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나만의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
지난 1월 구글이 자회사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레노버에게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모토로라의 모든 것을 매각하진 않았다. 모토로라의 통신 특허와 모토로라 R&D팀이 진행하던 '프로젝트 아라(Project Ara)'는 여전히 구글 소유로 남겨뒀다.
프로젝트 아라가 대체 뭐길래 특허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걸까. 프로젝트 아라는 쉽게 말해 조립식 스마트폰이다. 조립식 PC를 예로 들어보자. 제품을 구매하기 앞서 마음에 드는 사양을 정하고, 이에 맞춰 프로세서, 그래픽 프로세서, 메모리, 저장장치, 메인보드, 파워, 케이스 등 PC 부품을 구해 사용자가 직접 조립한다. 조립식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디스플레이 패널, 모바일 프로세서, 통신칩셋, PCB 보드, 카메라 등 스마트폰 부품을 구한 후 직접 조립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용자가 직접 제품을 조립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규격화다. 각각의 부품을 중구난방으로 생산하지 않고 일정한 규격(표준)에 맞춰 생산해야 한다. PC시장의 경우 이러한 규격화를 이뤄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타이르 8800'이 시장에 등장한 이후 제조사들은 자기만의 방식과 형태로 컴퓨터를 생산했다. 하지만 지난 1981년 IBM이 'IBM 호환 PC'라는 규격을 발표하고 이를 오픈 플랫폼으로 공개하자, 여러 제조사가 이를 기초로 PC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파급력은 매우 컸다. 30년이 지난 지금 PC시장은 IBM 호환 PC로 통일됐고, 자기만의 방식과 형태로 컴퓨터를 생산하는 기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아라의 목표가 바로 '스마트폰 업계의 IBM 호환 PC'다. 스마트폰 부품을 규격화해 사용자가 자신의 원하는 성능과 형태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조립식 스마트폰이라는 콘셉트를 제외하고, 프로젝트 아라는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구글이 프로젝트 아라 개발자 컨퍼런스를 4월 15~16일(현지시각) 개최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체적인 정보가 드러났다. 구글의 야심작, 프로젝트 아라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풀어본다.
크기는 3가지
일단 프로젝트 아라를 통해 제작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크기부터 알아보자. 프로젝트 아라는 대형(Large), 중형(Medium), 소형(Mini) 등 3가지 폼팩터로 나눠진다. 대형은 '세로 150mm 가로 90mm'다. 갤럭시노트2와 유사한 크기다. 패블릿을 원하는 사용자에게 적합하다. 중형은 '세로 137mm 가로 68mm'다. 갤럭시S4나 G2와 유사하다. 대형 스마트폰을 원하는 사용자가 목표다. 소형은 '세로 114mm 가로 45mm'다. 아이폰5보다 세로로 약간 더 길다. 소형 스마트폰을 위한 규격이다.
전면과 후면 그리고 뼈대, 레고 조립하듯 척척
프로젝트 아라는 '엔도 스켈레톤(Endo Skeleton)', '전면 모듈(Front modules)', '후면 모듈(Rear modules)' 등 크게 3가지 모듈로 구성된다.
엔도 스켈레톤은 이름 그대로 뼈대의 역할을 한다. 금속으로 제작돼 견고한 이 부품은 다른 모듈이 제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동시에, 모듈과 모듈을 연결해준다. PC로 치면 메인보드(마더보드)다.
엔도 스켈레톤은 하나의 척추(Spine)와 여러 개의 뼈대(Ribs)로 구성된다. 사용자는 이 척추와 뼈대 사이에 전면 모듈과 후면 모듈을 넣으면 된다. 전면 모듈과 후면 모듈의 크기는 정확히 규격화돼 있어 레고 조립하듯이 스마트폰을 완성할 수 있다.
전면 모듈은 2가지로 구성돼 있다. '디스플레이 모듈'과 마이크, 스피커, 조도 센서 등을 합쳐 놓은 '입력 모듈'이다. PC로 치면 모니터, 스피커 등 출력장치와 마우스, 키보드 등 입력장치다. 디스플레이 모듈은 화면과 측면의 전원 버튼, 음량 조절 버튼으로 구성돼 있다. 디스플레이 모듈의 크기는 제품 전체 크기의 영향을 받는다.대형의 경우 최대 5.5인치, 중형의 경우 최대 5인치, 소형의 경우 최대 4인치 화면 크기의 디스플레이 모듈을 탑재할 수 있다.
후면 모듈이 바로 프로젝트 아라의 핵심이다. 후면 모듈은 종류도 다양하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AP(프로세서), 메모리, 통신칩셋, 카메라, 배터리, 센서 등을 품고 있다. PC로 치면 본체다. 이 부품을 조합해 나만의 스마트폰을 제작할 수 있다.
후면 모듈은 3가지 형태로 제공된다. 정사각형인 '1x1(1) 모듈'과 '2x2(4) 모듈', 직사각형인 '2x1(2) 모듈'이다. 프로젝트 아라에 참여하고 싶은 제작사는 이 크기와 규격대로 부품을 생산하면 된다. 대형은 7x4(28)만큼, 중형은 6x3(18)만큼, 소형은 5x2(10)만큼 후면 모듈 슬롯을 제공한다.
규격화로 얻는 장점
구글은 왜 프로젝트 아라를 통해 스마트폰 규격화를 이루려는 걸까. 이유는 조립식 PC와 같다. 사용자의 제품 선택 폭을 넓히고, 높아진 스마트폰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춰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사용자가 얻는 혜택
스마트폰은 제품을 구매할 때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제조사가 지정해준 크기, 형태, 성능대로 구매해야 한다. 프로세서의 성능이 낮은
제품은 저가형이라는 명목하에 디스플레이와 카메라의 성능도 덩달아 낮아졌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는 최고급을 원하지만
카메라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가 최고급 스마트폰을 구매할 경우 잘 쓰지도 않는 카메라를 비싼 돈 주고 사야 했다.
이처럼 제조사 위주로 돌아가는 스마트폰 시장의 문제 가운데 일부를 프로젝트 아라가 해결할 수 있다. 사용자는 각 부품을 원하는 대로 고른 후 제품을 조립하면 된다. 때문에 지금은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제품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익성 문제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쿼티 스마트폰이다. 전면 모듈에서 디스플레이 모듈의 크기를 줄이고, 그 자리에 쿼티 키보드를 갖춘 입력 모듈을 넣으면 쿼티 스마트폰이 된다. 5.5인치 크기에 쿼티 키보드를 갖췄고, 카메라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배터리 모듈을 꽉 채운 극단적인 형태의 스마트폰도 만들 수 있다. 이는 프로젝트 아라를 통해 조합할 수 있는 수많은 스마트폰 형태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획일화되고 있는 기존 스마트폰 시장에서 벗어나, 소수의 취향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댜앙한 형태의 스마트폰을 보급하려는 게 프로젝트 아라의 첫 번째 목적이다.
*프로젝트 아라로 제작할 수 있는 독특한 스마트폰의 예시
1. 풍족한 배터리
프로젝트 아라를 통해 어떤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을까? 부족한 상상력으로 3가지 예시를 들어본다. 가장 대표적인 활용법은 후면 모듈에
배터리를 꽉꽉 채우는 것이다. AP(모바일 프로세서)와 통신칩셋 등 스마트폰에 꼭 필요한 부분만 추가하고 카메라, 센서 등 꼭 필요없는
모듈은 제거한다. 그리고 남은 부분에 배터리 모듈을 채우면 긴 배터리 사용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가장 큰 불만점인 배터리
사용시간을 해결할 수 있는 나만의 스마트폰이다.
2. 듀얼 카메라
카메라 모듈을 2개 장착하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3D 촬영이다. 사진 2개를 조합해 3D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LG전자와 HTC에서 3D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생산한 적이 잠깐 있었지만, 다수가 원하는 제품은 아니기에 금방 단종된 바 있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엔 3D 촬영 기능을 원하는 '소수'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3. 센서 특화
후면에는 AP, 통신칩셋, 배터리뿐만 아니라 '생체인식 센서'까지 모듈로 추가할 수 있다. 지문인식, 홍채인식, 심박계, GPS(글로나스
포함), 기압계 등 다양한 센서를 모듈의 형태로 추가할 수 있다. 사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센서만 고르면 된다. 강력한 보안을 원하면
지문인식이나 홍채인식을, 피트니스 기능을 원하면 심박계와 GPS를, 여행을 자주 떠나는 사용자는 GPS와 기압계를 고르면 된다.
성능 업그레이드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스마트폰은 출시되고 1~2년만 지나면 구형으로 전락한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하려 해도 스마트폰 완제품 가격이 비싸 부담되고, 멀쩡한 카메라와 배터리를 버리자니 아깝다. 이때 프로젝트 아라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AP만 교체하면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교체 비용도 완제품을 구매할 때보다 훨씬 저렴하다.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 다른 부품도 저렴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기업에게 줄 수 있는 이점
또, 프로젝트 아라는 애플, 삼성전자 등 글로벌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스마트폰 시장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AP,
센서, 배터리 등 특정 분야의 기술만 보유한 기업이 스마트폰 시장에 참여하려면 기존에는 글로벌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거나, 나머지 부품을
비싼 돈 주고 구매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전자는 초거대기업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약점이 있고, 후자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프로젝트 아라가 활성화될 경우 중소기업은 자신이 생산할 수 있는 부품만 모듈 형태로 제작해 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무리해서 하청을 따거나, 다른 부품 수급을 위해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제조사가 참여 중인 조립식 PC 시장을 생각하면 쉽다.
그렇다면 구글은 누가 프로젝트 아라에 참여하길 원하는 걸까. 특정 분야에선 시장을 선도할만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벽에 가로막혀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제작사들이다. 카메라의 예를 들어보자. 니콘, 캐논 등 카메라 시장의 강자들은 렌즈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기술이 없어 카메라 특화 스마트폰을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젝트 아라를 통하면 특화된 카메라 모듈을 제작함으로써 스마트폰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AP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인텔, 엔비디아 등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비주류 모바일 프로세서 제작사들이 프로젝트 아라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구글이 구글플러스 공식 계정을 통해 공개한 이미지 역시 이러한 구글의 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드로이드를 강제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하드웨어만이 전부가 아니다. 운영체제(소프트웨어)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젝트 아라에 어울리는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프로젝트 아라를 주관하는 구글 자신이 제작하는 운영체제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아라 구매자를 위해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조립식 스마트폰 속에 심을 수 있는 크롬 웹앱도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조립식 PC를 구매할 때 윈도 설치를 강제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용자는 조립식 PC에 리눅스 등 다른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다. 프로젝트 아라도 마찬가지다. 우분투 모바일, 파이어폭스OS 등 시중의 여러 모바일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스마트폰 개발사들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 비주류 모바일 운영체제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물론 조립식 PC 구매자 대부분이 윈도를 설치하 듯, 프로젝트 아라를 구매한 사용자 역시 대부분 안드로이드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설치 편의성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아라의 한계
명확한 비전이 드러남에 따라 사용자의 기대감도 한층 커지고 있는 프로젝트 아라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휴대성이다. 규격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제품 크기를 그 이하로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게 면에서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부품을 최대한 집약해 무게와 두께를 줄이고 있는 기존 스마트폰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때 제조사들이 의욕적으로 밀어부친 조립식 노트북이 처참하게 실패한 이유도 '휴대성의 부재'였다. 모바일을 지향하는 제품이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다.
제조사마다 부품의 정의를 다르게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퀄컴의 경우 모바일 프로세서에 통신칩셋을 추가한 AP(스냅드래곤)를 밀고 있고, 삼성전자의 경우 모바일 프로세서에 메모리와 낸드플래시까지 추가한 AP(엑시노스)를 생산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P(테그라)는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서를 추가한 탓에 다이 사이즈가 다른 AP보다 훨씬 크다. 이처럼 제조사별로 중구난방인 부품 규격을 구글이 강제할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다. (물론 스냅드래곤의 경우 2X1 모듈로 제작하고 1X1 모듈에 낸드플래시를 추가하고, 엑시노스의 경우 2x1 모듈로 제작하고 1x1 모듈에 통신칩셋을 추가하는 형태의 해결법이 존재한다. 다이 사이즈가 큰 AP의 경우 2x2 모듈로 제작하면 된다)
AP의 예를 들었지만, 다른 부품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게 모듈 규격을 빡빡하게 강제할지, 아니면 제조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믿을 수 없겠지만, 조립식 PC 시장의 경우 제조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기술을 적용한 프로세서나 메모리가 나오면 메인보드의 규격이 요동치는 이유다)
디자인을 보면 알겠지만, 제품이 충격에 상당히 약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경우 해골 모형이 폭삭 무너지듯 제품이 산산조각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문제는 케이스를 입힘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직 시장에 정식 출시되지도 않은 제품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일이다. 모든 게 기자의 기우일 수도 있다. 결국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이다. 프로젝트 아라가 사용자의 선택권을 배제한채 제조사 마음대로 흘러가는 지금의 스마트폰 시장을 바꿀 수 있을까? 오는 15일 정식 공개될 프로젝트 아라에 사용자들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프로젝트 아라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프로젝트 아라 모듈 디벨로퍼 킷(MDK) 홈페이지(http://www.projectara.com/mdk/)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젝트 아라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라면 미리 살펴보자.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