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의실] 머리를 써서 난관을 극복! - 어드벤처 게임
[용어로 보는 IT 2015 개정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방법이 있고, 단서를 찾아 실마리를 풀어가는 방법이 있다. 게임으로 보면 전자는 액션 게임, 후자는 어드벤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적과 치고 받는 전투보다 주어진 단서와 도구를 모두 동원해 플레이어 앞에 놓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 바로 어드벤처 게임(adventure game)의 핵심이다.
< 어드벤처 게임의 대명사, [원숭이 섬의 비밀] >
어드벤처 게임은 주어진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플레이어는 주어진 단서와 도구를 가지고 퍼즐을 풀어 난관을 돌파한다. 과거 어드벤처 게임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 플레이어의 행동을 제한한 뒤, 난관을 극복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많이 썼다.
어드벤처 게임과 RPG(롤플레잉게임)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사용자가 이야기를 자유롭게 주도할 수 있는 RPG와 달리,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일부 분기점이 나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제한을 받는다. 또한 등장 인물의 능력치를 선택적으로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분명히 다르다.
< 어드벤처와 RPG가 혼합된 게임 [젤다의 전설] >
< 어드벤처와 액션이 혼합된 [툼 레이더] >
하지만 다른 게임 장르와 마찬가지로 장르 구분이 어려운 게임들도 많다. [젤다의 전설(The Legend of Zelda)] 시리즈는 RPG에 어드벤처 게임 요소를 혼합한 게임이고,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나 [툼레이더(Tomb Raider)] 시리즈는 액션 게임에 어드벤처 게임 특징을 더했다. 때문에 이 같은 게임들은 어드벤처로 봐야 하는가 아닌가를 놓고 많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어드벤처 게임의 특징
이야기 - 어드벤처 게임에서 이야기는 필수 요소다. 사실 이야기가 그 어드벤처 게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이나 영화와도 비슷하다. 플레이어는 준비된 장소와 이야기 동선 내에서 움직이게 되고 의도한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혼자 즐기기에 적합하며, 다수가 참여하는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되기 어렵다.
이야기가 부각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장벽이 높다. 해당 게임에 사용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예를 들어, 외국어를 잘 모르는 국내 게이머가 해외 어드벤처 게임을 접하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드벤처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게임 장르가 되었다.
< [그림 판당고]와 같은 3인칭 시정의 어드벤처 게임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
< 1인칭 시점의 어드벤처 게임인 [포탈]은 퍼즐 요소에 초점을 맞춘 경우다 >
퍼즐 풀기 -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진행을 가로막는 퍼즐과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NPC(Non Player Character)가 등장할 때마다 말을 걸어 정보를 얻고, 화면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뒤져서 단서를 획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구한 물건과 단서를 이용해 퍼즐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고,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게임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일부 게임들은 퍼즐 난이도를 너무 높여 원성을 사기도 했다.
게임에 따라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있고, 퍼즐에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그림 판당고(Grim Fandanggo)]와 같은 3인칭 시점의 게임들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고, [미스트(Myst)]나 [포탈(Portal)]과 같은 1인칭 시점의 게임들은 퍼즐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모호하다. 어떻게 보면 어드벤처라는 뜻 자체가 주는 ‘모험’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다. 어떤 지역이나 공간을 탐험하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모면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이야기에 따라 액션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잠입이나 회피와 같은 특수한 환경을 만들어 행동에 제한을 주는 방식도 도입한다. 이전에는 뚜렷한 특징을 가졌던 장르였다면 이제는 세부 카테고리로 녹아 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어드벤처 게임의 역사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은 1975년 등장한 [어드벤처(Adventure)]다. 원래 이름은 ‘어드벤트(ADVENT)’인데, 이는 당시 운영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6글자까지만 입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셔널 파크에 있는 동굴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하여 동굴의 이름을 딴 ‘콜러셀 케이브(Clossal Cave)’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이 게임은 그래픽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순수한 문자만으로 구성된 게임이지만 초기 PC 사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퍼즐 요소, 판타지 배경 등은 이후 비슷한 구조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에 그대로 사용되며 장르 확립에 기여했다.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말 자체가 이 게임에서 따왔을 정도다.
<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콜러셀 케이브)] >
< 최초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 >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몇 년 뒤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으로 발전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로베르타 윌리암스(Roberta Williams)는 콜러셀 케이브에 영감을 받아 1980년 최초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인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뜻밖의 대성공을 거뒀고, 윌리암스는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라는 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윌리암스가 만든 [킹스 퀘스트(King’s Quest)]는 시에라의 대표 게임이자 최초의 3인칭 시점 어드벤처 게임이다. 시에라 온라인은 이 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폴리스 퀘스트(Police Quest)], [스페이스 퀘스트(Space Quest)], [레저 슈트 래리(Leisure Suit Larry)] 등의 게임을 잇따라 내놓으며 어드벤처 게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 시에라 온라인의 대표 게임이자 최초 3인칭 시점 어드벤처 게임 [킹스 퀘스트] >
< 루카스 아츠의 인기작 [원숭이 섬의 비밀] >
시에라 온라인과 더불어 어드벤처 게임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루카스아츠(LucasArts)는 색다른 컨셉의 게임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87년의 [매니악 맨션(Maniac Mansion)], 1990년의 [원숭이 섬의 비밀(The Secret of Monkey Island)] 등이 대표적이다. 특유의 유머가 담긴 [원숭이 섬의 비밀]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후속작들 역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998년의 [그림 판당고(Grim Fandango)]는 [스타크래프트]를 누르고 올해의 게임에 선정될 정도로 높은 게임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어드벤처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사운드 노벨’ 또는 ‘비주얼 노벨’이라고 불리는 변형 어드벤처 게임이 그것이다. [제절초], [카마이타치의 밤], [투하트(To Heart)] 등이 대표적인데, 이 게임들은 퍼즐 요소와 사용자의 개입을 극도로 제한한 대신 다양한 분기점을 통해 멀티엔딩을 제공한다.
<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어드벤처 게임 [투하트] >
< [화이트 데이]는 잘 만든 어드벤처 게임임에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한국에서도 [오성과 한음], [디어사이드], [가이스터즈] 등의 다양한 어드벤처 게임이 등장했지만 당시 일본식 RPG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화이트데이]는 사용자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지만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시대의 흐름 따라 어드벤처 게임도 변화 중
한 때 맹위를 떨쳤던 어드벤처 게임은 2000년대 들어 급격한 쇠퇴기를 맞았다. 이제 정통 어드벤처 게임이 다시 주류로 부상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온라인 게임이 주를 이루면서, 게임 플레이 패턴이 개인에서 단체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변방으로 밀려난 어드벤처 게임은 모바일 시장과 플래시 게임 시장 등에 둥지를 틀거나, 특유의 게임 진행 방식이 다른 게임 장르에 부가적 요소로 적용되는 추세다.
변화의 흐름을 잘 반영한 대표적인 게임은 [바이오해저드(Biohazard, 영문판 레지던트 이블)]다. 초창기 어드벤처 게임 요소를 대거 채택하고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잘 녹여 인기를 얻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며 액션성을 강조한 TPS 게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어진 단서와 환경 등을 활용해 난관을 극복한다는 어드벤처 게임 특유의 요소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앨런웨이크(Alan Wake)]는 한 편의 미드를 보는 듯한 스토리 위에 액션과 어드벤처 요소를 잘 버무린 수작으로 꼽힌다. 어둠에 맞서 빛을 활용한다는 제한적인 상황을 만들어 플레이어가 게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고, 다양한 단서와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액션 게임으로 분류되었어도 어드벤처 게임으로의 자질도 충분했다.
< 액션성은 강해졌지만 어드벤처 게임 특유의 장치를 유지하고 있는 [바이오해저드] 시리즈 >
< [앨런웨이크]는 어드벤처 요소를 최근 흐름에 맞춰 잘 버무린 수작 중 하나다 >
정통 어드벤처 게임은 이제 보기 힘들지만 어드벤처라는 의미가 주는 모험과 그로 인해 생기는 사건, 이를 해결해 나간다는 게임 방식은 여러 장르에서 폭넓게 채용하고 있다. 이렇게 어드벤처 게임은 다른 장르와 함께 진화하는 중이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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