급한 명량, 미인어 이외에도 '호로비츠를 위하여', '한반도', '중천', '포비든킹덤', '부당거래', 'R2B', '더테러라이브', '연평해전', '서유-항마편', '특별시민' 등이 있다.

아시아 최초로 헐리우드와 작업한 매크로그래프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매크로그래프는 어떤 기업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김종필 이사(이하 김 이사): 매크로그래프는 다른 VFX 전문 스튜디오와 비교해 창립 멤버부터 조금 특이하다. 창립 이래 지금까지 대표로 역임 중인 이인호 대표는 과거 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VFX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디지털액터팀을 이끌었다. 이 때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연구원들과 당시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던 아티스트들이 함께 지난 2007년 매크로그래프를 창립한 것. 사실 ETRI에서 일하는 당시에도 영화 '중천'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도 매크로그래프는 기술 개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순수 개발자 출신이다 보니 새로운 기술, 새로운 VFX 효과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웃음).

이후 성룡과 이연결이 주연으로 출연한 헐리우드 영화 '포비든킹덤'의 VFX를 메인으로 담당하면서 매크로그래프를 알렸다. 한국 스튜디오가 헐리우드 작품 VFX를 메인으로 담당한 것은 아시아 최초다. 이것을 기점으로 지난 10년 동안 국내 VFX 시장에서 이력을 쌓았다. 얼마 전 10주년 행사도 진행했고(웃음). 10년이라는 시간이 이 업계에서 결코 짧지 않다. 장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 과거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맺은 인연과 기술 기반은 지금도 매크로그래프의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클라우드 랜더팜, 유체 시뮬레이션, 자체 매니지먼트 툴 개발 등을 비롯해 지금은 VR/AR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IT동아: 기술개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튜디오라는 뜻인가.

김 이사: 맞다. 여전히 기술개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기술개발에 여력을 쏟는 중이다. 북경과 상해, 홍콩 등에 VFX, VR 등을 전문으로 영업하는 인력을 포함해 현재 전체 인력은 약 200명 정도인데, 기술개발 프로젝트가 있을 경우 적임자로 판단되면 누구든지 참여하고 있다. 서울 을지로에 연구원들이 상주하는 연구소도 운영 중이고. 기술개발 인력은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변화하지만, 현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지원할 예정이다.

중국 영화 시장과 함께 성장한 매크로그래프

IT동아: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이유가 있을텐데. 현재 매크로그래프가 작업하는 VFX 파이프라인이 궁금하다.

김 이사: 국내 1세대 스튜디오는 아니지만, 여러 이슈로 관심을 받으면서 1세대 VFX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합류했다. 그러면서 매크로그래프만의 작업 방식을 정립하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우선 짧다면 짧지만, 지난 10년 간의 데이터와 에셋 등을 모아서 관리하는 라이브러리 서버를 구축했다. 그리고 라이브러리 내 서치 기능을 적용해 기존에 구축했던 것을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활용한다.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프리 프로덕션을 보다 중요하게 다룬다. 많은 CG, VFX 효과가 필요할수록 메인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더욱 중요하다. 캐릭터 컨셉, 배경 컨셉 등 기초를 세밀하고 촘촘하게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속 주인공과 주고받는 동작이 한 컷인 괴물일지라도 어떻게 계획을 세우느냐에 따라 영화 전반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특히, 최근 중국 영화 작업을 많이 담당하는데, 중국 영화는 판타지 장르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국내 영화와 비교해 더 많은 CG를 필요로 한다.

IT동아: 그러고보니 주성치 감독이 직접 찾아온 벤처 기업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김 이사: 하하. 맞다. 주성치 감독이 서유기를 그린 '서유-항마편'을 준비하기 위해 국내를 찾았고, 여러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난 뒤 우리에게 사오정과 저팔계를 부탁했다. 나중에는 손오공도 거의 우리가 담당했다. 주성치 감독과 이때 맺은 인연은 지금도 진행형이다(웃음). 주성치 감독이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만의 색깔이다. 그만이 상상하고, 그만이 표현하는 독특함이 있다.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에도 그의 색깔을 담고, 표현하길 원한다. 주성치 감독은 사오정을 표현하며, 두 짐승이 섞인 것은 원했다. 이후 정말 많은 종류의 컨셉 디자인을 주고 받았다. 그 중 호랑이와 양서류를 섞은 캐릭터가 선택, 주성치 감독과 사오정의 동작, 격투, 감정 표현 등을 소통하며 영화를 완성해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유-항마편'이 주목받은 이유는 중국 내 흥행 성적 때문이다. 2016년말 기준, '서유-항마편'은 매출액 2,105억 원으로 중국 역대 흥행 순위 6위에 올라있다. 이후 다시 주성치 감독과 만나 작업한 '미인어'는 매출액 5,732억 원으로 중국 역대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임초현 감독과 작업한 액션 영화 '메콩강작전'은 매출액 2,001억 원으로 9위다. 10위 내 영화 중 3편이 우리 매크로그래프와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웃음).

IT동아: 그 경험치가 경쟁력일 것 같다.

김 이사: 앞서 언급했지만, 중국 영화는 정말 CG 작업량이 많다. 반면, 제작 기간은 그리 길지 않고(웃음). 때문에 요즘에는 여러 스튜디오에 캐릭터, 배경, 영상효과 등을 나눠서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아, 물론 감독마다 성향은 조금씩 다르다. 자신이 선택한 스튜디오 한 곳과 꾸준하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결국 감독,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짧은 시간에 높은 퀄리티를 요구한다. 당연한 얘기다(웃음). 이에 국내 스튜디오 대부분이 여기에 집중해 파이프라인을 바꾸고, 기술을 도입하는 중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클라우드 랜더팜이다. 고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랜더링하고,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개발한 장비다. 3D 영상이나 CG를 구현할 때는 평면 이미지 명암이나 그림자, 구도 등을 다듬어 입체감을 살리는 ‘렌더링’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고성능의 PC와 같은 전산‧하드웨어 자원이 많을수록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는데, 매크로그래프는 클라우드 기반 랜더팜 서비스를 중국 합자법인과 함께 사업화할 예정이며 아시아 최대 규모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IT동아: 클라우드 렌더팜은 VFX 업계가 도입하는 차세대 기술 중 하나 아닌가.

김 이사: 맞다. 자체적인 랜더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중소 기업의 경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에 앞으로 사용한 만큼 과금하는 종량제 형태로 클라우드 랜더팜을 제공해 관련 업체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다.

미래를 위한 준비, 작업 시간을 줄이는 파이프라인

IT동아: 파이프라인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김 이사: 10년 전 매크로그래프를 창립, '포비든킹덤' 작업을 통해 헐리우드의 파이프라인 도입을 지속적으로 준비했다. 당시에는 국내에 파이프라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가 달려들어서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이 작업 방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각 과정을 분업화하는 전문 과정을 양성했고, 국내외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리고 이제 당면한 과제는 '어떻게 더 빨리 작업할 수 있는가'에 직면한 것이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기존 기술, 기존 방식을 개선하는 것도 당연하고. 픽사가 공개한 USD 시스템도 대표적이다. 발표 내용과 작업 방식, 작업 결과물 등을 직접 보고 난 느낌은, 정말 획기적이고 혹한 시스템이었다. 다만, 매크로그래프와 같은 많은 인원이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생각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어떤 의미로는 큰 모험에 가깝다. 아마 다른 스튜디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을 공유할 것이다(웃음).

IT동아: 맞다. 대부분 비슷하게 답하셨다. USD가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 공감하지만, 한번에 모든 것을 도입하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김 이사: 하지만, 분명 업계 전체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데이터를 10년 전 시스템에 올린다면,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시장이, 관객이 원하는 CG 퀄리티는 지난 몇 년간 몰라보게 달라졌다.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했다는 증거다. USD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매크로그래프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형태로 기술을 개발하고, 준비 중이다.

내년 중국에서 개봉할 예정인 '대폭격'은 브루스 윌리스와 송승헌이 출연하는데, 국내에서 수주한 VFX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액수다. 이외에도 중국 춘절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3편(데저트스톰, 유럽공략, 몽키킹3)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런 프로젝트를 문제없이 진행하기 위한 노력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했고, 앞으로도 진행할 것이다.

IT동아: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김 이사: 지금 영화 CG/VFX 업계 종사자, 그리고 아티스트들은 정말 이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서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일이 많아 시간에 쫓기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힘든 것도 있기 때문이다(웃음). 개인적으로 아티스트들이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파이프라인을 효율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이유다. 아직은 우리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고. 지금보다 시장 규모가 더 성장하고, 고효율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아티스트들도 여유있는 삶을 영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꼭 그런 미래가 오기를 희망한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