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스타트업 '구글'을 대기업으로 바꾸다, 에릭 슈미트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 알파벳(구글의 지주 회사) 회장이 17년간의 구글 생활을 마무리하고 21일(현지시각)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제 구글 회장에서 물러나 기술 고문의 역할만 맡게 된다. 슈미트는 지난 2001년 구글에 합류한 후 2011년까지 최고경영자로서 구글을 이끌었고, 이후 구글 회장으로 재직하며 래리 페이지와 순다르 피차이에게 경영에 관한 다양한 조언을 제공한 인물이다.

에릭
슈미트
에릭 슈미트

<에릭 슈미트 /출처 OFFICIAL LEWEB PHOTOS at flickr>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 더버지 등 미국의 매체들은 구글식 삼두정치의 한 축이었던 슈미트의 은퇴를 두고 실리콘밸리 1세대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평가했다. 슈미트 회장의 삶을 되짚고 그가 어떻게 구글을 세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시켰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CTO에서 노벨의 CEO로

에릭 슈미트는 1955년 미국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에서 부유한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전기 공학을 전공한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네트워크 설계 및 구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 벨 연구소와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센터(PARC)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1982년 실리콘밸리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소프트웨어 관리자로 입사하게 되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유닉스 운영체제와 관련 하드웨어를 활용해 기업용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어주던 업체였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슈미트는 유닉스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신규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관여했다. 어떤 운영체제와 플랫폼에서도 실행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기 위해 천재 프로그래머 제임스 고슬링과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슈미트의 지휘 아래 제임스 고슬링과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1991년 오크(Oak)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했다. 이 오크를 웹에서도 쓸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 바로 자바(Java)다. 1995년 공개된 자바는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 가운데 점유율 1위(약 13% 내외, 티오베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유닉스와 자바 관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공로로 슈미트는 이사와 부사장을 거쳐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임명되었다.

1997년 에릭 슈미트는 소프트웨어 개발사 노벨의 최고경영자로 영입되었다. 노벨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대립하던 회사다. 넷웨어라는 네트워킹 시스템(IPX 프로토콜)과 수세(SUSE) 리눅스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PC 운영체제에 네트워킹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지만, 1980년대 컴퓨터가 태동하던 시기에는 네트워킹 시스템과 PC 운영체제는 별개의 소프트웨어였다. 1995년 MS가 윈도우 운영체제에 네트워킹 시스템을 포함시키고, 이에 질세라 리눅스에도 네트워킹 시스템이 들어감에 따라 노벨의 경영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러한 악재를 극복하기 위해 슈미트가 내린 판단은 더 큰 위기를 불러들였다. 슈미트와 노벨은 단기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넷웨어를 기업들에게 판매하던 리셀러 가운데 일부를 라이선스 위반으로 고소했다. 리셀러들이 노벨의 허가 없이 넷웨어의 상위 버전을 기업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던 것을 문제 삼았다.

라이선스 합의금을 덕분에 노벨의 단기 이익은 급증했지만, 이에 실망한 리셀러들이 넷웨어 대신 MS의 네트워크 솔루션을 판매하기 시작함에 노벨의 유통망은 붕괴하고 만다. 시장에 제품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니 시장 점유율은 곤두박질 쳤다. 40달러에 이르렀던 노벨의 주가는 7달러까지 무너지고 만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슈미트는 노벨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노벨은 네트워크 솔루션 대신 리눅스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게 된다.

스타트업 '구글'을 대기업 '구글'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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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
에릭 슈미트

<에릭 슈미트 /출처 JD Lasica at flickr>

2001년 당시 구글은 닷컴버블 속에서 생존한 후 매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문제는 구글이 이렇게 기업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발생하는 내홍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려한 외관과 달리 내적 시스템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덩치만 큰 스타트업이었던 셈이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러한 구글의 내적 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업 공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인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처음 둘이 영입하고자 했던 인물은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였다.

하지만 잡스가 자신이 세운 애플을 두고 구글로 올 리 없지 않은가. 존 도어, 마이클 모리츠 등 구글의 초기 투자자는 두 창업자에게 슈미트를 추천했다. 두 창업자는 회사 경영 일선에 물러나 미래 먹거리 탐색(래리 페이지)과 신 기술 개발(세르게이 브린)에 집중하고, 덩치만 커진 스타트업을 덩치에 맞는 시스템을 갖춘 회사로 바꾸는 작업은 에릭 슈미트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처음 슈미트는 구글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창립 이래 계속 적자만 내는 전형적인 거품 기업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와 브린을 만난 후 생각을 바꾸게 된다. 둘의 비전과 통찰력에 감탄하고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승낙했다. 2001년 8월, 페이지는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슈미트에게 승계하고 자신은 창업자로서 슈미트에게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래리 페이지 알파벳 최고경영자
래리 페이지 알파벳 최고경영자

슈미트가 구글의 최고경영자로서 가장 중요시 여긴 작업은 '급격히 성장하는 구글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서비스와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품질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업 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또한 영업조직을 구축하고 관리해 구글이 검색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 속의 모든 정보를 찾고 인터넷의 모든 것을 저장하겠다는 몽상에서 시작된 스타트업을 이익을 내고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현실의 회사로 바꾸는 작업에 집중했다.

슈미트의 노력 덕분에 1998년 창립 이래 적자 행진이었던 구글이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지속적인 흑자를 바탕으로 2004년 9월 구글을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현재 구글의 시가총액은 7410억 달러(한화 약 800조2800억 원)로, 애플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 있는 기업이다.

구글의 네 가지 핵심 기업 문화

구글은 기업문화가 매우 자유롭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있다. 이런 분위기의 기틀을 만든 것도 에릭 슈미트다. 그는 페이지, 브린과 함께 구글의 네 가지 핵심 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구글
구글

첫 번째는 직원들이 창의성을 존중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직원의 사소한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구글의 신규 서비스로 출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가바이트급 저장 용량을 제공해 메가 바이트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이메일 서비스를 개선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슈미트와 구글은 이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지메일로 다듬어냈다. 지메일은 현재 12억 명이 넘는 사용자가 이용하는 구글의 대표 서비스다.

두 번째는 직원들이 자신이 원래 하는 업무 외에 다른 아이디어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구글의 모든 직원은 주 5일의 근무 시간 가운데 하루는 자신의 본래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분야는 구글 내에서만 진행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관계없다. 이러한 4:1 근무 환경을 통해 슈미트와 구글은 직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게 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신규 사업을 발굴했다.

세 번째는 직원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업계 최고의 근무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무료 통근버스, 체력단련실, 수영장, 세탁소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사내에 갖추고, 전문 요리사와 유기농 재료만 이용해 모든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네 번째는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사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팀원은 팀장을 포함한 모든 팀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고, 무엇을 얘기하든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구글은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슈미트, 페이지, 브린 등을 포함한 구글의 모든 임원이 직원들 앞에 서서 회사의 경영 방침을 들려주고, 이에 대한 질문을 받는 TGIF라는 전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직원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고, 임원들은 그것이 회사의 비밀이라도 숨김없이 모두 말해준다. 단 직원들은 이때 들은 정보를 절대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된다.

슈미트는 자신의 저서인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통해 "기술과 인터넷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서 기업이 성공하려면 똑똑하고 창조적인 직원을 끌어들이고,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제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기업은 직원의 권한과 속도를 더욱 늘려야 한다. 소수의 사람들(임원)이 의사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직원 개인과 소규모 팀이 진행한 혁신이 기업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구글의 기업 문화를 요약했다.

슈미트가 구글 CEO로 재직하면서 마냥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모습이 폭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 애플, 인텔, 어도비 등이 맺은 하이테크 기업 간의 직원 이직 금지 협약이다. 2005~2010년 사이 네 기업은 서로 보유한 인력을 더 높은 봉급을 주고 고용하지 말자는 불공정한 협약을 맺었다.

구글이 더 높은 봉급을 미끼로 애플에서 직원을 빼돌리고 있다는 불만을 담은 잡스의 이메일을 받은 슈미트는 구글 인사팀에 애플에서 인력을 모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슈미트와 잡스가 이 이직 금지 협약을 주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이 협약에서 MS만은 예외였다. 좋게 말해 예외지 '왕따'나 다름없었다.

슈미트와 구글은 더 높은 봉급과 스톡옵션을 조건으로 MS에서 꾸준히 인력을 데려왔다. 윈도 운영체제의 설계를 담당하던 수석 엔지니어가 구글로 이직하겠다고 밝히자 스티브 발머 당시 MS CEO는 참다못해 "빌어먹을 에릭 슈미트, 그 자식을 묻어버리겠다. 구글도 없애버리고 말겠다"는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구글을 내적 시스템이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굴지의 대기업으로 바꾼 공로로 슈미트는 많은 연봉과 구글 주식을 제공받았다. 현재 슈미트는 138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전 세계 119번째 부자다(포브스 기준).

슈미트도 깜짝 놀란 북한의 인터넷 환경

2011년 4월, 페이지가 관록을 쌓고 구글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후 슈미트는 구글의 회장으로서 각국 정부와 구글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조세 회피 등의 문제로 각국 정부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해당 국가에 방문해 정부와 구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기술 자문으로 참여하고,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등 친 민주당 성향이 강한 실리콘밸리의 대표자 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2007년 이후 한국에도 다섯 번이나 방문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진행될 때에도 방한해 둘의 대결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러한 슈미트 회장의 방문지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곳이 바로 북한과 미얀마다. 슈미트는 2013년 1월 전 뉴멕시코 주지사 빌 리처드슨과 함께 민간인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했다.

ABC뉴스의 북한 다큐멘터리
ABC뉴스의 북한 다큐멘터리

북한의 실상과 인터넷 상황을 둘러본 슈미트 회장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북한은 매우 추운 국가다. 날씨뿐만 아니라 인터넷마저 얼어붙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인터넷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고,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내부 통신망도 자체 검열을 받고 있다. 북한에선 홀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고 두 명이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북한이 바로 세계 최악의 인터넷 환경을 갖춘 국가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슈미트가 북한에 방문한 바로 그해 북한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아리랑'이 출시되기도 했다. 슈미트 회장은 북한에 이어 세계 최악의 독재 국가로 꼽히던 미얀마에도 방문했다. 미얀마에 방문한 슈미트는 미얀마 주민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약을 풀어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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