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에서 모바일까지, 다이렉트X 대체 노리는 '벌칸'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이제 막 PC에 설치한 게임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주변의 '고수'에게 질문하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다이렉트X(directx) 런타임 최신 버전을 설치해라'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 다이렉트X란 도대체 무엇일까?

상당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다이렉트X는 특정 프로그램의 이름이 아니다. 정확히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라고 하는 것이 옳다. API란 여러 가지 프로그램 규칙을 일련의 함수들로 규정하여 모아놓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쉽게 참조,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인터페이스(interface: 프로그램이나 하드웨어 사이에 사용되는 언어나 규칙)로 재구성한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다이렉트X는 PC용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도우미 같은 존재라는 의미다. 윈도우95 이전에 이용하던 도스(DOS) 운영체제 기반의 PC에선 호환성 문제 때문에 게임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윈도우95 및 다이렉트X의 등장 이후, 이 규격을 준수해 개발된 게임은 각기 다른 하드웨어로 조합된 다양한 PC에서도 호환성 문제 없이 실행할 수 있고, 성능도 원활하게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이용되는 대부분의 PC 게임은 다이렉트X 기반으로 제작된다.

플랫폼 다양화, 대체 API의 등장으로 위협받는 다이렉트X의 입지

하지만 이런 다이렉트X의 독점 시대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첫 번째 요인은 플랫폼의 다양화다.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중심으로 하는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플레이스테이션4과 같은 콘솔 게임기 시장이 여전히 견고하다. PC만이 게임 시장의 중심이 아니라는 의미다.

벌칸의 로고
벌칸의 로고

두 번째 요인은 다이렉트X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API가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크로노스그룹(Khronos Group)이 지난 2월 첫 번째 버전을 발표한 벌칸(Vulkan, 불칸)이 그 중심에 있다. 벌칸은 윈도우는 물론, 리눅스, 안드로이드, 타이젠, 스팀OS와 같은 다양한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또한 벌칸은 보다 낮은 단계(low-level)의 하드웨어부터 접근, 한층 원활하게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일한 이름의 게임이라도 다양한 플랫폼을 대상으로 개발,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PC에 근접한 품질과 재미를 제공하는 게임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으며, 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대상으로 게임을 개발하면 비용과 시간 역시 월등히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을 가진 게임 개발자들에게 벌칸은 상당히 매력적인 API다.

특히, 비영리 단체인 크로노스그룹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유력 업체가 가입한 상태다. 인텔, AMD, 엔비디아, 퀄컴과 같은 주요 반도체 업체는 물론, 애플, 삼성, 소니, 화웨이와 같은 굵직한 하드웨어 제조업체들, 구글 및 밸브, 블리자드와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여기에 속한다. 더욱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API인 다이렉트X와 달리, 벌칸은 로열티 없이 접근 가능한 오픈소스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이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시도는 좋았던 '맨틀', 벌칸으로 빛 볼까

사실 벌칸과 같은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특히 AMD의 경우 2013년, 자사의 신형 GPU(그래픽처리장치)인 라데온 200 시리즈를 출시하며 '맨틀(Mantle)' API를 함께 발표한 바 있다. 다이렉트X 대비 한층 낮은 수준의 하드웨어의 성능을 원활히 이끌어내며, 한층 쉽게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의 벌칸과 유사점이 있다.

AMD 맨틀
AMD 맨틀

다만, 맨틀을 지원하는 게임은 배틀필드4, 씨프 등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았고, AMD의 하드웨어만 지원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AMD는 전략을 수정, 사실상 맨틀을 벌칸에 통합시키기로 했다. 실제로 현재 공개된 벌칸의 기술적인 내용은 상당부분 맨틀의 그것과 유사하며, 지난 2월 벌칸의 첫 번째 버전의 발표에 즈음해 AMD는 벌칸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맨틀 자체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넓은 의미로 볼 때 벌칸은 맨틀의 방계 후손 같은 존재다.

아직은 보기 힘든 지원 소프트웨어, 향후 기대해 볼 만

벌칸으로 개발된 탈로스의 법칙
벌칸으로 개발된 탈로스의 법칙

벌칸의 성공을 이끌기 위한 관건은 역시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등장이다. 2016년 3월 현재 출시된 벌칸 API 지원 게임은 탈로스의 법칙(The Talos Principle)이 유일하다. 이 게임은 윈도우, OS X,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테이션4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 벌칸이 폭넓은 플랫폼을 지원하는 동시에 낮은 성능의 하드웨어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한다는 점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제 막 등장한 벌칸이 게임 시장에 어느정도 변화를 가져올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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