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합리적인 고성능, AMD 라이젠3 프로세서
[IT동아 김영우 기자] 올해 PC 시장에 등장한 '다크호스'를 꼽으라면 역시 AMD의 '라이젠(Ryzen)' CPU다. 특히 고급형 제품인 라이젠7의 경우, 8코어(물리적 코어)에 16쓰레드(논리적 코어)에 달하는 화려한 사양을 갖추고 있으면서 최저 30만원 대에 살 수 있는 대단한 ‘가성비(가격대성능비)’를 보여줬다.
실제로 지난 3월에 출시된 상급형 제품인 라이젠7, 4월에 출시된 라이젠5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제품 가격비교사이트인 다나와(danawa)가 지난 4월 말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라이젠5의 판매가 본격화된 4월 3주의 CPU 판매 시장에서 AMD의 판매금액 점유율이 24.8%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불과 2개월 전의 점유율인 0.8%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던 건 아니다. 라이젠7(최저 30만원 대)과 라이젠5(최저 20만원 대)는 각각 인텔의 코어 i7 및 코어 i5에 대응하는 고급형 제품이기 때문에 코어 i3와 같은 10만원대 CPU를 선호하던 소비자들에겐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7월 28일, AMD에서 라이젠 시리즈의 막내인 '라이젠3'를 출시했다. 알뜰파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 이 제품의 면모를 살펴보자.
기본적인 특성은 상위 모델과 유사
라이젠 시리즈의 대표적인 특징이라면 기존 AMD CPU의 28nm(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공정에 비해 정교해진 14nm 공정을 적용한 점, 그리고 새로 개발한 ‘젠(Zen)’ 아키텍처(기반기술)을 갖춰 기존 AMD 아키텍처(엑스카베이터) 대비 클럭(동작속도) 당 처리능력(IPC)가 40%나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라이젠3 역시 위와 같은 상위 모델의 특성을 대부분 갖추고 있어 좋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물리적으로 하나인 코어를 논리적으로 둘로 나눠 전체 코어 수가 2배가 된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SMT(Simultaneous Multithreading) 기술을 탑재하고 있지 않은 점이 라이젠7이나 라이젠5와 다른 점이다. 사실 4코어를 갖춘 10만원 대의 라이젠3 1200이나 1300X에 SMT까지 탑재되었다면 20만원대에 팔리는 상위 제품인 라이젠5 1400이나 1500X(4코어 8쓰레드)의 자리까지 위협했을 것이다.
외형적으로도 라이젠3는 상위 제품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출시되는 AMD CPU에서 공통적으로 이용하는 AM4 규격의 소켓에 꽂아 구동하므로 메인보드 역시 시중에 팔리던 X370, B350, A320등의 AMD 300 계열 제품을 이용하면 된다.
참고로 AMD 300 계열 메인보드에는 내장 그래픽 기능을 위한 화면 출력 포트(HDMI, DP 등)가 달려있는데, 라이젠 시리즈는 내장그래픽 기능이 없는 순수한 CPU이므로 메인보드의 화면 출력 기능을 쓸 수 없다. 별도의 그래픽 카드를 꽂아서 모니터를 연결하자.
오버클러킹 제한 없음, 라이젠 마스터 소프트웨어도 지원
이번에 출시된 제품은 라이젠3 1200과 1300X 모델로, 두 모델 모두 4코어(4쓰레드)를 갖추고 있는 점은 같지만, 기본 동작 클럭이 라이젠 1200는 3.1GHz, 라이젠 1300X는 3.5GHz로 다르다. 그리고 부하가 많이 걸리는 작업을 할 때 순간적으로 클럭을 높이는 부스트(boost) 모드를 지원한다. 부스트 모드에서 라이젠3 1200은 3.4Ghz, 라이젠3 1300X는 3.7GHz로 작동한다.
그 외의 차이점이라면 XFR(Extended Frequency Range) 기능의 지원 유무다. XFR은 시스템에 탑재된 냉각장치의 성능이 허락하는 한에서 자동으로 오버클러킹을 하는 기능으로, 라이젠 시리즈 중에 제품명이 X로 끝나는 모델에 적용된다. 라이젠3 1300X도 이 기능을 지원하며, XFR 모드에서 최대 3.9GHz까지 클럭이 올라간다.
상위모델과 마찬가지로 라이젠3 역시 AMD 공인 오버클러킹 소프트웨어인 라이젠 마스터(RYZEN MASTER)를 지원한다. 라이젠 마스터는 현재 시스템의 상태(CPU와 메모리의 클럭, 온도, 전압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는 것 외에 CPU와 메모리의 클럭, 전압, 메모리 타이밍 등을 세세히 조정해 편하게 오버클러킹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라이젠 마스터는 일부 코어를 비활성화 하는 기능도 제공하는데, 이는 멀티코어 연산을 지원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때 소비전력을 줄이며 전반적인 효율도 높일 수 있어 유용하다.
참고로 라이젠3를 포함한 라이젠 전 모델은 오버클러킹 제한(정확히는 클럭의 배수 조절 제한)이 걸려있지 않다. 다만, 이는 오버클러킹의 시도가 자유롭다는 것이지 모든 라이젠 시스템의 오버클러킹이 100% 성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성능의 사제 냉각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관련 지식이 많은 사용자만 도전해보자. 사실 라이젠 시리즈는 굳이 오버클러킹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성능을 낸다.
소비전력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양에서 코어 i3보다 우위
넉넉한 캐시(Cache) 메모리를 갖추고 있는 점도 라이젠3의 장점이다. 캐시는 CPU 내의 임시저장공간으로, 넉넉할수록 체감성능이 높아진다. 라이젠3의 경쟁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7세대 인텔 코어 i3(코드명 카비레이크)는 코어당 256KB의 2차 캐시, 모델에 따라 총 3~4MB의 3차 캐시를 탑재하고 있다. 반면, 라이젠3는 코어당 512KBdml 2차 캐시, 총 8MB의 3차 캐시를 탑재하고 있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라이젠3는 4코어 CPU, 코어 i3는 2코어 CPU이기도 하다.
다만, 소비전력 면에서는 약간 불리하다. TDP(열설계전력) 기준, 7세대 코어 i3 시리즈가 모델에 따라 35~54W의 TDP인데 비해 라이젠3 1200, 1300X의 TDP는 65W로, 상위 모델인 라이젠5(1400~1600)와 같다. 물론, 이는 라이젠3가 라이젠5에 크게 뒤지지 않는 사양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동봉된 쿨러도 눈에 띈다. 라이젠3 1200, 1300X 모두 스텔스(Stealth) 쿨러가 포함되었다. 라이젠5, 7에 동봉되는 스파이어(Spire) 쿨러와 거의 같은 디자인이고 냉각팬의 지름 역시 80mm로 같지만, 알루미늄 방열판의 두께가 스파이어 쿨러의 절반 정도(약 2cm)로 얇다. 냉각성능이 약간 저하된 대신 공간 활용성이 좋아졌기 때문에 슬림형 PC에 이용하기엔 더 나을 것이다. 소음은 요즘 나오는 AMD 쿨러답게 정숙한 편이다.
코어 i5와 성능 비교할 만 할까?
제품을 실제로 구동하면서 성능을 체험해봤다. 테스트에 이용한 시스템은 라이젠3 1200(인터넷 최저가 15만 4,000원), 1300X(인터넷 최저가 18만 2,000원) CPU에 기가바이트의 AX370-Gaming5 메인보드에 지스킬의 8GB 트라이던트Z DDR4 메모리(PC4-24000) 2개, 조텍 지포스 GTX 1070 그래픽카드 및 마이크론 크루셜 MX300 SSD(275GB) SSD로 구성된 윈도우10 64비트 시스템이다.
비교 대상은 인텔의 7세대 코어 i5 중 상위 제품인 코어 i5-7600K(인터넷 최저가 26만원)를 탑재한 시스템이다. 같은 10만원대 제품인 코어 i3와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여건상 그러지 못했음을 양해 바란다. 10만원대의 라이젠3가 20만원대 제품인 코어 i5에 얼마나 근접한 성능을 내는지가 관건이다.
벤치마크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성능 측정
기본적인 연산능력을 가늠하기 위해 PASSMARK사의 퍼포먼스테스트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CPU Mark 모드를 구동해봤다. 테스트 결과, 라이젠3 1200은 8088점, 라이젠3 1300X는 8120점을, 코어 i5-7600K는 9017점을 기록했다.
참고로 PASSMARK의 DB에 의하면 7세대 코어 i3는 6000점대, 7세대 코어 i5 중 하위 모델인 코어 i5-7400는 7000점대 후반에서 8000점대 초반을 기록했다. 단순히 점수만 봐선 라이젠3는 비슷한 가격대의 코어 i3를 압도하며, 오히려 더 고가인 코어 i5에 가까운 성능을 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CPU 성능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인 씨네벤치 R15(CINEBENCH R15)도 구동해 봤다. 이 소프트웨어는 해당 CPU의 전체 코어 성능, 혹은 1개 코어의 성능만 따로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멀티코어의 효율성을 확인하는데도 유용하다.
테스트 결과, 가장 고가 제품인 코어 i5-7600K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라이젠3 2종도 크게 뒤지지 않는 성적을 냈다. 특히 전통적으로 AMD CPU는 코어 1개 당 성능이 미흡한 편이었는데, 라이젠3는 코어 i5와 비교해도 코어당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가격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라이젠3 쪽이 훨씬 인상적이다.
게임 성능을 짐작할 수 있는 3DMark 소프트웨어도 구동해봤다. 3DMark의 벤치마크 메뉴 중, 최신 기술인 다이렉트X12를 지원하는 Time Spy 모드를 이용했는데, 테스트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라이젠3 1300X가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각 시스템 별 점수의 차이는 오차범위 수준이라 큰 의미는 없는 듯 하다. 3DMark는 CPU 보다는 그래픽카드의 성능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응용 프로그램 이용한 성능 측정
CPU의 성능을 특히 많이 요구하는 응용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파일 압축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7-Zip은 멀티코어 CPU의 성능을 온전하게 잘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프트웨어 내부에 CPU의 성능을 측정하는 벤치마크 메뉴까지 갖췄다. 이를 이용해 각 시스템의 성능을 측정해봤다.
테스트 결과, 이번에도 역시 코어 i5-7600K가 근소하게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라이젠3 1200과 1300X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점수를 냈다. 종합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라이젠3는 코어 i5의 중/하위권 모델과 유사한 성능을 낸다고 할 만 하다.
FPS 게임인 '오버워치'도 구동해봤다. 화면 해상도는 1920 x 1080, 그래픽 옵션은 최상으로 높인 상태에서 10여분 정도 플레이하며 평균 초당 프레임을 측정해봤다.
테스트 결과는 세 시스템 모두 게임 구동능력이 우수했으며, 시스템 별 성능 차이는 오차범위 수준이었다. 이는 앞서 진행한 3DMark 테스트의 양상과 유사한데, 최근 게임들은 CPU 보다 그래픽카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CPU의 성능이 너무 떨어지면 그래픽카드의 성능 효율 역시 급격히 하락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CPU는 필요하다.
알뜰파 게이머들을 위한 최적의 선택
결론적으로 말해, AMD 라이젠3는 인텔의 코어 i3에 가까운 가격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코어 i5와 비교할 만한 성능을 내는 CPU다. 이전에 나온 라이젠7이나 라이젠5도 상당히 우수한 가격대비성능을 낸다고 생각했는데, 라이젠3는 이들의 '가성비' 마저 살짝 뛰어넘는다. 10만원대에서 이 정도의 성능을 내는 CPU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젠5 4코어 모델에서 SMT(AMD판 하이퍼쓰레딩) 기능을 제외하고 값을 낮춘 것이 라이젠3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 정도 되면 라이젠5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코어 i5가 아닌 동사의 라이젠3 일지도 모르겠다.
내장 그래픽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아 별도의 그래픽카드가 필수이기 때문에 사무용 PC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쓸 만한 그래픽카드와 조합, 최소한의 투자로 최적의 성능을 내는 게이밍 PC를 구성하기에 라이젠3만한 CPU는 없을 듯 하다. 만만치 않은 경쟁상대를 맞이한 인텔의 다음 카드가 기다려진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