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왜 보드게임에 집착해 왔을까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그 승패를 제외하고도 많은 화제거리를 낳았다. 이세돌의 첫 대국 불계패에서부터 3연패 후 드라마틱한 승리, 그리고 다시 패배한 마지막 결전에 이르기까지. 1주일간의 대결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이 대국을 주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결을 인간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인공지능의 도전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BM의 슈퍼 컴퓨터 '딥 블루' 개발을 담당했던 머레이 캠벨 박사는 "더 이상 보드게임, 두뇌게임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이제 대부분의 보드게임을 정복했다.
인공지능은 처음 연구가 시작되던 1950년대부터 보드게임에 도전해 왔다. 인공지능이 포함된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틱택토'였다. 체스와 체커는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1994년, 인공지능은 마침내 체커로 인간을 제치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이어 1997년에는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를 정복했다. 체커와 체스가 정복당한 이후, 인공지능은 더욱 빠르게 발전했다. 2013~2014년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장기를 완전 정복했다. 그리고 얼마 전, 바둑마저도 정복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경기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100년 가까이 이어온 보드게임 경기의 결승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보드게임 대결이 계속되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인공지능 개발에 보드게임이 적합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개발자들의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구글 딥 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보드게임광이라고 한다. 그는 13세에 체스 마스터가 되었고, 14세 이하 부문 경기에서는 세계 2위까지 올라갔다. 천재 과학자들의 일상을 다룬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는 온갖 보드게임이 등장한다. 젠가, 카탄, 모노폴리 등 한국에서 익숙한 게임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잘 하지 않는 복잡한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컴퓨터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인공지능의 보드게임 정복은 마치 새로운 것이 원시적인 것을 전복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개발자들은 여전히 보드게임에 주목한다. 심지어 코딩을 가르치기 위한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2년 전에는 구글의 자회사 CEO를 지냈던 프로그래머 댄 샤피로가 어린이들에게 코딩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한 보드게임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해 화제가 됐다. '로보터틀'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보드게임은 그가 자녀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기 위해 개발한 보드게임이다. 로보 터틀은 킥스타터에서 목표 금액인 2만 5천 달러를 훌쩍 넘은 63만 1230달러를 모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로보터틀 외에도 코딩을 보드게임으로 가르친다는 발상은 여러 개발자의 손에서 구현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많이 쓰이는 코딩 교육용 게임인 '코드 마스터'도 그 중 하나다. 로보 터틀은 코딩의 원리와 프로그래밍 언어에 익숙해지게 돕는 보드게임이고, 코드 마스터는 로직에 익숙해지도록 만든 게임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 능력과 유사해지기 위해 보드게임을 학습해 왔고, 어린이들은 프로그래밍을 이해하기 위해 보드게임을 배운다. 이러한 현상은 IT 기술과 보드게임이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인공지능을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드게임은 훌륭한 통역사다.
제공 / 코리아보드게임즈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o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