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4K 블루레이 + 게임 = 엑스박스 원 S
[IT동아 강일용 기자] 사실 기자는 8세대 비디오 게임기 전쟁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엑스박스 원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닌텐도나 소니 같은 경쟁자보다 우월한 자금력과 소프트웨어 기술력, 엑스박스와 엑스박스360을 거치며 얻은 노하우 등을 접목하면 MS가 흔들리는 소니와 닌텐도 정도는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기자의 예측은 역시 믿을게 못되나 보다.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MS와 엑스박스 원은 반 사용자적인 정책을 쏟아내며 스스로 침몰했다. 경쟁자보다 떨어지는 성능, 어이없이 비싼 제품 가격, 키넥트 강매, 비디오 게임기가 아니라 가정용 만능 멀티미디어 기기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 없는 마케팅, 아시아 시장을 무시하는 판매 정책 등 일일이 열거하자니 끝이 없다. 소니 '플레이 스테이션 4(PS4)'라는 대체제가 시장에 멀쩡하게 판매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한 행보였다.
대가는 처참했다. 7세대 비디오 게임기 전쟁에서 MS는 소니와 시장을 양분했지만, 8세대 비디오 게임기 전쟁에서는 참패했다. 본진인 북미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고, 유럽 시장은 PS4에게 완전히 빼앗겼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선 엑스박스 원이라는 기기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MS와 엑스박스 브랜드 마니아인 기자조차 '답이 없다. PS4를 사야겠다'고 생각할 지경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MS가 늦게나마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지적받은 문제점을 하나하나 수정하며 반격을 노리고 있다. 경쟁자보다 떨어지는 성능을 만회하기 위해 상위 모델인 '엑스박스 원 스콜피오'를 발표했고, 비싼 제품 가격을 경쟁자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수준으로 낮췄다. 꼴도 보기 싫은 키넥트는 아예 치워버렸다. 멀티미디어 기기라는 주장은 접고,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늦게나마 여러 퍼스트 파티(MS와 협력사) 게임을 완벽 현지화하면서 게이머들을 불러 모으려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형 모델 '엑스박스 원 S'다. 기존 엑스박스 원의 단점인 '엄청난 덩치'를 경쟁자 PS4 수준으로 축소했고, 멀티미디어 성능을 대폭 강화했다. 가격은 경쟁 모델인 PS4 슬림과 대동소이하다. MS 입장에선 비로소 경쟁자에게 반격할 준비가 된 것이고, 사용자 입장에선 드디어 믿고 살 수 있는 모델이 등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지난 11월 25일 한국MS는 국내에 엑스박스 원 S를 정식 출시했다. 엑스박스 원 S가 어떤 제품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엑스박스 원
S 500GB(마인크래프트 모델)의 구성품. 엑스박스 워 S 본체, 3세대 엑스박스 원 콘트롤러, HDMI 케이블, 전원 케이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돌을 연상시켰던 거대한 전원 어댑터는 사라졌다. 포르자 호라이즌3와 헤드셋은 별매이니 참고할 것>
작아진 덩치, 더 미려해진 디자인
엑스박스 원 S는 전작 엑스박스 원과 비교해 부피가 6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거대한 외장 전원 어댑터도 본체 속으로 들어갔다. 크기가 실질적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 굳이 비교하자면 경쟁 제품인 PS4보다 약간 작다고 보면 되겠다(PS4 슬림 말고 그냥 PS4 기준이다). (제품을 세운 상태를 기준으로) 세로 길이는 좀 더 길지만, 가로 길이는 2/3 수준에 불과하다. 덕분에 좁은 공간에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경쟁 제품인
PS4와의 크기 비교. 세로 길이는 더 길지만, 가로 길이는 훨씬 짧다>
디자인 콘셉트는 전작과 유사하다. 버튼이나 단자 배치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디자인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크기만 줄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제품을 세로로 세울 수 없고, 가로로 눕혀서 사용해야 했던 전작과 달리 엑스박스 원 S는 세로로 세워서 사용할 수도 있고, 가로로 눕혀서 사용할 수도 있다. 세로로 세우면 좁은 게임 룸에서도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게이머들에게 환영받을 부분이다.
전원 버튼은 터치 방식이었고, 블루레이 디스크 추출 버튼은 물리 방식이었던 전작과 달리 모든 버튼이 물리 방식으로 교체되었다. 겉 보기에는 멋있었도 실수로 잘못 누를 가능성이 높다는 터치 버튼의 단점을 의식한 변화다. 단자 구성은 전작과 유사하다. 게임 컨트롤러, 외장 하드 등을 연결할 수 있는 USB 단자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3개다. 측면에 있었던 게임 컨트롤러용 USB 단자는 전면으로 위치가 변경되었다.
셋톱박스, 블루레이 플레이어, 비디오 게임기, PC 등 다른 기기에서 전달된 신호를 입력받을 수 있는 HDMI - IN 단자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과거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를 지향해을 때의 유산이다). HDMI - OUT 단자뿐만 아니라 SPDIF 단자도 갖추고 있어서 다중채널 음성 출력(= 홈씨어터와 연결하기)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제조 원가 절약을 이유로 SPDIF 단자를 제거한 경쟁 제품 PS4 슬림보다 뛰어난 부분이다.
<엑스박스 원의
뒷면. 경쟁 제품인 PS4 슬림에는 없는 HDMI IN 단자와 광출력 단자가 눈에 띈다>
다만 키넥트(엑스박스 원, 윈도우용 모션 인식 센서) 연결용 단자는 없어졌다. 기존 키넥트는 USB 단자와 변환 젠더를 활용해 연결할 수 있다. 물론 키넥트용 게임이 제대로 출시되지 않는 만큼 엑스박스 원 S와 키넥트를 실제로 연결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4K 블루레이와 HDR10 지원
엑스박스 원 S는 4K 블루레이와 HDR10을 지원하는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다.
4K 블루레이는 UHD 해상도(3,840x2,160)의 고품질 영상을 담을 수 있는 차세대 영상 저장매체다. 인터넷으로 4K 스트리밍을 감상할 경우 데이터 전송량을 감당하기 위해 1컷당 데이터량을 최대한 압축해 화질이 상당히 떨어지는 반면 4K 블루레이는 HEVC 코덱을 채택해 1초당 60MB 용량의 고품질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UHD 해상도로 다시 제작된 4K 블루레이 콘텐츠도 최근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아마존닷컴 등지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가격은 일반 블루레이보다 3~4배 정도 더 비싼 편이다. 슬프게도 국내에 정식 발매된 4K 블루레이 콘텐츠는 아직 없으며, 미국용 4K 블루레이 콘텐츠 가운데 일부가 한국어 자막을 지원한다(미국, 한국, 일본이 A 지역 코드를 공유한다).
엑스박스 원 S는 가격 대 성능비를 따져도 상당히 우수한 4K 블루레이 플레이어다. 비슷한 성능을 갖춘 시중의 4K 블루레이 플레이어보다 5만 원 정도 더 비싼 편인데, 6만 원 상당의 게임 콘트롤러를 껴주는 점이나 비디오 게임도 실행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4K 블루레이 재생기를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당연히 4K 블루레이 플레이어로서의 사용자 환경도 제대로 갖추고 있고, 7.1 채널 출력을 위한 광출력 단자도 보유하고 있다.
엑스박스 원 S는 보다 실제에 가까운 명암과 색을 보여주는 HDR 10을 정식 지원한다. HDR 10은 0니트~1000니트 사이의 명암 표현력과 10비트 색 표현력(10억 7374만 1824색)을 갖추고 있다. 4K 블루레이 등 동영상 뿐만 게임에도 HDR 10이 적용된다. 실제로 HDR 10을 지원하는 오픈월드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3'를 엑스박스 원 S로 실행해보니 실제 호주에 방문한 것 같은 실감나는 광원과 하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엑스박스 원 S로 HDR 10을 이용하려면 HDR 10(제조사에 따라 HDR 1000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을 지원하는 TV와 HDR 10을 지원하는 게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HDR 10을 지원하는 게임 별로 없는 상태다. 하지만 향후 MS가 출시하는 모든 게임과 내년에 출시될 써드파티 게임 가운데 상당 수가 HDR 10을 지원할 예정이다.
<3세대
엑스박스 원 콘트롤러와 엑스박스 원 엘리트 콘트롤러의 디자인 비교>
뛰어난 게임 콘트롤러가 더욱 뛰어나게 변하다
엑스박스 원 S는 3세대 엑스박스 원 콘트롤러를 동봉했다. 1세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스마트폰과 동일한 3.5파이 헤드셋 단자를 탑재해 게임에서 출력되는 사운드와 음성을 일반 헤드셋으로도 듣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성 대화만 제한적으로 입출력할 수 있었던 1세대 엑스박스 원 콘트롤러에 비해 장족의 발전이다.
와이파이 다이렉트만 지원했던 1, 2세대 콘트롤러와 달리 블루투스 연결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엑스박스 원 콘트롤러를 PC나 노트북에 무선으로 연결하려면 2만 원짜리 리시버를 추가로 구매해야 했으나(그냥 마이크로 USB 케이블을 활용해 유선으로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 이제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에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되어 있으면 바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연결거리, 인식률, 반응속도 등은 블루투스보다 와이파이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것이 우수한 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게임 콘트롤러로 평가받는 엑스박스 원 콘트롤러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사소한 단점도 해결했다. 1세대 콘트롤러는 RB, LB 버튼을 누르는 감각이 좋지않고, 아날로그 스틱을 움직이는 느낌이 조금 뻑뻑하다는 단점을 지적받았다. 엑스박스 원 S에 동봉된 3세대 콘트롤러는 이러한 문제가 모두 개선되어 있다. 덕분에 FPS, 레이싱 게임 등을 더욱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엑스박스 원
S를 처음 실행하는 모습. 온라인 연결 및 각종 업데이트를 필요로 하며,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엑스박스 라이브(엑스박스
게임 멀티플레이를 위한 통합 서버)나 엑스박스 라이브 스토어(각종 게임과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온라인 게임 장터)를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바로 실행할 수도 있다>
전작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
엑스박스 원이 경쟁자 PS4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정숙함이다. 엑스박스 원 S는 이러한 엑스박스 원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엑스박스 원 S는 게임을 실행해도 65dB 내외의 소음밖에 발생하지 않는다(게임 설치 시에는 80dB까지 올라간다). 일반 사무실과 비슷한 수준의 소음이다. PS4가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을 실행하면 100dB 내외의 어마어마한 소음이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설계 단계부터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써서 만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비록 게임의 3D 그래픽 표현 능력은 PS4가 더 뛰어날지 몰라도, 거실 등에 두고 사용하기에는 디자인이나 소음 면에서 엑스박스 원 S도 충분히 훌륭한 기기다. 사실 3D 그래픽 표현 능력도 요즘 나오는 PC용 그래픽 카드와 비교하면 엑스박스 원 S나 PS4나 도긴개긴이다.
서양 게임은 충분한데, 일본 게임은 턱 없이 부족해
사실 비디오게임기로서 엑스박스 원 S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산 게임의 부재다. 현재 비디오 게임은 서양 게임 70%, 일본 게임 30% 정도의 비중으로 공급되고 있는데, 엑스박스 원 S는 일본 게임이 턱없이 모자라다.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 15 등을 제외하면 일본 게임이 거의 출시되지 않고 있다. PS4에 비해 출시되는 게임이 1/3 정도 부족한 것이다. 때문에 한국어로 현지화되어 출시되고 있는 일본의 캐릭터 게임 대부분을 즐길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서양 게임은 PS4와 비등비등하다. MS가 직접 제작한 기어스 오브 워, 헤일로, 포르자, 마인크래프트 등의 양질의 퍼스트 게임뿐만 아니라 콜 오브 듀티, 배틀필드, 타이탄폴, 데스티니, 오버워치 등 일반 개발사가 제작한 써드파티 게임도 모두 즐길 수 있다. 현지화 비율도 PS4와 대등하다. 서양 게임 위주로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라면 PS4 대신 엑스박스 원 S를 선택해도 무방하다.
<포르자
호라이즌3. (아마도) 현존 최고의 레이싱 게임>
덤핑폭탄을 맞은 전작의 그림자를 지워내야
엑스박스 원 S는 500GB 용량의 모델(마인크래프트 포함)이 37만 8,000원, 1TB 용량의 모델(기어즈 오브 워4 포함)이 42만 8,000원에 판매 중이다. PS4 슬림과 비슷한 가격인 만큼 가격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잘
만들었는데, 국내에서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다. 비운의 비디오 게임기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기기다>
문제는 엑스박스 원 S가 출시되기 전에 진행된 '재고떨이'다. 기존 모델인 엑스박스 원의 재고를 모두 처분하기 위해 한국MS와 총판은 엑스박스 원을 20만 원 내외의 가격에 판매했다. 때문에 한국 게이머들에게 엑스박스 원은 20만 원대의 저렴한 제품으로 인식이 확고하게 박혀버렸다.
게다가 엑스박스 원 S는 참 애매한 시기에 발매된 모델이다. 내년에는 성능을 4배 이상 강화한 차세대 모델 엑스박스 원 스콜피오의 발매가 예정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무리 전작의 단점을 개선했다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저렴한 4K 블루레이 플레이어라는 점만 믿고 비디오 게임기를 구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양질의 게임을 지속적으로 현지화해 발매하고, 제품 자체의 매력을 알려나가야 하는 과제가 한국MS에게 주어졌다. 한국MS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국내 시장에서 엑스박스 원 S는 이전 모델처럼 쓴 맛을 볼 수밖에 없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