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D 시장, '성능의 삼성'에 도전하는 '수명의 WD'
[IT동아 김영우 기자] 대표적인 HDD 업체였던 웨스턴디지털(Western Digital, 이하 WD)이 SSD 업체로의 변신을 본격화 한 것이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2016년 5월에 샌디스크(SanDisk)사의 인수를 완료한 후, 본격적으로 SSD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한 것이 같은 해 11월이기 때문이다.
원래 SSD를 만들던 샌디스크를 인수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WD에게 있어 SSD 시장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SSD 시장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다. 삼성전자나 인텔, 도시바와 같은 기존의 강자들 외에도 마이크론이나 에이데이타, 킹스톤과 같은 중견업체 수십 군데에서 SSD를 팔고 있다. 그 외에 OEM 형식으로 제품을 납품 받아 SSD를 팔고 있는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시장에는 거의 100개에 달하는 SSD 브랜드가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WD는 자사의 SSD사업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각종 제품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WD의 주력 SSD인 'WD 그린(Green)' 및 'WD 블루(Blue)' 시리즈가 인기 순위 3~4위를 유지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아직 이 시장의 절대강자인 삼성전자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지만, HDD 전문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WD 입장에선 고무적인 결과다.
WD의 SSD 사업에 예상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는 이유로는 HDD 시장에서의 높은 인지도가 SSD 시장에도 이어진 점도 있겠지만, 제품의 내구성 및 수명을 강조한 WD의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거둔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1MB/s라도 더 빠르게? 성능 경쟁의 한계
그동안 SSD 업체들은 무엇보다도 제품의 '성능'을 강조하곤 했으며, 이러한 성능 마케팅의 선두주자는 삼성전자였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SSD는 유사한 가격대의 경쟁사 제품에 비해 최대 데이터 읽기/쓰기 수치가 아주 조금이라도 높은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10만원대 초반에 팔리는 250GB 용량 제품의 경우, 삼성전자 750 EVO나 850 EVO 시리즈의 읽기 최대 540MB/s, 쓰기 최대 520MB/s의 속도를 발휘하는 반면, WD 블루 시리즈의 경우는 읽기 최대 540MB/s, 쓰기 최대 500MB/s다. 쓰기 속도 면에서 삼성 제품이 20MB/s 정도 우세하다.
다만, 수십 MB/s 남짓의 속도 차이를 사용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2017년 현재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2.5인치 SSD 제품군의 속도는 한계에 이르렀다. 대다수 2.5인치 SSD가 이용하는 SATA 인터페이스의 대역폭(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 제한 때문에 읽기/쓰기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550MB/s 남짓을 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PCIe나 M.2(NVMe) 인터페이스의 SSD는 아직 대중적이지 못하다.
상향평준화된 성능,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내구성 경쟁
속도 경쟁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면 당연히 관심의 초점은 수명과 내구성으로 옮겨간다. 어떤 제품을 사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따지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초기형 SSD의 경우는 이용 중에 갑자기 제품이 먹통이 되어 데이터를 못 쓰게 되거나 성능이 저하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WD는 이 때문에 자사 SSD의 성능보다는 내구성을 더욱 강조한다. 실제로 WD 블루 500GB 제품의 사용 보증 시간(평균무고장시간)은 175만 시간, 쓰기 수명은 200 TBW(total bytes written, 수명 한계까지 쓸 수 있는 누적 용량)로, 삼성전자 750 EVO 500GB(150만 시간 / 100TBW)나 850 EVO 500GB(150만 시간 / 150 TBW)에 비해 우위에 있다. 참고로 WD는 자사 제품의 수명 및 호환성을 검증하는 ‘기능 무결성 테스트(Functional Integrity Testing, 이하 F.I.T.) 랩’을 운영하고 있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플레이웨어즈에서 작년 11월 중순에서 올해 2월까지 3개월간 직접 WD 블루 SSD(250GB)의 수명을 직접 검증, 발표한 결과가 발표되어 눈길을 끈다. 이 테스트에 의하면, WD 블루 SSD 의 표기 수명인 100 TBW를 넘어 300 TBW까지 의도적으로 제품의 쓰기 작업을 진행한 후에도 성능 저하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80GB 정도의 용량을 쓰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10년 이상 쓰는 것이 무리가 없다는 의미다. 참고로 일반적인 사용자들은 많아봤자 매일 20GB 정도의 쓰기 작업을 하니 실제로는 10년을 훌쩍 뛰어넘는 한계 수명도 기대할 수 있다.
HDD에서 SSD로 체질개선에 나선 WD의 우직한 전략
저장장치 시장의 중심이 HDD에서 SSD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HDD 사업이 중심이었던 기존의 업체들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SSD쪽으로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미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SSD 시장에서 단순히 HDD 시절에 쌓은 인지도 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안일한 생각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사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WD는 수명과 내구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으며, 최근 기존 낸드(NAND) 플래시 공정 한계를 극복한 64단 3D 낸드 기술의 SSD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성능과 내구성은 물론, 낮은 소비전력과 대용량 저장능력을 갖춘 차세대 SSD가 WD의 무기다. 3D 낸드 SSD에 대한 소비자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WD의 우직한 전략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