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망] 2. 뉴질랜드가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
[웰링턴=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15년 9월 10일(현지시간),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어퍼후드 문샤인 벨리(Moonshine Valley, Upper Hutt)에 위치한 작은 농가를 방문했다. 지구 남반구에 위치해 현재 겨울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뉴질랜드는 대한민국 면적의 3배 정도 크기이지만, 인구 수는 약 450만 명에 불과한 나라. 때문에 인구가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 조금 벗어난 시골은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음영지역이 존재한다. 이 날 방문한 농가도 마찬가지. 로밍 서비스로 보다폰 뉴질랜드 이동통신을 이용하고 있던 아이폰 화면 왼쪽 위에는 '서비스 안 됨'이라는 글자만 적혀 있었다.
도착한 곳은 말그대로 농가였다. 특히, 강원도 어느 외딴 산골에 위치한 집처럼,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집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외딴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이 곳을 방문한 이유는 최근 재난안전망으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PS-LTE의 긴급 재난 구축 시연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도착하기 전까지 어떤 시연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동통신이 단절된 지역에서 실종된 누군가를 경찰관 또는 소방관 등이 수색해 구출한다'라는 시연 주제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 시연 당일 뉴질랜드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
모든 네트워크가 끊긴 재난 상황이라면
농가에 들어서니 노키아 뉴질랜드의 롭 스프레이(Rob Spray) 지사장이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마당 한켠에 설치한 천막으로 안내한 그는 "지금처럼 많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먼 한국에서 이곳 뉴질랜드의 외딴 곳까지 찾아와서 감사하다"라며, "오늘 어떤 시연을 진행하는지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겠다"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잠시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그는 "여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이 통신 장비는 노키아가 개발해 선보인 NIB(Network In Box)라는 네트워크 솔루션 장비다. 간단히 설명하면, 휴대용 이동 기지국이다. 재난 등으로 인해 이동통신이 끊긴 지역이나 처음부터 이동통신이 끊어져 있는 음영지역으로 옮겨 NIB를 설치하면, 반경 수 킬로미터 지역에 바로 LTE를 연결할 수 있다"라며, "무게는 약 30kg 정도로 헬리콥터나 자동차로 옮기거나 유사 시 성인 남성이 직접 들거나 메고 옮길 수도 있다. 이동통신 연결에 필요한 핵심 장비와 기술은 모두 탑재한 스몰 셀(Small Cell)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을 시작했다.
< 노키아 NIB >
< 안테나를 높이 설치하면 연결 지역을 더 넓힐 수 있다 >
NIB가 바로 이번 시연의 핵심 장비였다. 커다란 가방 정도 안에 필요한 네트워크 장비를 모두 담은 것. 별도로 설치하는 안테나를 높게 설치할수록, 더 먼 곳까지 LTE를 연결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NIB 주변의 아이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연결하면 일종의 LTE 사설망이 구동된다. 또한, 노트북을 연결해 컨트롤 센터를 바로 생성할 수 있다. 즉, 긴급상황 시 해당 지역에 LTE 기지국(NIB)을 개설하고, 이를 노트북과 같은 PC로 연결해 제어 센터를 구축한 뒤,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 구조 요원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참고로 NIB는 내장 배터리로 1시간 정도 구동할 수 있으며, 별도로 전원을 연결하면 계속 이용할 수 있다.
< NIB로 연결한 LTE >
NIB 구축 후 이어지는 'Z-Car'
이어서 그는 "NIB로 재난 지역에 빠르게 LTE를 복구하면, 바로 이어서 'Z-Car'를 투입한다. Z-Car는 NIB를 탑재한 자동차로 LTE망을 보다 넓고, 촘촘하게 구축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한, 지붕에 설치한 위성 연결 통신 장비를 통해 재난 지역의 LTE 사설망을 중앙망과 연결, 통신을 복구할 수 있다"라며, "Z-Car는 시속 200km 이상으로 이동하면서도 계속 LTE망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위성을 통해 중앙망과 연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재난 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소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Z-Car는 차량 배터리를 이용해 NIB의 전원을 계속 연결할 수 있다.
< Z-Car. 이날 시연은 이동통신사 보다폰 뉴질랜드도 함께했다 >
< Z-Car에 탑재되어 있는 NIB >
마지막으로 그는 "재난 지역에 NIB와 Z-Car로 긴급 통신 망을 구축하고 나면, 일반 기지국 수준의 대형 트레일러와 위성과 보다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안테나를 설치하면 된다. 현장 상황이나 기술자의 숙력도에 따라 설치 시간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골든 타임에 가깝도록 빠르게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설명했다.
< 대형 트레일러와 트레일러 내 네트워크 장비 >
< 위성 안테나 >
잃어버린 맥스를 찾아라
NIB, Z-Car, 대형 트레일러, 위성 안테나와 같은 통신 장비에 이어서 긴급 상황을 연출한 뒤, 제어 센터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연이 이어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해당 시연을 진행한 농가는 LTE뿐만 아니라 모든 통신이 끊어져 있는 지역.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니, 천막 구석에 설치한 TV 화면에 농가 주변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NIB를 바탕으로 구축한 LTE 사설망에 연결한 아이폰으로 주변의 상황을 촬영하고, 이를 바로 중앙 센터에서 확인하는 장면. 즉,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LTE 사설망 내에서 바로 현장 상황을 동영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실시간 동영상 전송 >
실시간 무전 통신(PTT)도 당연히 지원한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 맵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구조 요원이 어디에 있고, 누가 지금 말하고 있는지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현장 시연에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해리스가 개발한 제품으로 최대 600명이 동시에 접속해 소통할 수 있다.
< 구조 요원의 위치 및 PTT 방식의 무전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날 농가에는 총 4명의 가상 구조 요원이 흩어져 있었다. 이들의 미션은 실종된 맥스를 찾아내는 것. 약 10여 분간 무전과 동영상 전송 등을 시연한 뒤에, "찾았다"는 소식이 제어 센터로 전해졌다. 부상자나 어린 아이 등을 예상했던 기자의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긴 털로 뒤덮인 개 한마리가 화면을 가득 메운 것. 비를 맞으며 밖에서 고생한 맥스에게 기자와 일행은 박수를 보냈다.
< 구조된 맥스 >
시연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빠르게 구축할 수 있는 LTE 사설망을 통해 해당 지역의 소통을 복구하고, 이를 중앙 망과 연결해 원활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재난안전망 PS-LTE가 요구하는 조건에 그대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시연이 실제 상황이었고, 맥스가 아닌 어린 여자 아이가 조난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자. 아찔하지 않은가. 이처럼 통신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수십 명의 구조 요원이 손과 발로 조난 지역을 뒤져야 한다. 서로 간의 정보 교환도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시연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 먼 뉴질랜드가 아닌 국내에서도 이 같은 시연을 볼 수 있기를 말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