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에서 서비스로, 어도비의 변신 그 허와 실
[IT동아 강일용 기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프트웨어(SW) 기업 어도비가 변하고 있다. SW 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포토샵, 아크로뱃 등 SW 패키지를 판매하던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 창작자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서비스와 기업을 위한 '마케팅 클라우드' 서비스 위주로 회사를 재편했다.
어도비 샨타누 나라옌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에 와서 기자들 앞에 섰다. 어도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들려주기 위해서다.
창작자를 위해 새로 태어난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나라옌 CEO는 어도비는 가장 앞서 나가는 서비스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한글과컴퓨터(한컴) 등 다른 SW 기업 역시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어도비만큼 빠른 속도로 바뀌진 못하고 있다. MS 오피스나 한컴 오피스의 사례를 보자. 구독형(서브스크립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오피스365) 제공할 예정이지만(넷피스), 패키지 판매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반면 어도비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아크로뱃 등 자사 SW의 최신 버전을 오직 구독형 클라우드 서비스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CC)'로만 판매하고 있다. 패키지 판매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깜짝 놀랄 정도로 과감한 결정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2014년 말까지 CC 개인 구독자수는 350만 명에 달한다. 주요 고객인 기업은 제외한 수치다. CC 구독자 가운데 20%는 기존 구독자가 아닌 신규 구독자다. 게다가 1,000만 명에 달하는 창작자가 어도비CC를 활용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CC로 전환하고 전체 이익은 패키지 판매를 진행할 때보다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어도비의 비즈니스 모델은 견고하다. 창작자나 기업이 한 번에 큰 돈을 내지 않고 조금씩 오랫동안 구독비를 내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구독형 모델이 어도비에게 훨씬 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ARR(유통수익매출)도 증가했다. 나라옌 CEO는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기업이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는 네 가지 모델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데스크톱 앱이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아크로뱃, 애프터이펙트 등 이미지/동영상 편집 업계를 정복한, 그래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바로 그 도구들이다. 윈도 또는 OS X에서 실행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모바일 앱이다. 데스크톱 앱에서 만든 결과물을 확인하고, 간단히 편집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iOS 등 여러 모바일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지금까지 모바일 앱은 데스크톱 앱에 함께 제공하는 '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기능이 데스크톱 앱보다 많이 부족했기 때문. 이제 달라진다. 나라옌 CEO는 "어도비는 차세대 창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태블릿PC에 주목하고 있다"며, "어도비가 태블릿PC에 최적화된 생산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태블릿PC는 소비적인 기기가 아닌 생산적인 기기로 새롭게 탄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블릿PC에서도 데스크톱과 대등한 창작활동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도비는 MS와 협력해 터치스크린과 전자펜에 최적화된 사용자 환경을 개발하고 있다.
세 번째는 애셋(예제 장터)이다. 창작자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사고 팔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도비는 지난해 12월 사진 판매 서비스인 '포토리아'를 인수했다. 포토리아 역시 CC에 포함될 예정이다. 네 번째는 소셜이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다른 창작자와 공유하고 서로의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어도비는 이미지 공유 서비스 '비핸스'를 통해 이를 실현해나가고 있다.
나라옌 CEO는 "어도비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술과 과학(기술)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며, "어도비는 세상 모든 디지털 콘텐츠에 관여하고 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뉴스, 모바일 앱 등 모든 분야에 어도비 CC가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케터에게 통찰력을, 마케팅 클라우드
사용자에게 '어도비는 어떤 회사?'라고 물어보면 포토샵과 PDF(CC)를 떠올린다. 이제 달라질 전망이다. 어도비 마케팅 클라우드(MC)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에 의존해야 했던 마케팅 캠페인을 정량화하고 시각화한 다음 이를 분석해 마케팅 담당자에게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Insight)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인 서비스다. 이를 활용해 마케터는 캠패인 생성, 진행, 관리, ROI(투자자본수익률) 측정 등을 차례대로 진행할 수 있다. MC는 캠페인 분석, 캠페인 관리, 경험 관리, 미디어 최적화, 소셜 분석, 목표 분석 등 다섯 가지 통찰력을 마케터에게 제공한다.
나라옌 CEO는 "마케팅 분석은 유효 시장만 200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MC는 CC의 뒤를 잇는 어도비의 새로운 먹거리다"고 밝혔다. 어도비는 MC에서 10억 달러가 조금 넘는 매출을 거뒀다. 전체 매출에서 CC의 비중은 65%, MC의 비중은 35%다.
나라옌 CEO는 "한국은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는 국가이며, 어도비에게도 MC의 입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국가"라며, "전자, 항공 등 유수의 한국 기업과 파트너를 맺어 MC를 보급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나라옌
최고경영자가 한국 시장을 더욱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비스 기업 어도비가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문제
어도비의 변화는 성공적이지만, 아직 두 가지 약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여전한 플랫폼 종속'이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이 '탈 플랫폼'이다. 어떤 기기와 운영체제에도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MS나 한컴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비록 전환은 느리지만) 탈 윈도와 탈 PC라는 점만은 확실히 지키고 있다. 어떤 운영체제를 사용하더라도(심지어 모바일 기기라도), 웹 브라우저를 실행해 해당 서비스에 접속하면 동일한 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CC는 여전히 특정 운영체제에 종속되어 있다. 모바일 앱을 통해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지만, 데스크톱 앱만한 경험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름만 클라우드 서비스고, 실제로는 요금제만 조금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두 번째는 보안이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핵심은 보안이다. 개인에게도 중요하지만, 기업에게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기업의 영업 비밀이 유출되면 그 손해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없다. 지난 2013년 여름 어도비는 서버가 해킹 당해 38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최악의 보안사고를 일으켰다. 기업이 자사의 마케팅 데이터를 믿고 맡기기엔 너무나도 큰 실책이다.
물론 어도비도 두 가지 약점을 파악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먼저 탈 플랫폼 계획부터 들어보자. 나라옌 CEO는 "CC는 처리해야 하는 파일의 용량이 크고, 처리 과정에서 PC의 퍼포먼스를 많이 요구한다. 때문에 타 클라우드 서비스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컴퓨팅 자원 임대와 화면 스트리밍(둘 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기법이다)이 그 답이 될 것이다. 어도비는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고 '프로젝트 포토샵 스트리밍'을 진행하고 있다. 저사양 크롬북에서도 포토샵을 실행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일반 PC에서 포토샵을 실행한 후 해당 화면을 크롬북으로 실시간으로 송출해 크롬북에서도 윈도 운영체제와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누릴 수 있다(퍼스널 클라우드). 지금은 시작 단계이지만,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저사양 PC나 모바일 기기에서도 PC나 맥과 동일하게 작업을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포토샵 스트리밍 서비스의 진행상황을 들려줬다. 또한 엔비디아와 제휴해 그래픽 프로세서의 성능이 떨어지는 PC와 모바일 기기에 GPU 프로세싱 파워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어도비 마크 가렛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어도비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전세계 개인정보보호 기준을 충족하고 있고, 표준 준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보안 강화를 위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다. 설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명쾌한 처리과정도 구축했다. 이제 보안이 어도비의 핵심 역량이다"며, "모든 데이터는 어도비의 소유가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소유다. AWS와 어도비의 자체 IDC를 통해 안전한 클라우드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