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크기는 최소한, 성능은 최대한, AMD 라데온 R9 나노

김영우 pengo@itdonga.com

[IT동아 김영우 기자] 고성능의 그래픽카드는 '한 덩치' 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런 제품들은 기판 자체도 큰데다가 탑재되는 각종 칩의 수도 많다. 게다가 이들이 내뿜는 열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식히기 위한 커다란 쿨러도 거의 필수다.

물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커다란 구형 고급형 그래픽카드보다 자그마한 신형 보급형 그래픽카드가 더 나은 성능을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나온 고급형 그래픽카드가 크기까지 작기를 바라는 매니아들도 있다. 그들은 PC 본체 크기를 최소화하면서 성능은 극대화 하는 것을 즐긴다.

AMD 라데온 R9나노
AMD 라데온 R9나노

이번에 새로 나온 'AMD 라데온 R9 나노(AMD Radeon R9 Nano)'는 이런 틈새시장을 노린 제품이다. AMD의 플래그십(최상위급) 그래픽카드인 라데온 R9 퓨리X(AMD Radeon R9 Fury X)와 같은 기반의 칩을 적용해 성능 향상을 꾀함과 동시에, 크기는 보급형 그래픽카드 못지 않게 작은 이 제품의 면모를 살펴보자.

라데온 R9 퓨리X의 '피지' 칩 탑재한 소형 그래픽카드

라데온 R9 나노는 지난 6월, 라데온 R9 퓨리X의 출시에 즈음해 처음 공개되었다. 라데온 R9 퓨리X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차세대 칩인 피지(Fiji)의 탑재였는데, 이는 8억 9,000만개에 달하는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GPU, 그리고 기존의 GDDR5를 훨씬 능가하는 대역폭(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을 발휘하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HBM(High-Bandwidth Memory)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라데온 R9 퓨리X의 4GB HBM은 4096비트 인터페이스 구성에 512GB/s의 대역폭을 발휘한다.

AMD 라데온 R9 나노 사양
AMD 라데온 R9 나노 사양

그리고 라데온 R9 퓨리X의 소형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아 바로 라데온 R9 나노다. 본 제품은 라데온 R9 퓨리X의 피지 칩에 약간의 조정을 거쳐 탑재한 제품이다. 일부 사양(최대 클럭 1050 -> 1000MHz)이 낮아졌지만 트랜지스터 수는 동일하며 무엇보다 피지의 가장 큰 특징인 4GB의 HBM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 외에도 라데온 R9 나노는 다이렉트X12, OpenGL 4.5, OpenCL 2.0, 그리고 벌칸(Vulkan) 등, 최근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신기술들을 대부분 지원한다. 이 역시 라데온 R9 퓨리X와 같은 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래서 그런지 가격도 미화 649달러로 라데온 R9 퓨리X와 동일하다.

기판 길이 15cm, 소형 본체에도 적용 가능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역시 그래픽카드의 크기다. 쿨러를 포함한 기판의 길이가 15.4cm(6인치)에 불과하다. 어지간한 그래픽카드가 20cm를 넘고, 일부 고성능 제품은 30cm에 육박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작은 크기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기존 그래픽카드와 크기 비교
기존 그래픽카드와 크기 비교

그래픽카드의 두께는 3.5cm로 평범하기 때문에 LP 규격의 아주 작은 슬림형 본체에 넣을 순 없지만, 미니타워나 큐브형 본체에 넣기에는 무리가 없다. 미니 ITX 규격의 초소형 메인보드에도 무리 없이 어울리니 제품의 성능등급 대비 공간 활용성이 상당히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미니 ITX 메인보드와의 조합
미니 ITX 메인보드와의 조합

냉각 및 인터페이스 관련 구성

성능 대비 작은 크기를 가진 그래픽카드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역시 발열 및 소비전력이다. 레퍼런스(표준) 규격 라데온 R9 나노의 냉각구조를 살펴보면 거의 기판 전체를 덮고 있는 큰 방열판과 이를 가로지르는 2개의 히트파이프, 그리고 90mm 냉각팬으로 구성되었다. 이 정도 발열 대책이면 무난한 수준이다.

제품 측면
제품 측면

AMD에선 라데온 R9 나노가 기존의 플래그십 그래픽카드(라데온 R9 290X)에 대비해 20도 정도 낮아진 섭씨 75도의 목표 작동 온도, 그리고 30% 낮아진 전력 소모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조사에서 밝힌 설계 전력은 175W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정격 출력 500W 정도의 파워서플라이를 단 시스템이라면 무리 없이 구동 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라데온 R9 퓨리X의 설계 전력은 275W로 제법 차이가 난다. 라데온 R9 퓨리X가 PCIe 보조전원(8핀) 커넥터 2개를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 라데온 R9 나노는 1개(8핀)만 꽂아 구동한다.

출력 인터페이스
출력 인터페이스

외부 연결용 인터페이스는 신형 그래픽카드답게 DP(디스플레이 포트) 위주다. 총 3개의 DP 및 1개의 HDMI로 구성되었다. 이 4개의 포트를 이용해 복수의 모니터를 이어 하나의 화면처럼 쓸 수 있는 아이피니티(EYEFINITY)의 구성이 가능하며, 전용 허브를 쓸 경우엔 최대 6개의 화면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HDMI 포트가 2.0 규격이 아니라서 HDMI 접속 시엔 4K UHD 해상도에서 60Hz 주사율(화면 재생빈도)의 화면을 출력할 수 없다. 4K UHD 모니터에 연결한다면 되도록 DP를 이용하자.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이용한 성능 테스트

제품의 대략을 살펴봤으니 이제는 직접 구동해보며 성능을 체험해 볼 차례다. 테스트 시스템은 코어 i7-4770 CPU에 8GB(4GB x 2)의 DDR3 메모리, 그리고 인텔 535 SSD 및 에이수스 Z97-PRO 메인보드로 구성된 윈도우10 64비트 PC다. 그래픽드라이버는 15.8 베타 버전이다.

라데온 R9 나노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2개의 비교 대상을 준비했다. 첫 번째 비교대상은 상위제품, 혹은 형제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라데온 R9 퓨리X이다. 라데온 R9 나노에 비해 나은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가격도 같으니 말이다.

비교 제품
비교 제품

그리고 두 번째 비교 대상은 엔비디아 지포스 GTX 970의 미니 버전(에이수스 제조)이다. 이는 일반 지포스 GTX 970 보다 기판 크기를 줄인 것으로, 공간활용성을 높인 게임용 그래픽카드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번 테스트에서 이용한 지포스 GTX 970 미니의 기판 길이는 17cm로, 라데온 R9 나노 보다 1.6cm 정도 더 길다. 참고로 지포스 GTX 970의 가격은 해외 기준 329달러로, 라데온 R9 나노의 절반 수준이다. 당연히 성능 면에선 라데온 R9 나노에 비해 떨어지겠지만, 참고는 할 만하다.

가장 먼저 해본 테스트는 PC의 3D 그래픽능력을 측정해 수치로 보여주는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3DMark의 Fire Strike 모드다. 풀HD 해상도에서 모든 설정 값을 초기값으로 유지한 상태에서 벤치마크를 진행했다. 테스트 결과, 예상대로 라데온 R9 퓨리X의 성능이 가장 우수했지만 라데온 R9 나노도 크게 뒤지지 않은 성능을 냈다. 양쪽의 차이는 10% 정도다.

3DMark 테스트
3DMark 테스트

실제 게임 구동을 통한 성능 테스트

벤치마크 프로그램의 측정 값과 실제 게임을 할 때 느끼는 체감 성능은 다를 수 있다. 이제부터는 게임을 직접 구동해보자. 게임 구동 성능을 나타내는 기준은 평균 초당 프레임이며, 초당 30프레임 전후라면 무리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수준, 초당 60프레임 이상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는 수준이다.

각 테스트는 화면 해상도를 풀HD급(1920 x 1080)과 4K UHD급(3840 x 2160)을 번갈아 가며 진행했으며 그래픽 품질은 모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렸다. 다만, 수직동기화와 같이 최대 프레임을 제한할 수 있는 그래픽 옵션은 해제했다.

게임 구동 테스트
게임 구동 테스트

가장 먼저 테스트 해 본 게임은 최근 국내 서비스를 본격 시작한 MMORPG인 '파이널판타지14'다. 마을과 필드를 오가며 퀘스트 진행 및 사냥을 진행하며 평균 프레임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 라데온 R9 나노와 라데온 R9 퓨리X의 성능차이가 수치 상으로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실제로 크게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는 풀HD 해상도와 4K UHD 해상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한편, 지포스 GTX 970의 경우, 풀HD급 해상도에선 제법 선전했지만 4K UHD급 해상도에선 상대적으로 성능 저하가 더 눈에 띄었다.

파이널판타지 테스트
파이널판타지 테스트

다음으로 테스트 해 본 게임은 잠입액션 게임인 ‘메탈기어 솔리드V 팬텀 페인’이다. 아프가니스탄 맵에서 약 20여분 정도 각종 임무를 수행하며 평균 프레임을 측정했다. 풀HD 해상도에서의 성능은 모두 평균 60프레임으로 동일한데, 이는 이 게임의 최대 프레임이 최대 60프레임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K UHD 해상도에서의 결과는 라데온 R9 나노가 라데온 R9 퓨리X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정도였고 지포스 GTX 970은 이보다 약간 더 차이가 벌어졌다.

메탈기어솔리드V 테스트
메탈기어솔리드V 테스트

마지막으로 테스트 해본 게임은 높은 시스템 사양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액션 RPG인 ‘더 위쳐 3’다. 초반 20여분 정도를 플레이하며 평균 프레임을 측정해보니 라데온 R9 나노가 라데온 R9 퓨리X가 상당히 좋은 성능을 냈고, 양상도 비슷했다. 프레임 차이도 이 정도면 거의 오차범위 수준이다. 지포스 GTX 970는 이번 테스트에서 제품의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제법 좋은 성능을 낸 편이지만 역시 등급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4K UHD 모드에서의 성능 저하가 큰 편이었다.

더 위쳐3 테스트
더 위쳐3 테스트

제조사의 의도와 소비자들의 인식 사이의 간극

AMD 라데온 R9 나노는 처음 발표 당시부터 상당히 큰 관심을 끈 제품이다. 특히 라데온 R9 퓨리X에 크게 뒤지지 않는 성능을 내면서 소형 PC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니, 확실히 이전에 나왔던 소형 그래픽카드에선 기대할 수 없던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데온 R9 퓨리X와의 성능차이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AMD 라데온 R9 나노
AMD 라데온 R9 나노

다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라데온 R9 나노가 라데온 R9 퓨리X보다는 어느 정도 저렴하게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은데, 실제 출시 가격은 649 달러로 같았다. 국내 시장에선 90만원대에 팔린다. 라데온 R9 퓨리X와의 성능차이가 생각보다 적고, 여기에 공간 활용성까지 더했으니 같은 가격을 받아도 괜찮을 거라고 AMD는 생각한 것 같다. 나름 이해는 된다. 다만, 이게 소비자들의 예상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다는 것이 딜레마다.

때문에 단순히 '가성비'만 따지는 소비자에게는 이 제품을 추천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엔 이보다 나아보이는 선택지도 많다. 라데온 R9 나노는 성능 외에도 공간활용성 및 PC 내부 구성의 자유도까지 중시하는 소비자에게 어울리는 제품이다. AMD는 라데온 R9 나노가 기존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말하던 것과는 다소 다른 방향성의 플래그십 그래픽카드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얼마나 시장에 먹혀 들어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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