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엔비디아의 빈틈을 노린다, AMD 라데온 R9 380X
[IT동아 김영우 기자] 한때 고화질의 대명사처럼 취급 받았던 풀HD급 해상도, 즉 1080p(1,920 x 1,080)는 이제는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시중에서 팔리는 보급형 TV나 모니터도 대부분 1080p를 지원하며, 심지어는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도 요즘은 1080p가 기본이다.
1080p의 뒤를 이을 차세대 고화질 해상도 규격으로는 이른바 4K UHD 해상도라고 불리는 2160p(3,840 x 2,160)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문제는 4K UHD 규격의 TV나 모니터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모니터 시장에는 1080p 보다 고화질이면서 4K UHD 제품보다 저렴한 WQHD급, 즉 1440p(2,560 x 1,440) 해상도의 제품이 제법 팔리고 있다.
다만, 보다 고해상도 모드에서 콘텐츠, 특히 게임을 원활히 구동하려면 당연히 그래픽카드의 성능도 그만큼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라데온 R9 퓨리 시리즈나 지포스 타이탄 시리즈처럼 4K UHD 환경을 겨냥한 100만원대에 이르는 제품을 사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최근에는 1080p와 4K UHD 사이의 1440p 게이밍에 적합하다고 강조하는 그래픽카드가 제법 나오고 있다. 여기 소개할 AMD의 신제품, 라데온(Radeon) R9 380X도 그 중의 하나다.
지포스 GTX 960과 970의 사이를 노린다
AMD 라데온 R9 380X는 이전세대의 제품인 라데온 R9 285에 처음 쓰인 통가(Tonga) 계열 GPU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적용했다. 통가 계열은 최상위급 GPU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면서 일부 사양을 조정해 값을 낮춘 것이 특징으로, 주로 30만원 근처의 그래픽카드에 탑재된다.
한 발 먼저 출시된 라데온 R9 380이 20만원 중~후반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으니 반 등급 위인 라데온 R9 380X는 20만원대 후반 내지 30만원 초반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해외 가격 239달러). AMD 라데온 R9 380X가 엔비디아 지포스 GTX 260과 GTX 970 사이의 자리를 노린다고 한다면 그 정도의 가격이 적절하다.
'통가' 계열 GPU의 완성형, 라데온 R9 380X
기존의 라데온 R9 380은 R9 285와 많은 부분에서 유사했지만, R9 380X는 좀 다르다. 970MHz의 GPU 동작속도, 256bit 인터페이스 기반 4GB GDDR5 메모리 등의 사양은 라데온 R9 380과 유사하지만, 스트림 프로세서의 수가 1792개에서 2048개로 늘어났으며, 텍스처 유닛의 수도 112개에서 128개로 증가하는 등, 내부적으로 근본적인 성능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도 소비 전력은 190W로 동일하다. 단순히 소비전력을 높여 성능을 향상시킨 제품은 아니라는 의미다.
또한 여느 라데온 R9 300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최신 그래픽 기술을 다수 지원한다. 다이렉트X 12, 벌칸(Vulkan), 맨틀(Mantle) 등을 지원하므로 윈도우10과 같은 새로운 컴퓨팅 환경에 충실히 대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GPU의 최대 성능을 제한하는 수직동기화의 적용 없이도 화면이 갈라지는 테어링 현상을 억제할 수 있는 AMD 프리싱크(FreeSync) 기술, 모니터의 사양을 넘는 가상 초고해상도 모드를 이용할 수 있는 VSR(Virtual Super Resolution) 기술, 게임 실행 시 불필요한 성능 소모를 최소화하여 시스템 및 GPU의 전력 소비와 시스템 온도를 낮추는 프레임 레이트 타깃 콘트롤(FRTC: Frame Rate Target Control) 기술 등도 갖추고 있어 최신 그래픽카드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파이어 NITRO RADEON R9 380X의 면모
IT동아에 도착한 샘플 제품은 사파이어의 'NITRO RADEON R9 380X'로, AMD 레퍼런스(표준) 규격 클럭(GPU 970MHZ / 메모리 1,425MHz) 보다 약간 오버클러킹(GPU 1,040MHz / 메모리 1,500MHz) 되어 출고되는 제품이다. 시중에 팔리는 그래픽카드 중에 태반이 오버클러킹 제품인걸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런 제품을 사게 될 것이다.
제품의 외형을 살펴보면 전면에 2개의 대형 냉각팬, 그리고 기판 표면 거의 전체를 덮는 대형 히트 파이프 및 방열판을 달았으며, 기판 후면에도 금속 커버를 씌워 냉각 효율을 높인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이 냉각팬은 구동하는 콘텐츠에 따라 회전 속도가 달라지며, 웹 서핑이나 문서 작성과 같이 부하가 적게 걸리는 작업을 할 때는 아예 냉각팬이 정지해 소음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PCIe 보조전원 포트는 6핀 규격 커넥터 2개를 꽂아 작동한다. 정력출력 500W 이내의 파워서플라이(전원공급장치)를 탑재한 시스템이라면 무난히 구동 가능하다. 그리고 크로스파이어 모드(2대 이상의 그래픽카드를 하나의 시스템에 달아 그래픽 성능 강화)의 구성이 가능하지만, 전용 브릿지를 연결하기 위한 슬롯부는 없다. GCN(Graphic Core Next) 1.2 아키텍처 기반의 그래픽카드는 브릿지 연결 없이 크로스파이어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크로스파이어용 슬롯부가 있을 법한 자리에 듀얼 바이오스 전환 스위치가 있다. 과도한 오버클러킹 등으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전환 스위치를 통해 바이오스를 정상 상태로 전환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영상 출력 인터페이스는 DVI 2개, 그리고 HDMI와 DP가 1개씩 달려있다. 복수의 모니터를 동시 연결해 하나의 큰 화면처럼 쓰는 아이피니티(Eyefinity) 기술도 당연히 지원한다.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이용한 성능 테스트
제품의 개요를 살펴봤으니 다음은 성능을 가늠해 볼 차례다. 테스트 시스템은 6세대 코어 i7-6700K(스카이레이크) CPU에 16GB(8GB x 2)의 DDR4 메모리를 꽂은 윈도우 10(64비트) 기반의 PC를 이용했다. 비교대상으로는 경쟁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960(2GB, 인터넷 최저가 약 26만원)와 지포스 GTX 970(4GB, 인터넷 최저가 약 43만원)를 준비했다. 지포스 GTX 960의 경우는 4GB 버전도 시장에 팔리고 있으나 주력 제품은 역시 2GB 버전이다.
가장 먼저 해본 테스트는 시스템의 그래픽 성능을 테스트해 이를 점수로 매기는 3DMark를 이용한 벤치마크다. 고성능 그래픽카드 테스트용으로 자주 쓰이는 FireStrike 모드를 구동, 결과값을 비교해봤다.
테스트 결과, 라데온 R9 380X는 8,358점을 기록했다. 6,958점을 기록한 지포스 GTX 960, 9,973점을 기록한 지포스 GTX 970의 사이에 위치하는 성능이다. 지포스 GTX 960이 4GB 버전이었다면 수백 점 정도는 더 나왔겠지만 그래도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 구동 테스트 1 – 디아블로3
이제부터는 직접 게임을 구동하며 성능을 측정해보자. 벤치마크 프로그램 점수가 잘 나오더라도 실제 게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래픽카드도 제법 있다. 이번 테스트에선 그래픽 옵션(최대 프레임을 제한하는 수직동기화는 제외)을 최상으로 높인 상태에서 화면 해상도 1080p(1,920 x 1,080)와 1440p(2,560 x 1,440) 모드에서 같은 장면을 플레이 했다. 게임 중에 측정되는 초당 프레임이 평균 30프레임 이내라면 원활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수준, 평균 60프레임 이상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테스트한 게임은 '디아블로3'다. 최신의 고사양 게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근 신규 업데이트가 되면서 다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으니 한 번 테스트 해 볼만하다.
테스트 결과, 라데온 R9 380X는 3DMark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지포스 GTX 960과 GTX 970의 중간 정도 성능을 냈다. 다만, 수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이는 디아블로3가 상대적으로 그래픽카드 보다는 CPU의 성능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며 게임의 최대 초당 프레임이 200 프레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초당 60프레임만 넘는다면 인간의 눈으로는 그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으므로 디아블로3 정도의 게임만 즐긴다면 굳이 이 정도 수준의 그래픽카드가 필요하진 않을 것 같다.
게임 구동 테스트 2 – 파이널판타지14
다음으로 테스트 해본 게임은 MMORPG인 '파이널판타지14'다. 이 게임은 최적화가 잘 되어있어 비교적 낮은 사양의 PC에서도 플레이는 가능하지만, 각종 고급 그래픽 효과를 적용하면 만만치 않은 성능을 요구한다.
테스트 결과, 역시 라데온 R9 380X는 지포스 GTX 960과 지포스 GTX 970 사이에 해당하는 성능을 냈다. 지포스 GTX 970과의 성능차이가 제법 있긴 했지만, 라데온 R9 380X도 1440p 환경에서 평균 60프레임에 가까운 성능을 낼 수 있으니 실질적인 게임 플레이의 원활함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 할 수 있다.
게임 구동 테스트 3 – 더 위쳐 3
마지막으로 구동해 본 게임은 액션 RPG인 '더 위쳐3'다. 나온 지는 좀 되었지만 올해 출시된 게임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끈 작품 중 하나라서 아직도 많은 게이머들이 플레이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지라 최신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테스트 하는데 적합하다.
테스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라데온 R9 380X의 위치는 역시 지포스 GTX 960과 GTX 970의 사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픽 옵션을 최상으로 높인 1440p 상태에도 평균 30프레임 정도를 유지해주니 이 게임을 무난히 플레이 가능할 것이다.
기본 역량은 합격, 가격 설정이 관건
사실 요즘 AMD 진영의 기세가 예전 같지 않다. PC 시장 전반의 침체도 이런 상황에 한 몫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제품이 아니라 경쟁자들의 빈틈을 공략할 수 있는 제품일 것이다. 라데온 R9 380X를 테스트해보니 그럴만한 기본 역량은 있는 것 같다. 풀HD과와 4K급 사이의 1440p급 게이밍 시장을 노린다는 점도 나름 괜찮은 전략이다.
일반인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20~30만원 사이의 제품인 지포스 GTX 960, 30~40만원대의 매니아용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GTX 970의 정확히 중간에 해당하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해외 가격은 239달러이니 한국에선 30만원 전후의 적절한 가격으로 풀린다면 제법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것 같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