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의실] 10억분의 1미터씩 진보하는 반도체 기술
[IT동아 김영우 기자]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얼마나 넓을까? 물론 이를 정확히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극히 높은 단위의 수치를 말할 때 '천문학적'이라는 용어를 쓰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PC나 스마트폰 같은 IT기기들도 천문학적인 수치를 담고 있다는 건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 주인공들은 반도체 소자들이다.
IT기기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반도체 소자, 특히 CPU(중앙처리장치)나 GPU(그래픽처리장치)와 같은 프로세서는 정말로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하고 있다. 1971년에 나온 초기형 프로세서인 인텔 4004는 불과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품고 있었으나, 2016년 현재 팔리는 인텔 코어 시리즈나 AMD A 시리즈 등은 1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품고 있을 정도다.
손가락 끝에 올려 놓을 수 정도로 작은 반도체 하나에 이렇게 많은 트랜지스터를 담을 수 있는 건 물론 극히 미세한 소자를 의도대로 배열할 수 있는 집적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1970년대의 반도체 집적 기술은 백만분의 1미터에 해당하는 ㎛(마이크로미터) 단위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십억분의 1미터에 해당하는 nm(나노미터) 단위의 공정이 기본이 되었다. 고성능 전자 현미경을 써야 겨우 볼 수 있는 수준의 극히 미세한 간격으로 트랜지스터가 배열되어 있다는 의미다. 현재 반도체 소자를 만든다는 건 그야말로 손톱만한 공간에 하나의 우주를 구성한다는 것과 거의 같다.
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극히 정교한 세계
이러한 공정의 미세화는 반도체 제조사들의 홍보용 소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새로운 프로세서를 출시할 때마다 이전에 비해 한층 향상된 미세 공정을 적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PC용 프로세서 업계 1위인 인텔의 경우, 2014년 하반기에 코어M, 2015년 상반기에 5세대 코어를 발표하며 브로드웰 아키텍처(architecture: 설계방식) 기반의 이들 프로세서에 업계 최초로 14nm 공정을 도입했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이전의 4세대 코어(코드명 하스웰)에 적용된 22nm 공정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14nm 공정은 2015년 하반기에 출시된 6세대 코어(스카이레이크 아키텍처)에도 이어진다.
< 최근 10여년간 AMD GPU 공정의 변화>
AMD에서도 2016년 중순에 출시될 새로운 라데온 GPU에 향상된 미세 공정을 적용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폴라리스' 아키텍처가 적용될 신형 라데온은 기존의 28nm 공정보다 정밀도가 크게 향상된 14nm 공정이 적용된다. 특히 AMD의 공정 변경은 거의 5년여 만의 일이다. 한동안 아키텍처의 개선만으로 성능 향상을 시도했던 최근 몇 년간의 AMD 제품에 비해 이번 신제품은 한층 성능 향상 폭이 클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그 외에 퀄컴이나 삼성전자와 같이 모바일 기기용 프로세서를 주로 생산하는 업체들도 공정이 향상된 새로운 반도체의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점을 대외에 널리 알리고 있다.
미세공정 반도체는 무조건 성능이 좋다?
다만, 미세 공정으로 생산된 반도체가 기존 공정으로 생산된 반도체에 비해 무조건 고성능인 것은 아니다.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고성능 반도체를 한층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 라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이를테면 14nm 공정은 22nm 공정에 비해 보다 동일한 면적에 좀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칩의 크기를 줄이는 데도 유리하다. 성능 저하 없이 칩의 크기를 줄일 수 있으니 소비 전력 역시 줄어들며, 이를 이용해 한층 크기가 작으면서 전력 소모율을 낮춘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 공정으로 개발된 반도체라도 칩의 크기를 키우거나 클럭(동작속도)를 높이는 등의 다른 방법으로 성능을 향상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도체의 경우엔 소비 전력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크기와 배터리 이용시간을 중시하는 기기에 적용하기가 곤란하다. 게다가 발열도 심해지기 때문에 제품의 수명이나 안정성 면에서 불리해지며,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장치를 증설해야 하므로 제품 이용 중에 발생하는 소음도 심해질 수 있다.
3차원 입체 구조 적용한 '핀펫' 공정이 대세
한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이미 천문학적으로 미세해진 제조공정을 더욱 향상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평면적인 구조로 프랜지스터를 배치하던 기존의 방식 대신, 3D 입체 구조를 적용해 한층 접적도를 높이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입체적인 구조가 마치 튀어나온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연상시킨다 하여 핀펫(FinFET) 기술이라고도 한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