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와 '경주지진', 공영방송이 클라우드를 도입한 이유
[IT동아 강일용 기자] "세상이 변하고 있다. 공영방송사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박동욱 KBS 디지털 서비스 국장의 발언이다. 그는 방송과 지면에 머물러 있던 미디어의 콘텐츠 배포수단이 인터넷과 모바일로 전환된 것처럼, 콘텐츠 배포방식도 자체 배포에서 클라우드(=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동욱 KBS 디지털 서비스 국장>
박 국장은 미디어 업계에서 뉴미디어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 1995년 중앙일보가 국내 미디어 가운데 최초로 인터넷 전자신문을 만들었을 때 이 프로젝트를 지휘해서 성공시킨 사람이 바로 박 국장이다. 박 국장은 삼성전자 멀티미디어 연구소와 함께 조인스닷컴 홈페이지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중앙일보 뉴미디어 부장을 거쳐 야후 오버추어 세일즈마케팅 상무, SK커뮤니케이션 검색 사업본부장, 삼성전자 이커머스 팀장(전무)을 역임했다. 그리고 다시 KBS 디지털서비스 국장이란 지위로 미디어 업계에 돌아왔다.
지난 9월 KBS는 개방형 직위 공모를 통해 외부의 전문가를 대거 초빙했다. 공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디어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인사발탁이다. 박 국장도 이때 합류한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이다. KBS는 어떤 변화를 꾀하기 위해 박 국장을 초빙한 것일까?
변화의 계기는 공전절후의 인기를 기록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기상청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던 '경주 지진'이다.
태양의 후예는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다시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어찌나 수요가 많았는지 KBS 홈페이지가 접속자들로 인해 느려질 지경이었다.
홈페이지가 느려지기만 하면 다행이다. KBS는 재난주관방송사다. 그만큼 지진,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많은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지고 있다. 때문에 경주 지진이 발생했을 때 많은 시청자가 자세한 지진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KBS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은 시청자가 몰려 홈페이지의 기능 일부가 마비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어떻게 해야 뉴스,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 KBS의 서비스에 접속하는 시청자들에게 최적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인터넷 및 모바일 콘텐츠를 자체 IDC(인터넷 데이터센터)에서 배포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모든 콘텐츠를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KBS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박 국장의 임무다.
"시청자가 최대한 몰렸을 때(트래픽 피크)를 기준으로 데이터센터를 유지하는 것은 비용적인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트래픽의 평균을 내고, 이를 기준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했다.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나 경주 지진 같이 트래픽이 급격히 몰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서비스가 멈추질 않길 기도하며 시청자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콘텐츠의 화질을 낮추는 등 몇 가지 편법을 쓰는 게 대처 방법의 전부였다. 시청자 입장에서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최상의 상태로 감상할 수 없으니 사용자 경험은 그만큼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클라우드를 도입했다. 클라우드의 가장 큰 장점이 인프라 규모 확대 및 축소(스케일 아웃)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트래픽이 몰리면 그만큼 인프라를 확대하고 트래픽이 줄어들면 그만큼 인프라를 축소할 수 있다. KBS처럼 급격히 늘어나는 트래픽에 대응해야 하는 업체에게 최적의 기술이었다."
KBS가 선택한 클라우드 파트너는 아마존웹서비스(AWS)다. 미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닷컴이 클라우드 사업만을 위해 신설한 독립 사업부서다.
현재 클라우드 시장은 AWS가 매출과 점유율 면에서 1위로 앞서나가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오라클 등 글로벌 IT 기업이 이를 뒤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KT, 네이버 등 주요 IT 업체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KBS는 왜 많은 클라우드 업체 가운데 AWS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일까?
"오해가 있을 듯해서 먼저 설명하는 것인데, KBS가 공영방송이라고 해서 토종 인프라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다는 제약은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KBS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청자다. 최선의 솔루션을 선택해서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KBS는 단순히 인프라를 서버 기반에서 클라우드 기반으로 바꾸는 것만 고민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AWS가 제공하는 다양한 최신 기술과 개발 도구 그리고 글로벌 서비스란 점에 더 집중했다."
"KBS가 공영 방송이라 해서 국내 시청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태양의 후예의 인기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의 후예를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이들도 모두 KBS 콘텐츠의 시청자다. 이들에게 국내 시청자와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만 한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 중인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작년 말 AWS를 도입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아직 KBS의 모든 서비스가 AWS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콘텐츠와 서비스만이 내부에서 베타 테스트를 통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는 제법 만족스러웠다는 것이 박 국장의 평가다.
"모든 콘텐츠를 바로 클라우드를 통해 배포한다는 것은 KBS 입장에서도 큰 모험이다. 때문에 내부 테스트를 실시했다. AWS 클라우드를 활용한 서비스를 4개월만에 만든 후 그 품질과 서비스 만족도를 검증했다."
"KBS의 유명 다큐멘터리 가운데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콘텐츠가 있다. 이를 활용한 버티컬 콘텐츠(핵심 콘텐츠와 연관 콘텐츠를 묶어서 제공하는 방식)를 만들었다. 클라우드를 활용해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단순히 모바일 앱으로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여행 관련 업계의 관련 정보를 함께 보여주는 콘텐츠와 생로병사의 비밀과 함께 현대 아산병원의 의학정보를 함께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 외에도 KBS가 지난 1967년부터 50년 동안 모아온 CF를 모두 찾아 볼 수 있는 CF의 역사 콘텐츠도 클라우드로 구현했다."
"내부 테스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러한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클라우드 전환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KBS는 기존 IDC 기반 콘텐츠 배포 방식을 버리고 올해 말까지 모든 콘텐츠 배포 시스템을 클라우드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KBS의 실시간 TV, 라이브 앱, 모바일 오디오 등 모든 콘텐츠를 클라우드로 배포할 것이다."
이렇게 국내 미디어 가운데 콘텐츠 배포 방식의 변화를 꾀한 곳은 KBS가 처음은 아니다. 국내 미디어가 연합해서 만든 콘텐츠 서비스 pooq이나 SBS 등의 사례가 존재한다. KBS는 변화에 둔감한 대규모 공영방송임에도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크다. KBS는 클라우드 전환을 위한 내부 TF(태스크포스)까지 구성했다.
"KBS는 시청자들의 콘텐츠 감상 방식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모바일 TF를 구성했다. 이 TF에서 KBS 플랫폼이 가져야 할 고유의 가치 6가지를 선정했다. 검색, 추천, 빅데이터, 사용자경험, 인터랙티브, 그리고 클라우드였다. 이 6가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전환 전략을 짜고 실행에 나섰다. KBS 내부에는 이미 수십 명의 인력이 클라우드 전환만을 위해 연구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KBS의 변화는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서버, 네트워크 설비, 저장장치 등)만 바꾸는데 그치지 않는다. 클라우드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개발도구를 통해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대등한 수준으로 KBS 서비스의 품질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개인형 맞춤 콘텐츠 추천 시스템(시청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술)’이다. 넷플릭스를 세계 최대의 콘텐츠 사업자로 끌어올려준 바로 그 기술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KBS는 올해 내로 앱, 홈페이지 등 모든 서비스에 개인형 맞춤 콘텐츠 추천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콘텐츠 소비의 주체가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급격히 변했다. 시청자들은 이제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보길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나서고 있다. 이에 맞춰 기존 미디어도 변해야 한다. 시청자가 우리 콘텐츠를 검색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미리 파악해서 이를 추천해줄 수 있어야 한다."
"100만 명의 고객이 있다면 100만 개의 취향이 존재한다. 10대, 20대, 30대별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 다르다. 이렇게 선호하는 콘텐츠가 다른데, 예전처럼 동일한 사용자환경에서 동일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낡은 방식이다."
"KBS는 클라우드를 활용해 시청자가 어떤 콘텐츠에 어떤 반응을 보였고, 어떤 댓글을 달았으며, 이를 어떻게 소셜에 공유했는지 등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국내 빅데이터 업체들과 손잡고 이러한 시청자 선호도 분석 데이터를 분석해서 개별 시청자 취향에 맞는 맞춤 콘텐츠 추천 시스템을 개발했다."
KBS는 클라우드를 활용해 2개의 독특한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다. 바로 콘텐츠 저장 관리(아카이빙)와 실시간 미디어 인코딩이다. 두 프로젝트는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KBS는 AWS의 지원을 받아 콘텐츠 저장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콘텐츠 저장 관리 시스템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렇게 보관된 콘텐츠는 KBS 내부에서 콘텐츠 제작 지원용으로만 이용되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를 활용한 새 콘텐츠 저장 관리 시스템은 외부에 공개하려는 것이 목표다. 빠르면 내년 정도에 KBS는 지난 70년 동안 수집한 콘텐츠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할 것이다. 단순히 KBS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에서 벗어나 시청자 참여를 통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서비스를 구성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AWS로부터 BBC, CNN 등 글로벌 방송사들의 레퍼런스(구축 사례)를 제공받았다."
"또 다른 프로젝트가 바로 클라우드를 활용한 실시간 미디어 인코딩 솔루션 구축이다. TV 등 기존 배포방식으로 제공된 콘텐츠를 최대한 빠르게 웹과 모바일 등으로 제공하려는 프로젝트다. 사실 뉴스 같은 생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쉽다. TV로 송출되는 것을 바로 모바일로 내보내면 된다. 하지만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생방송이 아닌 콘텐츠의 경우 TV와 모바일 간에 송출시간에 간격이 있었다. 이러한 간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클라우드 서버를 활용한 실시간 미디어 인코딩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도 TV와 모바일 간에 차별 없이 동일한 시간에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클라우드(Cloud)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나아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최첨단 정보기술(IT) 클라우드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선 비즈니스 현장으로 들어가면 '과연 많은 돈을 들여 클라우드를 써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은 남아있습니다. 비즈니스인사이트와 IT동아는 클라우드가 미디어부터 제조업, 유통업, 금융업, 스타트업 등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향후 어떻게 비즈니스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인지에 관해 비즈니스맨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클라우드가 바꾸는 비즈니스 환경, 다시 말해 Biz on Cloud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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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