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신선한 인상 뒤에 느껴지는 진한 아쉬움… 블랙베리 패스포트
[IT동아 강형석 기자] 우리나라는 아이폰을 제외하면 외산 스마트폰에게 불모지나 다름 없다. 소니, HTC, 노키아 등 나름 쟁쟁한 브랜드의 스마트폰이 국내 땅을 밟았지만, 큰 성공을 거뒀다는 얘기를 들을 수 없다. 그나마 소니가 다시 돌아와 엑스페리아 시리즈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 스마트폰 경쟁력이 뛰어난 편이고, 선택의 폭 또한 제법 다양해서 사후처리 요소를 감내하며 살 소비자가 많지 않다.
블랙베리(BlackBerry)도 국내 생태계의 혹독함을 버티지 못한 외산 스마트폰 중 하나다. 폐쇄적인 플랫폼 특성상 판매처가 한정됐던 초기와 달리, 나중에는 비교적 나아졌지만 기타 스마트폰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블랙베리는 일본과 함께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며 현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제품을 구할 수 없다.
그들도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기는 했다. 태블릿 붐이 일면서 제품을 준비하기도 했고, 신제품도 출시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유도했다. 하지만 시선을 완전히 돌리지 못하고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출시된 블랙베리 패스포트(Passport)는 독특한 생김새와 기존에도 있기는 했지만 본연의 쿼티(QWERTY) 자판을 품으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물론, 해외 구매가 아니면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구할 수 없다.
꼼꼼한 마감, 고급스러운 느낌은 충분
일단 패스포트에서 과거 블랙베리의 색채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상단에 각인된 로고와 쿼티 자판 뿐이다. 과거 둥글둥글했던 외모는 직선이 살아 있는 강렬한 라인으로 바뀌었고, 수줍게 느껴졌던 작은 디스플레이는 1:1 비율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탈바꿈했다. 완전 새로운 인상으로 '이게 정말 블랙베리 맞나?' 싶을 정도의 페이스 오프다.
패스포트라는 이름처럼 여권과 흡사한 크기와 형태가 인상적이다. 남성 반지갑과 비슷한 크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 특히 사무직에게 더 어울리는 제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성이 써도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질 듯 하다.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은 다소 부담스럽다. 가로 크기가 제법 긴 편이라 더 그렇다. 가로 90.3mm, 세로 128mm에 달하고 쿼티 자판 때문에 양손조작이 자연스럽다. 두께는 9.3mm로 무난하다.
자판은 블랙베리의 핵심. 손으로 만져보니 특유의 감촉은 그대로다. 조금 이상한 배열이지만 조금만 적응하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다. 숫자나 기타 특수 문자를 입력하기 위한 키는 없다. 이를 대신하기 위해 화면 위로 문자와 숫자를 입력하도록 띄워주니 당황하지 말자. 키패드 자체는 터치패드의 역할도 겸한다. 처음 만져보면 신기하지만 나중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후면도 단순하다. 카메라가 있고 블랙베리 로고만 정갈하게 배치됐다. 질감은 우레탄 느낌으로 마감되어 있는데, 장시간 사용하면 오염이나 흠집에 취약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별도의 보호 케이스를 쓰는 방법을 추천한다.
카메라는 1,300만 화소 사양이다. 풀HD(1,920 x 1,080) 해상도 영상 촬영을 지원한다. 다시 소개하겠지만 1:1이나 16:9 등 다양한 비율로 촬영 가능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손떨림 방지 기능도 탑재, 제법 갖출건 다 갖췄다는 인상을 준다. 전면은 200만 화소 카메라를 달았다.
배터리는 일체형이기 때문에 후면 패널 자체가 열리지 않고, 통신 카드(USIM)와 마이크로 마이크로SD 카드 슬롯을 탑재하기 위한 자리만 존재한다.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3,450mAH 용량의 배터리로 아쉬움을 달랜다.
게임을 배제한 상태에서 구동하면 제법 오랜 시간 사용 가능하다. 외부 통화가 잦은 기자로서는 놀라운 부분이다. 충전이 완료된 상태에서 퇴근할 때 즈음 휴대폰을 보면 항상 40% 이상 배터리 잔량이 남아 있었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메신저도 하고 인터넷 검색 하면서, 인터넷 실시간 음악까지 듣는데 이 정도라면 제법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실행은 시켜 드릴게~' 절름발이 안드로이드 어플 호환
과거 블랙베리는 '블랙베리 월드(Blackberry World)'라는 앱 스토어를 통해 필요한 앱을 내려 받아 설치하도록 지원한다. 그런데 '멸종'이라고 부르는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생태계가 처참하다. 블랙베리 패스포트에는 기존 블랙베리 월드 외에도 아마존 앱스토어를 통해 필요한 앱을 내려 받는다.
과연 무엇이 있을까 봤는데,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쓸만한 무료 앱은 보기 어렵고, 괜찮다 싶으면 비용 지불하고 구매해야 한다. 당연한 이치이긴 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게 맞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앱을 덥석 구매할 수도 없다. 일부는 체험판 비슷한 라이트(LITE) 버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제법 보인다.
아마존 앱스토어라고 사정이 좋은건 아니다. 블랙베리 월드 보다는 조금 낫지만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와 비교하면 눈가에 습기가 차는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 블랙베리 패스포트에는 편법이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소프트웨어 설치를 지원한다. 플레이 스토어도 설치 가능하다. 다소 복잡하지만 편법으로라도 지원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부분이다. 물론, 100% 지원은 꿈 같은 얘기다. 일부 인터넷 은행 관련 앱은 실행조차 안되고, 대다수 카카오 게임은 연동이 되지 않는다(편법으로 된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지원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블랙베리의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실행은 절름발이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메신저 서비스는 그나마 잘 되니까 다행이다.
반응 속도나 애플리케이션 실행은 자연스럽다. 과거의 블랙베리와 달리 제법 탄탄한 성능을 품었기 때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 스냅드래곤 801이고 메모리로 3GB를 담았다. 저장공간은 기본 32GB로 마이크로SD를 통해 최대 128GB까지 확장 가능하다. 어지간한 고사양 스마트폰과 비교해도 아쉬울게 없다.
그래서인지 호환성 자체에 문제가 없다면 느려지는 현상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 성능을 경험할 기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분이겠다. 다시 앱 생태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가로, 세로 1,440 픽셀의 화면은 신선함을 준다. 시인성도 좋고 가독성 또한 나쁘지 않다. QHD(2,560 x 1,440) 해상도의 화면을 잘라, 1:1 비율 화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단, 문자를 입력할 때 특수문자 입력을 위한 창이 일부를 가린다는 점은 아쉽다.
메일을 보내거나 메신저를 쓸 때에는 아쉬움이 없지만 영상이나 사진을 감상하는 경우에 아쉬움이 남는다. 상하로 화면이 잘려 나가기 때문이다. 제품의 성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해도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불편 감수하고 새로운 스마트폰 찾는다면 말리진 않으리~
그 동안 블랙베리는 '예쁜 쓰레기'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겉모습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만, 기능이나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에서다. 한 때 탄탄한 보안 덕에 기업 시장에서 승승장구 했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상향평준화 되어 있기 때문에 블랙베리 자체에 대한 수요는 줄어든 상태. 그래서 변화를 통해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모습이 감지된다.
패스포트 역시 좋아지긴 했어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력으로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않는 고집쟁이를 보는 듯 하다.
불편을 감수하고 디자인이나 사양이 획일적인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블랙베리 패스포트는 제법 높은 만족감을 준다. 반면,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빈도가 높고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다른 스마트폰을 찾는게 더 현명할 것이다.
글 / IT동아 강형석(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