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플레이어+앰프+헤드폰 '삼합'이 전하는 찰진 소리, 소니 시그니처 시리즈
[IT동아 강형석 기자] 사람의 몸은 정직하고 간사하다. 좋은 것을 온 몸으로 누리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열악한 상황에 처해지면 몸이 바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경험을 했다면 그 순간을 계속 떠올리곤 한다. 기자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바로 소니의 플래그십 오디오, 시그니처(Signature) 시리즈를 청음하고 나서다.
소니는 지난해 11월, 자사 최고의 기술을 담아 넣은 시그니처 라인업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고해상 오디오 플레이어(NW-WM1Z), 헤드폰(MDR-Z1R), 앰프(TA-ZH1ES)가 포함된다. 따로 쓸 수 있지만 함께해야 비로소 가치를 더하는 구성이 되었다. 글로 다 정리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느낀 바 그대로를 전달하고자 한다.
고해상 음원 플레이어 NW-MW1Z
소니 시그니처 시리즈 중 NW-MW1Z는 음원 재생을 위한 플레이어(워크맨)다. 고해상 음원이 갖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자연스레 표현하기 위한 기술을 총동원한 소니 플래그십 플레이어다. 특히 배터리를 쓰는 휴대 플레이어의 특성을 감안한 설계가 이뤄졌다.
우선 본체는 높은 전도율을 갖는 구리를 활용했다. 소니는 순도 99.96% 이상의 무산소동괴를 통으로 절삭 가공한 후 순도 99.7%의 금으로 도금 처리한 섀시를 썼다고 언급한 바 있다. 동괴를 내부 구조에 맞춰 파내는 작업인데, 부품 여럿을 이어 만드는 방식보다 내구성에 유리하다. 또한 산화를 막고 저항을 낮춘다. 가격은 상당히 올라가지만 고성능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가 쓰는 방식이다.
섀시 내부에는 배터리와 기판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냥 넣는 것이 아니라 차폐 구조를 통해 새는 전기에 의한 노이즈를 막는데 주력했다. 배터리팩 후면에는 콜슨계 구리 합금 소재의 패널을 쓰고 케이스와 기판 사이에는 금도금한 무산소동 판을 배치해 저항을 낮췄다. 기판의 접지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배터리는 NW-WM1Z를 위해 새로 설계했다. 전용 배터리는 +와 –극을 각각 2개씩 배치해 저항을 줄였다. 배터리에서 앰프로 전력을 빨리 전달할 수 있게 이중 층 콘덴서를 탑재하기도 했다.
에스-마스터(S-MASTER) 앰프에는 고분자 콘덴서를 탑재했다. 이 콘덴서는 기판 주요 부품 주변에도 탑재된다. 전기 노이즈 억제를 위한 저소실(LDO – Low DropOut) 레귤레이터 3개를 배치했다. 음성 출력부 기판도 대형 코일을 사용했고 전용 레지스터로 왜곡을 억제했다. 단자는 일본 딕스 사의 펜타콘(Pentaconn)을 달았다. 배선은 모두 킴버 케이블을 써 신호간섭 억제에도 주목했다. 대형 수정 발전기 탑재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렇게 완성된 NW-WM1Z는 다양한 기능을 무리 없이 지원한다. 펄스 밀도 변조 방식인 DSD 재생을 직접한다. DSEE HX 기술도 곡 유형에 따라 5가지 옵션이 제공되며, 31Hz에서 1만 6,000Hz의 주파수 대역 조절을 위한 10밴드 이퀄라이저 기능도 쓸 수 있다. 무게는 455g으로 확연히 묵직하지만 그만큼 전달되는 소리의 무게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 플래그십 헤드폰 MDR-Z1R
MDR-Z1R은 소니 시그니처 라인업 중 결과에 해당한다. 음원을 최종적으로 귀에 전달하는 헤드폰이니 말이다. NW-WM1Z가 출력하는 11.2MHz DSD(다이렉트 스트림 디지털) 출력을 가상이 아닌 실제 출력을 지원하는 사양을 제공한다. 더 세밀한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니는 공간감과 소리의 정확성을 위해 소재와 설계를 모두 뜯어 고쳤다. 유닛부터 지름 70mm의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탑재했다. 중앙의 돔 부분은 마그네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부는 최고급 소재로 꼽히는 알루미늄 코팅 액정 폴리머 소재를 적용했다. 알루미늄 코팅 두께를 30 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 미터)로 얇게 만들어 입혔다는 부분이 특징.
헤드폰은 밀폐형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이 구조는 하우징에 의한 내부 공진 노이즈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고자 일본 수공예 제지술을 적용한 어쿠스틱 필터와 3차원 뜨개질 방식으로 제작된 하우징 보호 필터로 불필요한 공진 노이즈를 제거했다. 진동판을 보호하는 그릴은 피보나치 배열로 설계해 고음역대에서 발생하는 왜곡을 최소화했다.
연결은 4.4mm 밸런스드 연결에 대응한다. 일본 전자정보 기술산업협회(JEITA) 표준 규격으로 더 길고 두꺼운 단자를 써 동체저항은 줄이고 연결은 쉬워졌다. 두 개의 극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좌우 스테레오 사운드가 섞이는 크로스 토크를 제거, 입체적이고 선명한 소리를 구현한다.
제조는 모두 일본에서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하나씩 생산될 때마다 일련번호를 부여해 소장가치를 높였다. 패키지 또한 수납이 가능한 형태로 완성해 활용성을 높였다.
플레이어와 헤드폰의 능력을 넓혀주는 디지털 앰프 TA-ZH1ES
TA-ZH1ES는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와 헤드폰 사이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앰프다. 소니는 이 제품을 디지털 앰프로 새로 설계해 최신 흐름에 맞췄다. USB를 통해 연결된 PC나 기타 휴대기기 등에서 최대 22.4MHz DSD, 32비트/768kHz PCM을 지원하며, 워크맨 전용 단자를 통해 11.2MHz DSD, 32비트/384kHz PCM에 대응한다. 이를 위해 S-마스터 HX에 신호 보정을 위한 아날로그 회로를 더했다.
2개의 고정밀 디지털 신호 프로세서(DSP)로 구성된 새로운 DSEE HX는 NW-WM1Z와 마찬가지로 5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으며, 입력된 모든 PCM 음원을 11.2MHz 상당의 DSD 신호로 변환하는 리마스터링 엔진은 자연스럽고 생생한 음원 재생을 지원한다. 두 기술은 손실된 디지털 음원을 복원해 고해상도로 높이는 기능까지 제공된다.
최적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본체 설계도 새롭게 했다. 통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프레임 빔 벽(Frame Beam Wall) 구조는 내구도와 진동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한다. 진동이나 전기 신호에 의한 노이즈를 막는 설계도 이뤄졌다. XLR4 단자 외에 소니가 선보인 4.4mm 밸런스드, 2.5mm 밸런스드, 3.5mm 언밸런스드 단자 등 다양한 장치에 대응하는 부분도 장점이다.
'소니 사운드'의 완성형, 귀는 즐겁다
각 제품의 소개를 마쳤으니 본격적인 청음에 대한 감상을 남길 차례. 연결은 NW-WM1Z(플레이어)를 TH-ZH1ES(앰프)에 전용 단자로 디지털 연결한 후, MDR-Z1R을 사용해 청음하는 방식이다. 연결은 이번에 일본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가 제안한 4.4mm 밸런스드 단자가 쓰였다. 우리가 흔히 쓰는 3.5mm 규격은 좌우 정보를 담은 스테레오 출력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노(단일) 출력 기반이다. 밸런스드는 좌우 신호를 따로 전송 가능해 시스템만 좋다면 현장감을 느끼기에 좋다. 기존에는 2.5mm나 다른 지름의 단자를 썼지만 JEITA는 이를 4.4mm로 통일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음원은 기자가 가지고 있는 24비트/96kHz 고해상 파일(FLAC)을 사용했다. 일부 음원은 24비트/192kHz이기도 하다. NW- WM1Z는 TH-ZH1ES에 연결하면 DSEE HX나 몇몇 기능은 활성화되지 않고 앰프에 귀속된다. 그래서 주요 설정은 앰프에서 이뤄졌다. 먼저 DSEE HX는 비활성화 했으며, 음량 보정과 같은 편의 기능도 모두 비활성화 했다. 음장(이퀄라이저)도 적용하지 않은 기본 상태로 청음했다.
소리. 개발에 있어 핵심으로 꼽은 '공간감'은 충분히 느껴진다. 오히려 기자는 소니 특유의 사운드 스타일이 이 시그니처 시스템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음원이 품은 소리를 최대한 재생해 주고 있는데, 오히려 음원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
MDR-Z1R의 착용감은 여느 플래그십 헤드폰과 비교해도 아쉽지 않다. 장시간 귀에 걸고 있어도 피로감을 느끼기 어렵다. 또한 이어패드가 귀 주변을 감싸기 때문에 차음성도 뛰어나다. 귀에 쓰는 순간 소음 제거(노이즈 캔슬링) 이어폰과 비슷한 효과를 느꼈다.
NW-WM1Z와 MDR-Z1R 조합은 약간 아쉽다. 플레이어의 출력이 하위 제품군 대비 강해졌음에도 조금 모자라다는 인상이다. 음량을 높여도 충분한 출력이 전달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MDR-Z1R을 다른 플레이어에 연결해도 비슷한 느낌이다. 64옴이라는 헤드폰의 저항값이 크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소리라는 것이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기자의 평가가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는다. 청음자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어서다. 때문에 소니 시그니처에 흥미가 있다면 가급적 소니스토어에 방문해 직접 청음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소리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흠잡을 것이 없다. 다만 앰프나 플레이어를 사용한다면 가급적 DSEE HX는 끄고 쓰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한 번 활성화한 상태로 청음을 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리고 비싸다. 플레이어인 NW-WM1Z가 349만 9,000원, 헤드폰 MDR-Z1R이 249만 9,000원, 앰프 TH-ZH1ES가 279만 9,000원이다. 도합 879만 7,000원이다. 880만 원을 들고 가면 저 세트를 모두 구매하고 남은 돈으로 E모 커피매장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실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통장은 텅텅 비겠지만 대신 커피 한 잔 마시며 어떤 음악을 들어볼지 즐거운 상상이 가능하다.
시그니처를 경험하며 삼합이 떠올랐다. 세 가지가 잘 어울려 딱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흔히 각지에 있는 삼합 요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맛이나 식감 등 잘 어울리는 음식 세 가지를 모아 최고의 만족을 느끼는 것이 핵심 아니겠는가. 시그니처가 딱 그런 예다. 플레이어와 앰프, 헤드폰 이 세 가지가 모여 최고의 조화를 이뤄낸다. 하나만 없었어도 아쉬웠을 조합이다. 가격은 자비가 없지만 말이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