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조국을 위해 돌아온 대만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 모리스 창
[IT동아 강일용 기자] 반도체를 빼놓고 비즈니스를 논할 수 없는 시대다. 반도체가 필요 없는 비즈니스 영역이 없을 정도로 반도체는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제품이 되었다.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핵심 비즈니스조차 스마트폰과 TV가 아닌 반도체 생산일 정도다.
반도체 기업은 그 사업 형식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직접 하는 '종합반도체업체(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다. 기업이 반도체 설계를 위한 연구소와 생산을 위한 공장을 모두 보유하는 형태다. 대표적인 IDM으로 지난 40년간 전 세계 반도체 업계 1위를 차지했던 인텔과 2017년 2분기(4~6월) 인텔을 제치고 전 세계 반도체 업계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를 들 수 있다. 국내 2위의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도 IDM이다.
<반도체 설계가 아닌 생산만 전담하는 대만의 TSMC. 이 회사는 폭스콘의 홍하이 그룹과 함께 대만을 먹여 살리는 이 나라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 출처 TSMC>
두 번째는 반도체 설계만 직접 하고 생산은 외부에 맡기는 '팹리스 반도체 업체(Fabless, fabrication + less)'다. 반도체 설계를 위한 연구소만 보유하고 있고 생산을 위한 공장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AMD, 퀄컴, 엔비디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팹리스 업체다. (AMD의 경우 한때 IDM이었으나 공장 사업부를 글로벌 파운드리로 분사하고 팹리스로 전환했다.)
세 번째는 외부에서 맡긴 설계를 토대로 반도체 생산만 전담하는 '파운드리 반도체 업체(Foundry company)'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장만 보유하고 있다. TSMC, 글로벌파운드리, UMC, 동부하이텍 등 조금 생소한 업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도체는 왜 이렇게 설계와 생산을 따로 하는 걸까. 반도체 설계 못지않게 반도체 생산에도 첨단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업체가 두 가지에 모두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분업을 통해 효율화를 꾀한 결과물이 오늘날의 반도체 시장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 1980년대 이전에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업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IDM만이 존재했다.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NEC 등 1세대 반도체 기업은 모두 직접 설계한 반도체를 자사가 보유한 공장에서 생산했다. 반도체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시장이었다. 반도체 설계 기술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을 설립할 첨단 기술과 대규모 자본까지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다고 발표하자 시장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25년 넘게 반도체 업계에 종사한 한 전문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한 기업이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전담할 필요는 없다. 반도체 생산만 전담하는 기업을 설립하면 다른 기업은 반도체 설계에만 전념할 수 있고, 진입장벽도 낮아져 많은 기업이 반도체 업계에 뛰어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 뛰어든 기업이 늘어난 만큼 반도체 생산을 전담하는 기업의 수익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바로 파운드리 업체에 관한 아이디어였다.
전문가는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자신의 고국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고국은 그에게 자본을 주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라고 믿고 맡겼다. 그리하여 태어난 기업이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대만반도체생산공사)'다. 파운드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TSMC의 설립을 주도한 이 전문가의 이름은 모리스 창(Morris Chang, 장중마오) TSMC 회장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반도체 업계에 종사한 살아있는 신화이자, 대만 반도체 업계의 아버지인 모리스 창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모리스 창 TSMC 회장 / 출처 TSMC>
반도체 전문가의 혜안, 세계 2위의 반도체 회사 만들어
TSMC는 대만 최대의 회사이자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에서 2번째로 거대한 반도체 기업이다. 시가총액은 1860억 달러(209조9940억 원, 2017년 10월 기준)에 이르며, 이는 반도체 업계 3위로 내려앉은 인텔보다 200억 달러(22조5800억 원)나 높은 수치다. 파운드리 업계에서 TSMC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시장점유율은 50.6%에 이른다. 2위인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9.6%), 3위인 대만 UMC(8.1%), 4위인 삼성전자(7.9%, 파운드리 사업 한정), 5위인 중국 SMIC(4.9%)의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TSMC를 넘어서지 못한다. (2016년 시장조사기관 IHS 기준)
쉽게 말해 지금 전 세계에서 이용되는 반도체 둘 중 하나가 TSMC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러한 TSMC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일화가 있다. 2000년대 후반 공급물량이 부족해 사용자들이 돈을 주고도 그래픽카드를 구매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TSMC의 반도체 생산 공정이 꽉 차 그래픽카드의 핵심인 GPU를 제때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 IT 업계에선 이때부터 특정 제품의 공급량이 부족하면 "이게 다 TSMC 때문이다"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말이 상당 부분 사실이라는 것이다. 특정 제품의 공급량이 줄어든 원인을 분석해보니 TSMC에서 해당 제품에 쓰일 반도체 공급을 줄였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한때 TSMC가 반도체 공급을 줄이자 그래픽카드를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도체 제작에 열중하는 TSMC 연구원 /
출처 TSMC>
모리스 창은 TSMC의 설립자이자 현 회장이지만, 회사의 주인은 아니다. 그의 TSMC 지분은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물론 이 정도 지분만으로도 그는 10억 달러(1조1290억 원, 블룸버그 기준)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다. TSMC의 실질적인 주인은 대만 정부다. 대만 정부는 1987년 모리스 창이 TSMC를 설립할 때 자본 대부분을 제공했고, 1990년대 초 TSMC를 민영화한 이후에도 국가개발기금을 통해 전체 지분의 6.4%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운영은 대만 정부의 간섭 없이 철저하게 모리스 창이 주도했다. 파운드리 업체가 등장하면 팹리스 업체가 늘어날 것이고, 이를 통해 파운드리 업체의 이익도 급증할 것이라는 모리스 창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1997년 15억 달러(1조6935억 원)였던 TSMC의 매출은 20년이 지난 2016년 288억 달러(32조5152억 원)로 20배 가까이 급증했다. 영업이익은 116억 달러(13조964억 원, 2016년 기준)에 이른다.
TSMC의 호황은 두 번에 걸쳐 찾아왔다. 첫 번째는 엔비디아, ATI 등이 GPU 생산을 맡기면서 찾아왔고, 두 번째는 애플, 퀄컴 등이 모바일 프로세서(APU) 생산을 위탁하면서 찾아왔다. 애플은 현재 TSMC에 아이폰 8과 아이폰 X에 들어가는 핵심 반도체 애플 A11의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두 기기의 판매량을 감당하기 위해 TSMC는 올해 말까지 1억 개의 A11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전 세계 모바일 프로세서 점유율 1위 업체인 퀄컴도 7나노 공정의 차세대 스냅드래건 칩의 생산을 TSMC에게 맡겼다.
여기에 최근 사물인터넷 기기와 차량용 전자장비의 급증으로 사물인터넷 및 전장(電裝, 차량용 전자장비)용 반도체 생산량까지 늘어나면서 TSMC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등했고, 덕분에 TSMC는 올해 초 인텔마저 제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반도체 외길 반세기... 대만 반도체 산업의 토대를 닦다
모리스 창은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를 중일전쟁이 한창인 어지러운 시기 속에서 보냈다. 국공 내전이 시작되자 모리스 창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난징, 광저우 등을 전전했고, 최종적으로 홍콩에 정착했다. 하지만 홍콩도 전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1941년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자 모리스 창과 가족은 다시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결국 모리스 창 일가는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길에 올랐다. 그가 자신의 본래 이름인 장중마오 대신 모리스 창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을 떠난 뒤 30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모리스 창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재였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1949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신입생 가운데 중국 출신은 모리스 창이 유일했다. 하버드에 다니던 도중 그는 자신의 진로를 작가에서 엔지니어로 변경했다. 이를 위해 메사추세츠 공대(MIT)로 다니던 대학을 옮겼다. 1952년과 1953년 MIT에서 기계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산업인 반도체 산업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전기 공급장치를 만들던 실바니아 일렉트로닉스에서 3년 동안 일한 후 1958년 TI로 이직했다. 이후 모리스 창은 TI에서 25년 동안 일하며 TI가 다양한 반도체를 만드는 것을 지휘, 감독했다. TI는 그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2년 모리스 창은 TI 반도체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1978년에는 그룹 전체 부사장이 되었다. 중국인 이민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높은 성과를 낸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1983년 그는 모토로라의 CPU 사업 부서로 이직해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를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잊힌 이름이 되었지만, 당시 모토로라는 CPU 사업 부문에서 인텔, NEC 못지않은 높은 성과를 내던 기업이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1985년 54세에도 자신이 자리 잡은 미국을 떠나 고국인 대만으로 돌아간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 고국이라 부르기도 조금 민망하다. 대만은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 1949년에 실질적으로 성립된 국가다. 하지만 모리스 창은 어린 시절을 국민당의 영역에서 성장했고, 대만을 마음속의 고국으로 여기고 있었다.
모리스 창은 침체된 대만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은 반도체뿐이라고 여기고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한국의 ETRI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의 원장직을 수락했다. 2년 동안 대만공업기술연구원원장으로서 대만의 첨단 기술 R&D를 지휘하던 그는 대만 정부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대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만 정부는 이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결국 모리스 창의 주도로 반도체 생산 공기업인 TSMC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고국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에 나선 것이다. 1987년 이후 30년 동안 모리스 창은 TSMC를 이끌며 대만 반도체 산업을 견인했다. 미국에서 20년, 대만에서 30년 등 그의 인생 전부를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도 있다. 모리스 창이 대만 정부에 반도체 생산 공기업 설립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대만 정부가 반도체 생산 공기업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이끌 인재로 모리스 창을 낙점했다는 설명이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모리스 창과 대만 정부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그렇다 해도 TSMC의 핵심 경쟁력인 파운드리 업체에 관한 아이디어를 낸 것만으로도 모리스 창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2005년 그는 고령(74)을 이유로 TSMC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후계자에게 물려주었지만, 2009년 TSMC의 창립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대만 정부와 주주들은 모리스 창의 복귀를 바라게 된다. 2009년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모리스 창은 추가 팹리스 업체를 고객으로 끌어들임으로써 1년 만에 매출을 30% 넘게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자신의 날카로운 경영감각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9년 매출은 2950억 대만달러(11조507억원)였는데 2010년 매출 4190억 대만달러(15조6957억 원)로 껑충 뛰었다.
모리스 창의 일대기에서 우리는 유사한 행적을 보유한 두 명의 인물을 떠올릴 수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항공우주학자 첸쉐선(Qian Xuesen)이다. 첸쉐선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로켓을 연구하는 항공우주학자로 재직하던 도중 조국의 부름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와 로켓과 핵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한 인물이다. 그를 통해 중국은 인공위성을 자체 발사하고 핵을 보유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박태준 포항제철 초대회장이다. 군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지원을 받아 포항제철을 설립해 오늘날의 철강 강국 대한민국을 일궈냈다. 모리스 창은 대만에서 이 둘 못지않은 존경을 받고 있다. 반도체 사업에 대한 혜안으로 폭스콘과 함께 대만을 먹여 살리는 대기업 TSMC를 일궈냈기 때문이다.
모리스 창은 2018년 6월 TSMC에서의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은퇴할 계획이다. 그의 현재 나이는 86세로 현업에서 왕성한 활동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은퇴하기 전까지 그는 TSMC를 과거의 경쟁자 인텔과 현재의 경쟁자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모리스 창과 TSMC의 앞을 막던 거대한 벽, 무어의 법칙
모리스 창과 대만 반도체 회사 TSMC는 평생을 '무어의 법칙(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가 제창한 '반도체의 정밀도는 18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는 이론)'의 그림자에 가려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텔은 1980년대 후반부터 당시 최고경영자 앤디 그로브의 지휘 하에 무어의 법칙을 내세우며 반도체 생산 공정 미세화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AMD(현 글로벌 파운드리), TSMC, 삼성전자 등 경쟁사보다 1~2세대 앞선 미세화 공정을 바탕으로 고성능 저 발열 반도체를 생산하고, 생산단가를 절감을 통한 높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맡긴 설계를 토대로 반도체 생산만 전담하는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직접하는 종합반도체업체(IDM)가 이렇게 반도체 생산 기술면에서 앞서 나가는 것은 재앙과 같았다. 고객들의 눈은 인텔의 수준으로 맞춰져 있었지만, TSMC가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1~2세대 뒤처진 생산 공정뿐이었다. 물론 팹리스 업체 입장에선 TSMC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던 만큼 반도체 생산을 위해 TSMC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TSMC와 모리스 창은 이러한 고객들의 불만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물론 기술 개발에 소홀히 했다면 오늘날의 TSMC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TSMC와 모리스 창은 수익의 대부분을 대만과 중국에 반도체 생산을 위한 최신 공장을 짓는데 투입했다. 이를 통해 경쟁 업체보다 앞서나가지는 못해도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을 만큼의 미세화 공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리스 창과 TSMC의 앞을 가로막았던 무어의 법칙이 반세기 만에 무너졌다. 10나노(나노미터, 10억 분의 1미터) 공정에 이르러 공정 미세화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반도체를 더 정밀하게 만들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친 것은 아니다. 반도체를 정밀하게 만드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한 비용적인 한계에 부딪쳤다.
인텔은 2008년에 45나노 공정에서 2010년에 32나노 공정, 2012년에는 22나노 공정으로 순조롭게 공정 미세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14나노 공정의 반도체는 2014년에야 양산이 시작되었다. 10나노 공정은 2018년은 되어야 본격적으로 적용될 전망이다.
과거에는 반도체의 정밀도를 향상시키는데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밀도가 향상된 반도체를 조금만 내다 팔아도 충분히 이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는 정밀도를 조금만 향상시켜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인텔은 1년 반마다 공정을 미세화했던 전략을 포기하고, 14나노 공정을 3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인텔에게 밀려 1~2세대 낮은 생산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던 TSMC,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14나노 공정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인텔이 반도체 업계 3위로 밀려나는 등 위기에 처한 이유도 그 근본을 따져보면 결국 인텔이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던 핵심 이론인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무어의 법칙은 우리가 주도... 3나노 공정에 관한 회장님의 강한 자신감
<출처 TSMC>
모리스 창과 TSMC에겐 오랜 숙원을 풀 다시없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모리스 창은 TSMC가 반도체 업계 1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미래 계획을 설계했다. '포스트 무어의 법칙'을 외치며 현재 10나노 공정이 적용된 TSMC 반도체 생산 공장에 2019년 5나노 공정을 도입하고 2022년에는 3나노 공정을 도입한다는 포부를 발표했다. 모리스 창은 대만 가오슝과 미국(위치 미정)에 3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을 위한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모리스 창은 공장을 세우기 위해 대만 과학기술부에 미국 내 부지 확보를 위한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2022년까지 3나노 공정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환경평가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미국에 먼저 공장을 설립해 3나노 공정 반도체 생산을 개시하고, 이후 가오슝의 공장에서 생산된 3나노 반도체까지 시장에 풀어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다는 계획이다.
물론 인텔과 삼성전자 역시 10나노 미만의 반도체 생산을 위한 차세대 계획을 세워놓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1980년대 이후 30년 동안 미국 반도체 기업의 뒤를 쫓기 바빴던 대만과 한국 반도체 기업이 이제 대등한 위치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2020년이 되면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