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하드 장인이 만든 SSD는 이렇습니다", 웨스턴디지털 코리아 박길선 부장
[IT동아 이문규 기자] '한 우물을 판다'란 말이 있다. 물을 찾으려 이 우물 저 우물 다 파헤치기 보다, 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우물 하나를 정해 도전하는 자세를 뜻한다. 이 말은 주로 비즈니스 분야에서 통용된다. 여러 사업 분야에 무턱대고 진출하기 보다, 가장 자신 있고 경쟁력 있는 하나의 사업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요즘 시대에 적합한 생존 기반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 '웨스턴디지털(Western Digital, 이하 WD)'은 1970년에 창립되어 45년 넘게 오로지 한 우물에만 집중하고 있다. '컴퓨터용 저장장치'라는, 결코 마르지 않을 우물이다. 디스크의 개념 조차 없던 시절부터 TB(테라바이트)급 하드디스크가 보편화된 현재까지 그들은 저장장치 한 우물만 꿋꿋하게 집중하고 있다. 45년 이상 저장장치 하나만 파고 있으니, 전세계에서 이들만큼 저장장치를 잘 만드는 곳은 거의 없다.
요즘의 컴퓨터용 저장장치라면 대개 하드디스크(HDD, Hard Disk Drive)를 의미한다. WD는1970년 창립 후 20여 년 동안 하드디스크 기술을 연구, 개발한 후 1992년에 업계 최초로 320MB 하드디스크를 출시했다. 이후 용량, 속도, 내구성 등을 개선, 보완, 발전 시킨 하드디스크를 현재까지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40여 년 전에 비해 사업은 번창하고 기업 규모도 커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저장장치 하나에만 몰두한다.
2012년에는 히타치(Hitachi, HGST) 하드디스크 사업부를, 2015년에는 글로벌 메모리 업체인 샌디스크(Sandisk)를 인수하면서,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저장장치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11월 WD는 컴퓨터용 저장장치의 대세인 SSD(Solid State Drive) 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SSD는 기존 HDD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와 안전한 내구성이 특징인 저장 드라이브로, HDD보다 저장용량 당 가격은 비싸지만, 저장장치 시장 점유율에서 이미 HDD를 추월했다. 국내외 SSD 시장은 삼성전자나 인텔, 마이크론 등이 진출해 점유율 분배가 정리된 상태지만, WD는 자사 SSD 제품 첫 출시에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다.
WD는 기존의 자사 HDD 제품군에 '색'을 입혀 각 제품군을 구분했다. 이에 따라 사양 및 성능, 용도 등에 맞춰, 일반 소비자는 '블루'를, 고성능이 필요한 전문 사용자는 '블랙'을, NAS 저장기기 전용으로는 '레드'를, CCTV나 녹화기기에는 '퍼플'을 선택하면 된다. 이번 WD SSD에도 색상 브랜딩을 적용해 '그린' 제품군과 '블루' 제품군을 우선 출시했다. 웨스턴디지털 코리아 박길선 영업 부장(사진)의 설명이다.
"HDD나 SSD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를 위한 간단한 선택 기준입니다. 사양이나 성능 수치와 같은 전문 지식을 몰라도, 사용 용도나 환경 등에 따라 그에 맞는 색깔의 디스크를 선택하면 됩니다. 인텔 CPU의 성능 등급을 'i3', 'i5', 'i7' 등으로 나눈 것, 기아자동차의 차량 등급을 'K3', 'K5', 'K7' 등으로 나눈 것과 같습니다. 기존 HDD 시장에는 'BBRPG 브랜딩'을 강조해, 블루/블랙/레드/퍼플/그린 등 5개 제품군을 공급해 오고 있습니다. SSD는 우선 그린과 블루 제품군으로 시작했습니다."
박길선 부장에 따르면, WD 퍼플 제품군은 CCTV 저장기기 전용 하드디스크인데,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이미 '퍼플 하드 = CCTV 전용 하드'라는 인식이 굳어진 상태다. 더불어 NAS 저장장비 전용 레드 제품군은 WD를 비롯해 여러 NAS 제조사 NAS 제품에 장착되고 있다고 말한다. WD의 '색 마케팅'이 시장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경쟁사도 유사한 방식의 선택 기준을 도입하고 있다.
"SSD 시장 진입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좀 늦었지만 도전할 가능성과 가치는 충분합니다. 특정 시점의 시장점유율 확보보다는, SSD 소비자의 생각과 성향을 제품에 반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 SSD 시장은 '삼성 대 비-삼성' 제품의 경쟁 구도로 정리되는데, 2017년 이후로는 '삼성 대 WD 대 비-삼성의 3자 경쟁 구도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지난 달 SSD를 출시하면서 이전부터 많은 시장 조사를 했고, 특히 삼성 SSD 제품을 눈 여겨 보면서 삼성 SSD의 우수한 성능과 비-삼성 SSD의 합리적 가격을 동시에 갖추려 했습니다."
국내 SSD 시장에서 삼성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가격은 유사 경쟁 제품에 비해 약간 비싸지만, 우수한 성능으로 PC매니아들이 선호하는 SSD로 자리 잡았다. 박길선 부장은, 이제 막 SSD 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그런 만큼 소비자 반응이 오히려 더 뜨겁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HDD 시절부터 가졌던 WD 제품에 대한 신뢰감과 충성도 때문이라 여긴다. WD SSD 출시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바랐던 이들도 기존 WD HDD 사용자다.
"지난 달에 출시된 WD SSD는 불과 한달 만에 국내 SSD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소비자 반응도 대단히 좋고 판매 실적도 기대 이상으로 높습니다. 특히 플래시메모리 전문업체인 샌디스크를 인수한 후에 출시한 SSD라는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시장 점유율을 좌지우지하는 수준은 못 되지만, 내년 2017년 한해를 지나며 분명히 가시적인 시장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WD는 SSD를 처음 출시하면서, 주로 '성능'을 드러내는 경쟁업체와는 달리 '내구성(수명)'을 강조하고 있다. 테스트 프로그램 등으로 측정해야 알 수 있는 미세한 성능 차이에 연연하기 보다는, 누구라도 오래오래 안정하게 사용할 SSD를 만들고자 한다. 지금의 SSD는 성능과 수치에 민감한 전문가만 쓰는 저장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SSD는 이제 모든 PC 사용자를 위한 저장장치입니다. 때문에 일반 사용자도 부담 없이 접하고 오래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WD는 지난 45년 간 저장장치 시장에서 쌓았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펌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테스트 환경과 제조 노하우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제품 완성도와 직결하고, 최종적으로 사용자에게는 내구성으로 제공됩니다. '막 찍어 만들어 내는 SSD'가 결코 아닙니다."
WD는 'F.I.T 테스트 랩(Test Lab, 사진)'이라는 저장장치 테스트를 위한 대규모 테스트 환경을 구축하고, 10,000가지 이상의 설정과 상황에 따라 자사 HDD와 SSD를 전수 테스트하고 있다. 전세계 주요 제조사의 데스크탑, 노트북, 외장하드디스크 케이스, NAS, 서버, 기타 저장장비 등을 모두 마련해 WD HDD 및 WD SSD와의 호환성, 안정성, 내구성 테스트를 진행한 뒤 제품을 생산한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중요한 부품으로서 당연한 절차다.
"PC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만들어 지는 사용자 데이터가 급증하는 시대라, 이제는 모든 사용자가 그런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존 HDD 시절에는 아무 생각, 계획 없이 무턱대고 저장했다면, SSD 시대에는 자신에게 유용할 데이터를 선별해 저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용자의 데이터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SSD 관련 소프트웨어(WD SSD 대시보드, 아크로니스 트루이미지 등)도 계속 개발, 공급하고 있습니다. SSD뿐 아니라 WD 외장 하드디스크도 이에 포함됩니다."
WD는 지난 해 샌디스크를 인수/합병한 후로, 샌디스크의 SSD는 OEM 제조사 등에 공급하고, 일반 사용자용 SSD는 WD 브랜드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기업용 스토리지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HSGT까지 흡수해 기업 저장장치 시장에서도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저장장치 한 분야에서 일반 사용자부터 전문가, 기업 시장까지 모두 확보한 것이다. 한 우물을 파려면 이들처럼 파야 하지 않을까.
"SSD 출시 초기라 현재는 그린 제품군(120GB ~ 240GB)과 블루 제품군(250GB, 500GB 이상)만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용도와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내년 이후 WD HDD 제품 시리즈처럼 선택의 폭을 넓히려 합니다. 3D 낸드 메모리 기술을 적용한 WD SSD를 기다리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은데 이 역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3D 낸드 메모리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위해 제품에 적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3D 낸드 메모리 기술은 WD가 처음으로 개발한 겁니다."
40년 이상 저장장치 한 분야만 고집했기에 관련 기술로는 업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전세계 모든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최신 기술을 적용한 값비싼 고성능 HDD/SSD보다는, 누구라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제품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저장장치 전문기업으로 이제서야 SSD 시장에 진출했지만 WD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SSD의 저변을 늘려가는 것입니다. HDD 시장에서도 그랬듯, SSD 시장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WD의 영향력이 잔잔하지만 견고하게 깔리게 될 겁니다. SSD 출시 채 한달도 안 돼 소비자들의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45년 이상 역사의 저장장치 전문기업이 만든 SSD는 어떻게 다른 지는 직접 사용해 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반세기 WD의 절대 가치는 다름 아닌, 안정성과 내구성입니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