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문과 함께하는 감성 쇼핑 여행기, (4) 이탈리아 베니스
1.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 아우구스티누스
2.
또 하나의 책장을 펼치기 위해, 이번에는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베니스에 내린 뒤 도시로 들어가려면 수상버스(바포레토)를 타야 했다. 베니스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고,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교통로로 바포레토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과연 '물의 도시'다웠다.
바포레토는 시원한 물살을 가르며 산타루치아 역을 향해 나아갔다. 바닷바람을 바라보며 베니스에서 유명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우선, 베니스 곳곳에서 파는 가면자석. 베니스에는 중세 시대에 서민들이 가면을 쓰고 귀족 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덕분에 가면으로 된 소품이 곳곳에 많다고.
이뿐만이 아니다. 베니스의 무라노 섬은 유리공예로 유명하다. 베니스에서는 10세기 이후부터 유리와 크리스탈을 만들어왔고, 13세기 즈음부터 유리 세공업자들이 모두 무라노 섬으로 이전해 현재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무라노 섬에서 조금 떨어진 부라노 섬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과 레이스 공예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 전경이 워낙 아름다워 웨딩 촬영지로 손꼽히기도 한다고.
기대감을 갖고 도착한 베니스. 아른아른 물 위에 비치는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에 감탄을 한 필자는 곧장 베니스 체류 일정을 하루 더 늘렸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이틀밖에 있을 수는 없어.
3.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레이스 공예로 유명한 부라노 섬이었다. 물론 베니스 본섬의 전경도 아름다웠지만,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을 때 알록달록한 건물의 전경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베니스 본섬에서 부라노 섬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필자는 베니스 본섬에서 무라노 섬을 경유해 부라노 섬을 가는 길을 택했다. 산타루치아 기차역에서 가까운 Ferrovia역 또는 P.le Rome역에서 3번 또는 4.1번, 4.2번 바포레토를 타면 된다. 그리고 무라노 콜로나 역에 내려서 12번 바포레토를 타고 부라노 역에 내리면 된다. 베니스 본섬에서 부라노 섬까지 가는 데에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은 보통 하루 일정으로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이럴 경우 바포레토를 24시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티패스권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만 30세 이하라면 베니스 롤링카드를 구매하는 게 이익이다.
4.
드디어 도착한 부라노 섬. 알록달록 색색깔의 건물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부라노 섬이 알록달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지역은 안개가 자주 끼는데, 어부들이 바다로 멀리 나갔다가 돌아올 때 집을 쉽게 찾기 위해서 눈에 띄는 색깔로 페인팅을 했다고 한다. 각각의 집들은 어떻게 수많은 색깔 중 그 하나를 집 색깔로 골랐을까. 집집마다 톡톡 튀는 개성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마을에 무지개가 내려앉은 듯한 풍경은 여행길에 고단했던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었다. 가수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촬영지답게, 하루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5.
레이스 공예가 유명한 만큼, 부라노 섬 곳곳에는 섬세하게 디자인한 작품들이 많았다. 앞치마, 아기 옷, 스카프부터 레이스 가면, 액자에 이르기까지, 레이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이토록 많은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를 놓으며 장인들은 어떤 꿈을 꾸고, 무슨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을까.
6.
알록달록한 건물과 레이스 공예만큼 아름답게 느껴졌던 건 바로 '빨래' 였다. 부라노 섬에는 집집마다, 마을 곳곳에 주민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걸려 있었다. 깨끗이 빨아 널어놓은 옷가지들이 알록달록 무지개 마을에 내려앉은 것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진 느낌이었다. 남아 있는 눈물마저 따뜻한 햇살에 말라 조용히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7.
아름다웠던 부라노 섬을 뒤로 하고, 유리 세공 장인들이 모여 산다는 무라노 섬으로 향했다. 부라노 섬이 아기자기하고 화사했다면, 무라노 섬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빈티지했다. 거리 곳곳에는 장인들이 만든 유리공예 작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물고기, 곤충부터 각종 동물, 사람 얼굴, 가방 모양에 이르기까지 유리로 표현한 것들이 가득했다.
어디서 화로에 불을 지피는 소리와 뾰족한 물체들을 쓸어담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 유리 세공 장인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그 모습을 담지 못했지만, 뜨거운 화로 옆에서 흘리는 장인의 땀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떻게 유리 소재 하나만으로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유리 세공 장인은 투명하고 반짝반짝한 유리 속에 세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멋진 일이다. 글을 업으로 삼는 난 매일 어떤 문장을 골라야 할지 아무리 결을 세어보아도 어려운데.
8.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무라노 섬의 하늘은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무라노 섬을 둘러싸고 있는 물 역시 노을을 만나 말갛게 달아올랐다. 베니스 본섬으로 돌아가는 바포레토(3번 또는 4.1번, 4.2번)을 기다리며, 이 풍경을 느릿느릿 기억하기로 했다. 숨이 벅차도록 뛰기 바쁜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느리게 기억한다는 것은 노을빛만큼 달콤한 휴식과 위안이 될 것이리라.
9.
베니스 본섬에서도 무라노 섬의 유리 공예 제품을 구입할 수 있지만, 무라노 섬을 방문해서 구입하는 것이 보다 저렴하다. 필자는 무라노 섬에서 귀걸이와 액세서리, 장식품, 유리로 만든 시계 등을 구입했다. 무라노 섬에서 구입한 유리 세공 제품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곳에서는 흔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인 만큼, 공감대를 나눠보고자 해외여행 전문 쇼핑 앱 '셀러문'에 판매글을 올려보았다.
10.
다음날 아침, 일정상 피렌체로 먼저 떠난 동행자 J로부터 연락이 왔다.
"혹시 가면자석을 더 사올 수 있어? 셀러문에서 찾는 분들이 많아"
셀러문과 함께하는 이번 여행에서, 많은 셀러문 사용자들이 꼭 사 달라고 요청한 물품이 있었으니 그것은 베니스에서 판매하는 가면자석. 사실 가면자석은 베니스 곳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흔한 액세서리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추억이자 잇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 여행지에 머무르는 사람으로서 그 공감대를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서둘러 길에 나가 가면자석을 잔뜩 샀다. 남에게 줄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구매를 요청한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리라.
11.
가면자석 쇼핑을 마친 후, 산 마르코 광장을 찾았다. 산 마르코 광장은 베니스의 명소 중 하나로, 건물들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거대한 홀처럼 보인다. 나폴레옹은 산 마르코 광장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응접실처럼 둘러싸인 공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들이 있었다는 것은 함정이었지만 말이다(!)
산마르코 성당과 종탑을 바라본 광장 오른편에는 광장의 명소, 카페 플로리안이 자리해 있었다.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도부터 영업을 시작했고, 전쟁 중에도 영업을 계속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괴테, 모네, 바이런, 쇼펜하우어, 카사노바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자주 찾은 카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역사 속의 유명한 인사들은 이 카페를 방문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카페에서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관찰했다. 메뉴판을 보며 무엇을 주문할지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웃음짓는 노부부, 아이에게 디저트를 먹여주는 아버지의 모습. 이런 일상적인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너무나 달콤했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커피 한 잔만큼이나 별 것 아닌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12.
베니스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곳 중에 하나, 바로 두칼레 궁전이 있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 관저였던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두칼레 궁전은 산 마르코 성당 근처에 자리해 찾아가기 쉽다. 흰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건물은 화사하고도 화려했다. 쭉 뻗은 기둥과 유려하게 제작된 조각상도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끌었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내부는 촬영할 수 없었지만, 궁전 내부는 무척 호화로웠다. 벽과 천장은 베네치아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섬세하게 세공된 금 장식들이 각각의 그림들을 둘러싸고 있어 눈부시게 빛났다. 총독이 거주하는 건물인 만큼 무척이나 넓고, 화려하고, 웅장하고 위풍당당했다.
반면, 대평의회의 방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나오는 '탄식의 다리'는 무척이나 어둡고 좁고 음침했다. 작은 창문 사이로 바깥 풍경이 겨우 보일락말락 했다. 탄식의 다리는 총독이 거주하는 건물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 판결을 받은 죄수들이 감옥으로 넘어갈 때 다리의 창밖을 보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니스를 바라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탄식을 했다고 한다. 이에 이 장소가 탄식의 다리로 명명되었다는 설이 있다. 탄식의 다리를 지나자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감옥들이 나타났다.
하나의 건물이 작은 다리를 두고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니.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찬란하게 기쁘고, 먹구름이 낀 듯 어둡기를 반복하는 우리네 세상살이와 꼭 닮은 느낌이었다.
13.
두칼레 궁전을 나와서는 그란데 운하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여행을 가면 한 장소를 찍고 다음 장소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게 한다면 시간을 절약하면서 많은 곳을 가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각의 장소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그 곳의 공기를 한껏 느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도 숨가쁘게 사는데, 왜 여행을 와서도 바쁘게 돌아다녀야만 할까? 안 그러면 아까워서? 글쎄, 여행은 시간을 낭비하는 대가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 장소는 피렌체, 피렌체에서도 줄곧 게으른 여행을 이어갈 예정이다. 오늘도 느린 여행길을 걷는 도중에 노을빛이 진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