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중심 '가상현실 인증', 통합이 필요해
[IT동아 강형석 기자] 엔비디아가 PC 및 노트북의 가상현실(VR) 성능을 파악할 수 있는 인증 프로그램 '지포스 GTX VR 레디(이하 VR 레디)'를 발표했다. 그래픽 프로세서 제조사가 제안하는 첫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으로 출시될 다양한 가상현실 게임 및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데 필요한 요구 사양에 대한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엔비디아는 PC와 노트북, 그래픽 카드 제조사들과 인증 관련 제휴를 맺었다. 전 세계 56개 PC 및 관련 제품 제조사들이 참여했으며, 여기에는 컴퓨존과 다나와 등 국내 PC 유통관련 업계도 포함되어 있다.
김선욱 엔비디아 코리아 기술 마케팅 부장은 "VR 레디는 오큘러스나 바이브 등 어떤 기기로도 원활하게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다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소비자들이 쉽게 가상현실 대응 제품을 인지할 수 있도록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프로세서 개발사가 제안하는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
가상현실 관련 인증의 필요성은 제기되어 왔다. 아직 표준이 없고, 콘텐츠 개발사가 구현하는 정도에 따라 요구되는 환경이 각기 다른 이유에서다. 원활한 구동을 위한 최적의 사양을 소비자에게 정리해 줘야 한다는 것이 인증 프로그램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이었다. 이에 일부 기관이나 제조사는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을 논의 또는 준비하고 있다.
사실, 가상현실 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련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고 제안한 경우는 있다. 오큘러스 레디(Oculus Ready)가 그 예다. 오큘러스는 유명 고성능 PC 브랜드 에일리언웨어와 델, 에이수스 등과 협력해 관련 제도를 도입한 PC를 판매하고 있다.
< 가상현실 기기 제조사 오큘러스와 협력한 PC에 부착되는 '오큘러스 레디' 뱃지. >
오큘러스 레디는 가상현실 환경을 최소한 즐길 수 있는 구성으로 마련되어 있다. 인텔 코어 i5 4590 급 이상 CPU와 지포스 GTX 970 또는 AMD 라데온 R9 290 급 이상 그래픽카드가 기준이다. 이 외에 3개의 USB 3.0 단자와 USB 2.0 단자 1개, 8GB 이상 시스템 메모리 등 PC 사양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세 브랜드를 통해 출시되는 PC는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으며, 측면에 '오큘러스 레디' 뱃지가 부착된다.
엔비디아 VR 레디도 오큘러스 레디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사양을 제안한다. 그러나 완제품 PC에 한정한 오큘러스 레디와 달리 그래픽카드와 PC, 노트북 등 비교적 세분화된 제품군의 시스템 사양을 제안한다는 것이 다르다.
먼저 시스템 사양은 PC의 경우, 최소 인텔 코어 i5 4590 급 이상의 CPU와 지포스 GTX 970급 이상 그래픽 카드가 필요하다. 노트북은 여기에 그래픽 프로세서만 지포스 GTX 980으로 상향조정된다. 지포스 GTX 980M이 있지만 노트북에서 최적의 가상현실 환경을 구현하기 어렵다. 실질적인 사양만 놓고 보면 일반 지포스 GTX 970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VR 레디'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 >
조건에 만족하는 제품이면 엔비디아 VR 레디 뱃지가 제품에 부착된다. 그래픽카드는 패키지에 노트북이나 PC는 제품 내에 부착하고 이를 통해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가상현실을 준비하는 소비자는 해당 뱃지를 보고 제품을 판단하면 된다.
통합 인증 프로그램 마련되어야
오큘러스 레디, 엔비디아 VR 레디 모두 소비자가 쉽게 가상현실 대응 제품을 인지하게 한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다. 반면, 하드웨어 개발사 단독으로 가상현실 환경 구축을 위한 시스템을 제안했다는 한계가 있다. 타 제품을 구매했거나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가상현실 환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예로 엔비디아는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경쟁사인 AMD는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하드웨어 개발사 단독으로 최소 시스템을 상정하고 발표할 가능성이 있어 혼동의 우려가 있다. 현재 오큘러스와 엔비디아의 최소 PC 시스템 사양이 동일하지만, 향후 다른 기관이나 제조사의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이 이들과 같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선택의 다양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PC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공개되는 가상현실 인증으로는 소비자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성해야 제대로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을지 당분간 알기 어렵고, 오히려 제품 선택권이 왜곡될 수 있다. 현재의 인증 프로그램은 일부 제품군에 소비자를 몰리게 하는 마케팅적 요소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상현실 제품이 출시되고 관련 콘텐츠가 활성화될 때까지는 현재의 제안들이 의미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러 제조사가 힘을 모으거나, 공인 인증기관을 통해 소비자들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합 가상현실 인증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