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구가 정말 불법? 전파법 개정안의 진실

이상우 lswoo@itdonga.com

전파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오는 12월 4일부터 새로운 제도가 적용된다. 이번 개정안에는 '제58조 2의 10항: 누구든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은 방송통신기자재 판매를 중개하거나 구매 대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 신설 규정을 두고 말이 많다. '해외 직구를 차단해 화웨이, 샤오미 등의 중국발 저가 공세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개정안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이며, 앞으로 우리 삶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질지 살펴보자.

*제58조 2의 10항: 누구든지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아니한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판매를 중개('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통신판매중개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버몰의 이용만 허락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이하 같다)하거나 구매 대행 또는 수입 대행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은 제품이란?

제58조 2의 10항의 '적합성 평가'라는 말이 바로 전파인증이다. 전파인증은 국내 판매를 원하는 방송통신 관련기기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 평가로, 기기 간의 전파 혼선을 막고 과다 전자파 노출 피해를 줄이기 위한 규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는 물론, 전화기, 팩스, 컴퓨터, TV, 모니터, MP3 플레이어 등 전파를 이용하는 기기라면 모두 다 받아야 한다. 해외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 역시 관련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전파인증을 거치고 있다.

전파인증 마크
전파인증 마크

<전파인증 마크와 인증 번호>

실제로 국내에 정식 출시(혹은 출시 예정)되는 방송통신 관련 기기는 국내에서 만들었든 해외에서 만들었든 모두 예외 없이 전파인증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얼마전 베를린에서 선보인 갤럭시노트4나 갤럭시VR 등은 이미 전파인증을 마친 상태이며, 이밖에 소니, 에이서 등이 선보인 스마트폰도 모두 전파인증을 거쳤다.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스마트폰 '아너 6'도 9월 11일 전파인증을 통과하며 국내 진출이 알려졌다.

해외 직구 불가능? '구매/수입 대행'만 제재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 때문에 정말 해외 직구가 막히는 걸까? 일단 미인증 기기의 구매/수입 대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용어를 명확히 해야 한다. 보통 해외 직구라는 용어를 구매 대행과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둘은 전혀 다르다. 해외 직구는 사용자 본인이 해외 온라인 쇼핑몰이나 여행 등을 통해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뜻하며, 구매 대행은 대행업자가 먼저 주문을 받은 후 해당 물건을 구매하여 사용자에게 재판매하는 형식을 의미한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불가능해지는 것은 미인증 기기의 '구매 대행'이다. 개인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해외 쇼핑몰 등에서 기기 1대를 구매하는 '해외 직구'는 여전히 가능하다(모델 당 1대. 다시 말해 해외 직구로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폰5s를 각각 구매하는 것은 허용). 사실 과거에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미인증 기기를 반입하는 것 자체가 모두 전파법 위반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빡빡한 규제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용자가 늘어나자, 지난 2011년부터 구매자가 직접 사용하기 위해 반입하는 기기 1대에 한해 전파인증을 면제해주기 시작했다.

전파인증 면제 항목
전파인증 면제 항목

하지만 면제 규정이 생겨나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함께 등장했다. 외산 스마트폰을 대신 구매해주고 일정 수수료를 챙기는, 이른바 '구매 대행'이다. 어차피 개인 구매자는 전파인증을 거칠 필요가 없으니, 대행업자들은 구매자의 명의를 빌려 제품을 국내 반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구매 대행의 규모가 커지자, 미인증 기기를 국내에 대량 유통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됐다. 엄연히 전파법 위반이다.

이번 개정안은 영리를 목적으로 미인증 기기를 사실상 유통하는 대행업자를 제재하기 위함이며, 일반 소비자나 해외 제조사와는 무관하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모호했던 처벌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제58조 2의 10항의 예외규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예외규정에는 '통신판매중개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버몰의 이용만 허락하는 경우는 제외한다'고 적혀있다. 이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단순히 연결해주는 중개 사이트, 다시 말해 네이버 카페나 11번가 등의 오픈마켓은 처벌 대상이 아니란 뜻이다. 만약 네이버 카페나 11번가에서 전파법 위반이 적발되면 해당 장소를 통해 미인증 기기를 판매한 실제 판매자만 처벌 받게 된다.

실제로 달라지는 점은?

사용자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무엇이 달라질까? 일단 개인이 직접 해외 사이트에 접속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판매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제품 1개는 전파인증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모델 당 1개뿐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 사용자가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불법일까? 당연히 아니다. 사용자는 아마존닷컴에 접속해 특정 제품 1개를 전파인증 없이 구매할 수 있다. 다만 아마존닷컴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국내 배송을 지원하는 경우와 지원하지 않는 경우로 나눠지니 구매에 앞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구매 대행 사이트 '익스펜시스'는 불법일까? 이 역시 아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익스펜시스는 구매 대행이 아니다. 먼저 물건을 자신들의 창고에 들여 놓은 후 이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더 가깝다. 아마존닷컴과 마찬가지로 특정 제품 1개만 구매 가능하다.

카페나 블로그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미인증 기기 공동 구매는 엄연한 불법이다. 이 경우 공동 구매를 주도한 사람이 처벌 대상이다. 특정 제품이 전파인증을 받은 것인지 여부는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http://rra.go.kr/board/device/search.jsp)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개정안으로 일반 소비자의 국내 미출시 제품 구매가 조금은 번거로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구매 대행업자가 해주던 일을 자신이 직접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편의와 일부 대행업자의 이윤추구 탓에 국내 전파 환경이 혼탁해지는 것은 분명 곤란한 일이다.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현명한 소비자라고 할 수 있겠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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