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음 노트북의 '르네상스'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애플, 삼성전자, HP, 레노버 등 내로라하는 노트북 제조사들이 고사양 '무소음 노트북(Fanless notebook)'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무소음 노트북이란 프로세서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방열팬을 제거해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제품이다. 도서관, 연구실 등 정숙해야 하는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바야흐로 무소음 노트북의 '르네상스'다.

무소음 노트북
무소음 노트북

무소음 노트북, 코어M 프로세서 품고 1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르네상스란 중세 기독교 문화 때문에 묻혀져 있던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14~16세기의 서유럽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무소음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일반 노트북에 가려 10년 동안 사람에게 잊혀져 있었다가 부활했다. 왜 그런걸까. 과거 무소음 노트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무소음 노트북은 방열 효율이 매우 떨어져 오래 사용하면 프로세서 성능이 급격히 저하됐다. 도저히 노트북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정숙함에 열광해 무소음 노트북을 구매한 사용자들은 이내 실망했다. 그렇게 무소음 노트북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랬던 팬리스 노트북이 저전력/저발열 프로세서 '인텔 아톰'이 출시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아톰은 적어도 저발열이라는 점 하나만큼은 확실히 지켰다. 방열팬이 없어도 성능 저하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아톰을 활용한 팬리스 노트북이 시장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기조는 현재 윈도8 태블릿PC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톰은 어디까지나 아톰이다. 고성능 프로세서인 '인텔 코어 시리즈'에 비해 성능이 많이 부족했다. 웹 서핑이나 문서 작성 등은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지만, 포토샵이나 동영상 인코딩처럼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작업은 힘에 부쳤다. 고급 노트북에 탑재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성능이다.

팬리스의 정숙함과 코어 시리즈의 높은 성능. 둘을 동시에 갖춘 노트북은 없을까. 예전에는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지만, 지속적인 프로세서 생산 공정 개선으로 발열이 줄어든 덕분에 이제는 가능하다. 4세대 인텔 코어 i 프로세서 '하스웰'부터 저전력/저발열 모델인 Y 시리즈가 추가됐기 때문. Y 시리즈는 팬리스 노트북과 고사양 윈도8 태블릿PC를 목표로 설계된 프로세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Y 시리즈는 분명 팬리스를 목표로 설계된 제품이지만, 정작 Y 시리즈가 탑재된 제품 가운데 팬리스 노트북은 극히 드물었다. 방열팬을 탑재한 일반 노트북이 대부분이었다. 팬리스 노트북을 제작하려면 열을 본체에 골고루 전달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본체가 방열판의 역할을 하는 셈. 때문에 설계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회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제조사 입장에서도 할말은 있다. Y 시리즈가 애당초 팬리스 노트북에 어울리는 모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하스웰 Y 시리즈는 11.5 와트(W)의 전력을 소모한다(TDP 기준). 3~5W 정도의 전력을 요구하는 아톰에 비해 2배 이상 전력 소모가 많은 것. 아톰을 탑재한 팬리스 노트북과 태블릿PC도 ARM 프로세서보다 발열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하물며 하스웰 Y 시리즈는 어떻겠는가. 방열팬을 아예 제거하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라는 설명이다.

Y 시리즈에 대한 제조사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며 인텔은 절치부심했다. 22나노에서 14나노로 생산 공정을 개선하고 설계를 최적화해, 4.5W의 전력만 소모하는 '코어 M 프로세서'를 지난해 하반기 시장에 공개했다(TDP 기준). 고성능 프로세서인 코어 시리즈이면서 전력 소모와 발열이 아톰이나 고성능 ARM 프로세서와 비슷한 프로세서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5세대 인텔 코어 i 프로세서 '브로드웰'에는 M(일반 노트북용 프로세서), U(저전력 프로세서, 울트라북용) 시리즈만 존재하고 Y 시리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Y 시리즈를 코어 M 프로세서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맥북, 노트북9 2015 Edition, 엘리트북 폴리오 1020, 씽크패드 헬릭스 등 현재 시중에 출시된 고사양 무소음 노트북은 모두 코어 M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다.

코어 M 프로세서
코어 M 프로세서
<인텔 코어 M 프로세서의 구조>

무소음 노트북의 명과 암

무소음 노트북은 일반 노트북과 비교해 어떤 장점을 갖추고 있는 걸까. 가장 큰 장점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트북의 소음 대부분이 방열팬에서 발생한다(평균 40~60dB). 무소음 노트북은 방열팬이 없으니 당연히 소음도 없다. 과거 무소음 노트북은 하드 드라이브(보조저장장치)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남아있었으나, 최근 무소음 노트북은 하드 드라이브를 SSD로 교체해 미세한 소음마저 제거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숙해야 하는 공간에서 마음껏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배터리 사용시간도 매우 길다. 무소음 노트북은 어지간한 태블릿PC 못지 않은 배터리 사용시간을 보여준다. 코어 M 프로세서의 최대 전력 소모량이 다른 노트북용 프로세서의 30% 수준이니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칩셋의 다이 사이즈(프로세서의 크기)가 매우 작아 남는 공간을 모두 배터리로 채울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한다. 코어 M 프로세서의 다이 사이즈는 30mm x 16.5mm에 불과하다. 일반 노트북용 프로세서보다 훨씬 작고, 모바일 프로세서보다 조금 큰 정도다(참고: 노트북용 프로세서 다이 사이즈 40mm x 24mm, 모바일 프로세서 다이 사이즈 17mm x 17mm). 덕분에 노트북 제조사는 노트북 메인 보드의 크기를 태블릿PC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고, 남은 공간을 모두 배터리로 채워 배터리 사용시간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었다.

애플 맥북의 구조
애플 맥북의 구조
<애플 맥북의 구조, 로직보드가 차지하는 공간이 전체의 20% 수준이다. 나머지 공간은 배터리의 몫이다>

삼성 노트북9 2015 에디션의 구조
삼성 노트북9 2015 에디션의 구조

<삼성 노트북9 2015 Edition을 분해한 모습, 메인보드가 전체 공간의 1/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배터리가 차지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가 노트북 본연의 목적이란 점을 감안하면, 무소음 노트북은 일반 노트북보다 본연의 목적에 더욱 충실한 제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소음 노트북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하나 남아 있다. 바로 '스로틀링(Throttling)'이다. 스로틀링이란 발열 때문에 프로세서나 그래픽 프로세서의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과거 팬리스 노트북이 사용자에게 외면 받은 이유도 너무 심한 스로틀링 현상 때문이다. 프로세서에서 발생하는 열이 너무 심하게 발생했고, 이러한 열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성능이 급격히 저하됐다.

코어 M 프로세서는 한계 온도(T junction, 프로세서가 정상 작동하는 최대 온도)가 95도에 불과하다. 한계 온도가 100도를 넘는 다른 프로세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만큼 발열이 적고, 스로틀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스로틀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비하면 스로틀링이 발생하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제품을 오래 사용하다보면 결국 프로세서의 성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같은 프로세서를 채택했다 하더라도 노트북 제조사가 얼마나 방열 설계를 잘했는지에 따라 스로틀링 발생 시점이 달라진다. 스로틀링을 극복하기 위한 인텔과 노트북 제조사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표적인 무소음 노트북은?

이제 시중에 출시된 무소음 노트북 모델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화제가 된 무소음 노트북은 '애플 맥북'이다. 3월 초 공개된 이래 차세대 노트북으로 각광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플래그십(최고급 제품) '삼성 노트북9 2015 Edition'도 주목할 만한 제품이다. HP와 레노버 역시 '엘리트북 폴리오 1020'과 '씽크패드 헬릭스'라는 특화형 무소음 노트북을 출시했다.

맥북은 애플의 새로운 12인치 노트북이다. 메인보드의 크기를 최소화하고, 남은 자리를 배터리로 채워 배터리 사용시간을 극대화했다. 단자를 모두 USB C타입으로 합친다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OS X을 탑재한 휴대용 노트북을 원한다면 맥북이 정답이다. 4월 초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참고: 12인치 맥북 발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꿨다" http://it.donga.com/20581/, 맥북도 'USB 3.1 C 타입'으로 대동단결! http://it.donga.com/20595/)

삼성 노트북9 2015 Edition은 삼성전자의 최고급 휴대용 노트북이다. 화면 크기와 무게 등이 맥북과 대동소이하지만, 확장 단자 구성은 맥북보다 더 여유로운 것이 특징. 윈도 노트북을 원하는 일반 사용자에겐 이쪽이 더 편리할 것이다. 2월 중반부터 정식 판매를 개시했다. (참고: [리뷰] 무소음으로 돌아오다, 삼성 노트북 9 2015 에디션 http://it.donga.com/20464/)

HP 엘리트북 폴리오 1020은 비즈니스에 특화된 12.5인치 노트북이다. 1kg에 불과한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충격에 강하며, 강력한 보안기능을 탑재했다. 도킹 스테이션, 모니터 스탠드 등 다양한 주변기기를 제공해 업무 활용도를 더욱 높혔다. 지난 26일 정식 출시됐다. (참고: HP, 신세대 직장인에게는 새로운 모바일 기기가 필요하다 http://it.donga.com/20732/)

레노버 씽크패드 헬릭스는 키보드를 분리해 태블릿PC로도 사용할 수 있는 2-in-1 노트북이다. 11.6인치의 화면 크기, 800g의 무게, 9.6mm에 불과한 본체 두께 등을 갖췄다. 3월 초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참고: 브로드웰 탑재한 2-in-1 PC, 씽크패드 헬릭스 2세대 출시 http://it.donga.com/20450/)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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