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아이폰 SE, 4인치 그리고 399달러
[IT동아 권명관 기자] 2016년 3월 21일(현지시간), 애플이 아이폰 5s와 같은 4인치 화면 크기의 '아이폰 SE'를 발표했다. 화면 크기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거의 같다. 현장에서 실제 제품을 살펴 본 IT동아 김태우 기자의 말도 다르지 않다. 아이폰 5s와의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 애플 직원의 설명을 듣고 서야 몇 가지 미세하게 달라진 점을 찾았단다. 모서리 마감 처리와 버튼 크기. 이전 아이폰 5s는 모서리를 다이아몬드 커팅으로 처리해 빛이 났지만, 아이폰 SE는 무광 처리 되어 있다. 또 한가지 후면 애플 로고가 달라졌다. 애플이 아이폰 6를 출시하며 애플 로고를 음각 기법으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넣었는데, 아이폰 SE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사실 4인치 아이폰의 등장은 출시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뭐… 드디어 나오는구나' 정도. 하지만, 하나씩 발표가 진행되면서 '어라? 이것봐라?'로 바뀌었다. 결정타는 가격. 16GB와 64GB 모델 가격이 399달러와 499달러. 32GB 모델 부재가 조금 아쉽지만, 애플이, 아이폰을, 이 가격에 출시한다는 것에 놀랐다. 발표 이후 주변 IT 기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농담으로 이런 말도 전했다. 역사상 가장 저렴한 아이폰이 등장했다고.
큰 화면에 익숙한 사람에게 4인치 아이폰 재등장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아이폰 사용자 중에는 여전히 4인치 아이폰을 고수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작년에 전세계에서 판매된 4인치 아이폰 판매량만 3,000만 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그리고 화면 크기와 디자인 외에 중요한 것 하나, 성능을 보자. 아이폰 SE 성능은 아이폰6S의 최신 사양을 대부분 그대로 담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디자인은 아이폰 5s, 성능은 아이폰 6s다. A9 프로세서, 4K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1,200만 화소 카메라, 라이브 포토, 터치 ID 지원 등. 3D 터치만 빠져 있다. 누군가는 보급형, 저가형 아이폰이라 말하지만, 글쎄. 보급형? 아니다. 아이폰 SE의 성능은 보급형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미안하다.
아이폰 SE, 애플의 선택
정리해보자. 4인치 아이폰, 아이폰 SE 출시는 애플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폰 사용자들은 아이폰 6와 6 플러스 출시화 함께 4인치 아이폰 라인업 고수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큰 화면에 익숙해진 사용자가 작은 화면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진 않지만, 생각 외로 4인치 아이폰 사용자는 아직도 꽤 많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애플은 4인치 아이폰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점에 와서 다시 4인치 아이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일까.
일단 가격에 주목해야 한다. 399달러와 499달러. 역사상 최저가라는 아이폰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지금 이 시점에 애플이 꺼내든 카드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예로 들어 보자. 2014년 9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4,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야 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후 스마트폰 사용자는 정체기에 접어 들었다. 2016년 1월 기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약 4,391만 명. 한마디로 살 사람은 다 샀다는 의미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마트폰 포화 상태 즉,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정체기에 접어 들면서 사람들은 스마트폰 성능과 가격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스마트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이 중저가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폰은 오랜 기간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상징했다.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상징하는 앱스토어, 사용자 친화적인 iOS의 인터페이스, 애플워치, 맥북 등 자사의 제품과 연동되는 연결성 등 아이폰이 가진 상징성은 지난 몇 년간 확고했다. 하지만, 점차 확대되고 있는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좌시할 수는 없을 터. 사실 애플도 넌지시 카드를 내밀기는 했었다. 바로 아이폰 5c. 시장의 평가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애플의 고민을 엿볼 수 있던 제품이다.
저렴한 가격의 아이폰 SE는 이러한 고민의 완성작이다. 특히, 아직 스마트폰 시장의 대기 수요가 높은, 반대로 말해 스마트폰 성숙기에 접어들지 않은 시장 공략에 최적화한 모델이다. 바로 중국과 인도. 같은 의미로 중국과 인도는 애플에게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애플이 중국에서 거둔 작년 성적표를 보자. 애플은 아이폰으로 작년 초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1위를 거뒀고,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남은 것은 인도. 지난 몇 년간 인도는 수많은 스마트폰 제조사의 공략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장 규모에 비해 이렇다 할,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제조사는 아직 없다고 봐야 한다. 여전히 공략 대상으로 남아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며,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뜻.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작년 인도 시장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1억 1,800만 대이며, 2017년에는 1억 7,4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애플은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해 한걸음씩 전진해 왔다. 아직 한국처럼 인도 현지에서 리셀러 매장을 운영 중인 애플이 올해 초 인도에 직영 매장을 열기 위해 인도 정부에 허가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외 제조사가 인도에서 판매하기 위한 몇 가지 규제가 있지만, 이 역시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추세. 남은 것은 중저가 스마트폰을 바라는 인도 시장의 특징 뿐이다. 참고로 시장조사기관 IDC는 인도 스마트폰의 평균 가격은 2014년 135달러이지만, 2018년 102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아이폰 SE는 4인치 아이폰을 바라는 여전한 수요층과 차기 몇 년간 수익을 보장할 수도 있는 인도 시장의 규제 완화,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등 다양한 시장 상황 속에서 꺼내든 애플의 카드다. 특히, 애플은 제품 출시 후 몇 년간 제품 및 리퍼폰 생산을 유지하기 때문에 아이폰 SE를 출시한다 해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성능은 아이폰 6s로 디자인은 아이폰 5s를 유지하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것. 시장 상황과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아름다운 상황이 아닐까.
(황당하지만) 후배 기자는 아이폰 SE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더라. “아이폰 SE는 아이폰 5s 케이스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죠? 이번 기회에 바꿔야겠네요.”라고.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