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스마트폰을 향한 구글의 험난한 여정
[IT동아 강일용 기자] 완벽한 조립식 스마트폰은 정녕 불가능한 걸까. 구글의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ARA)'의 구체적인 모습과 발매 일정이 공개되었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완벽한 조립식 스마트폰을 꿈꾸던 초기의 야망 대신 얼마 전 LG전자가 G5와 함께 공개한 모듈(G5&프렌즈)의 발전형 같은 부품 교체 시스템만 남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아라?
아라는 2012년부터 모토로라에서 연구되었던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다. 목표는 간단하다. 현재 데스크탑PC처럼 스마트폰도 CPU/GPU, 메모리, 저장장치, 디스플레이(모니터), 카메라, 배터리 등의 주요 부품을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구매한 후 조립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사용자들에게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많은 사용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제조사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제품에서 벗어나 나만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아라의 콘셉트는 획기적이었다. 스마트폰의 뼈대가 되는 '아라 프레임(PC로 치면 메인보드다)'에 디스플레이, 스피커, CPU/GPU, 메모리, 저장장치, 카메라, 배터리, 지문인식센서 등 다양한 '아라 모듈'을 연결할 수 있었다. 고품질 사진을 원하는 사용자는 DSLR 제조사에서 내놓은 카메라 모듈을 부착하면 되고, 누구보다 배터리 사용시간이 긴 스마트폰을 원하면 스마트폰 구동을 위한 필수 부품 외에 남은 부분에 배터리 모듈을 가득 채우면 된다. 뛰어난 음질을 원하면 고급 오디오 제조사에서 내놓은 스피커 모듈을 2개 이상 부착하면 된다. 스마트폰을 블루투스 스피커 대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다. 4인치, 5인치, 6인치 등 다양한 크기의 아라 프레임 제공해 제품 크기에 따른 사용자의 수요까지 만족시키고, 디스플레이도 LCD/OLED, HD~4K 해상도 등 다양한 옵션이 주어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1년 동안 제대로된 시제품 하나 보여주지 못했다.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부팅만' 되는 시제품이 공개되었다. 그 상태로 구글은 2015년 말에 푸에르토리코에 아라를 출시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 계획을 백지화했다.
목표의 절반만 달성
얼마 전 열린 구글 I/O 2016에서 드디어 제대로된 아라 시제품이 공개되었다. 풀HD 해상도 5.2인치 화면을 갖춘 아라 시제품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제대로 실행되고, 앱을 설치할 수 있었다. 또한 사용자 취향에 맞게 뒷면의 카메라, 배터리, 스피커 등을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공개한 완벽한 조립식 스마트폰이라는 콘셉트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일단 디스플레이, CPU/GPU, 메모리 등의 교체가 전혀 불가능하다. 아라 프레임에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라 프레임에는 디스플레이, CPU/GPU, 메모리, 안테나, 센서, 배터리 등이 내장되어 있다. 저장장치를 제외하면 아라 프레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완성된 스마트폰인 셈이다(사실 저장장치도 구글이 직접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지 일체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디스플레이, CPU/GPU, 메모리 등 스마트폰의 성능에 관여하는 부분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아라 프레임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성능 및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실행과 관계 없는 부분은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다. 아라 스마트폰 뒷면에 존재하는 6개의 커넥터에 카메라, 스피커, 배터리, 지문인식센서, 보조 화면 등 다양한 모듈을 연결할 수 있다. 모듈은 사용자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배치 가능하다. 카메라를 두 개 연결해 3D 촬영을 할 수도 있고, 스피커를 두 개 연결해 블루투스 스피커 대용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보조 화면을 연결해 주 화면을 켜지 않아도 시간이나 메시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배터리를 여러 개 연결해 제품 사용 시간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플러그앤플레이를 지원하기 때문에 아라 스마트폰이 켜져있는 상태에서도 모듈을 바로 교체할 수 있다.
<아라 프레임에
다양한 모듈을 연결해 개성있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
즉, 현재 아라는 성능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기능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스마트폰인 셈. 아라의 초기 콘셉트가 데스크탑 PC처럼 업그레이드와 커스터마이징을 모두 지원하는 스마트폰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처음 목표의 절반만 달성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실행이 갖는 의미
아라는 왜 이렇게 현실적인(?) 제품이 된 것일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실행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PC의 경우 처음부터 조립식 PC를 감안하고 규격이 설계되었다. 20년 전에 출시된 286 PC도 부품을 구매해 조립할 수 있었다. 30년이 넘는 PC의 역사가 바로 부품 표준화의 역사다. 메인보드에 담겨있는 펌웨어가 이렇게 표준화되어 있는 부품을 하나의 제품이 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운영체제도 이러한 환경을 감안하고 설계되었다. 운영체제가 다양한 부품을 인식할 수 있도록 드라이버도 함께 개발되었다. 때문에 사용자는 부품을 구매해 조립한 후 운영체제와 드라이버만 설치하면 바로 PC를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스마트폰은 애당초 조립식을 감안하고 만들어진 플랫폼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부품의 추가 및 변경이 불가능한 완제품으로 설계되었고, 운영체제 역시 이러한 환경에 맞춰 발달했다.
구글도 처음에는 PC처럼 모든 부품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을 꿈꿨다. 하지만 30년에 걸친 PC 부품 표준화의 역사를 구글 혼자 하루 아침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라 프레임에 탑재할 펌웨어도 만들어야 했고, 다양한 부품을 인식할 수 있게 드라이버도 만들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조립식 스마트폰에 맞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뜯어고쳐야 했다. 이 모든 작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결과는 작년 구글 I/O 2015에서 공개된 간신히 부팅만 되는 아라 스마트폰이었다(참고로 앱 실행 및 설치는 꿈도 못꾸었으나, 공개 현장에 있던 개발자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구글은 타협안을 내놨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실행할 수 있는 부분(성능)은 완제품으로 제공하고, 운영체제 실행과 관계 없는 부분(기능)은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성능을 강화하고 싶다면 아라 프레임을 교체하고, 기능을 바꾸고 싶다면 모듈을 구매하면 된다. 모듈은 부품과 드라이버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에 아라 프레임에 꽂는 즉시 바로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예전만큼 획기적이진 않지만, 지금 아라 스마트폰도 장점이 많다. 일단 업그레이드 비용이 저렴하다. 아라 프레임은 스마트폰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만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나름 가격이 저렴하다. 부품을 하나하나 교체할 수 있었던 예전 콘셉트보다는 비용 부담이 늘었지만, 스마트폰 완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부담이 적다.
호환성도 계속 유지된다. 모듈은 철저히 규격화되어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의 성능 및 화면 크기에 아쉬움을 느껴 아라 프레임을 교체하더라도, 이미 구매한 모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아라 프레임과 모듈의 색상은 사용자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프로젝트 아라의 개발자 버전은 올해 가을 출시된다. 사용자들은 2017년 초에 정식 버전을 만나볼 수 있다. 아라의 가격 및 참여 제조사의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구글 관계자는 프로젝트 아라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올해 말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