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SLR을 닮은 최고급 미러리스 카메라, 후지필름 X-T1
플래그십(Flagship)이란 함대의 사령관이 타고 있는 배로, 지휘관의 지위를 상징하는 깃발이 달린 기함(旗艦)이다. 이 단어가 제품에 붙으면 해당 제조사의 주력상품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제조사의 중심이 되는 혹은 이끌어가는 제품이라 해석해도 된다.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다. 카메라 제조사의 플래그십 제품은 자사의 모든 광학 기술과 이미지 처리 기술을 집약한 제품이다.
지난 2014년 2월 20일, 후지필름이 플래그십 미러리스 카메라 X-T1을 선보였다. 사실 후지필름은 미러리스 카메라 중에 X-Pro라는 플래그십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었다(2012년 3월 X-Pro1 출시). X-Pro 시리즈는 RF(Range Finder) 카메라 디자인의 제품으로, 바디가 작고 얇아 단렌즈와 어울리는 제품이다. 반면 X-T 시리즈는 SLR 카메라 디자인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커, 표준 줌렌즈와 어울리는 제품이다. 지금부터 X-T1은 어떤 제품인지 알아보자.
복고풍 디자인과 독특한 조작 다이얼이 특징
우선 제품 외형은 SLR 카메라가 생각나는 복고풍 디자인이다(사실 X-Pro1도 복고풍 RF 카메라 디자인이다). 제품 상단에는 ISO 감도, 셔터속도, 노출 보정 다이얼 등을 배치했다. 번들 렌즈는 조리개 링까지 갖춰, 아날로그 카메라의 '손맛'까지 준다. 필름 어드밴스드 레버(필름 재장전용 손잡이)나 리와인드 크랭크(다 쓴 필름을 되감는 장치)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옛날 카메라를 보는 느낌이다.
일반 미러리스 카메라가 한두 개의 조작 다이얼로 사진 밝기를 조절하는 것과는 조작법이 많이 다르다. 이런 복고풍 다이얼로 얻는 이점도 있다. 셔터속도, ISO 감도, 노출 보정 등을 카메라 전원을 켜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카메라(미러리스, DSLR 모두)는 이를 확인하려면 카메라 전원을 켜고, 액정 창 등에서 설정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X-T1은 카메라 전원을 켜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노출 값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한가지 있다. X-T1은 촬영모드 선택 다이얼이 없다. 복고풍 카메라로 유명한 니콘 Df는 각종 아날로그 다이얼 외에도 M(수동), A(조리개 우선), S(셔터속도 우선), P(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다이얼이 있다. 사실 필자도 이 제품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 모드 다이얼이 없어, 완전 수동으로 촬영해야 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제품의 모드 다이얼은 렌즈 조리개 링과 셔터속도 다이얼에 숨어있다. 셔터속도 다이얼을 보면 여러 셔터속도 수치 중 A라는 값이 있는데, 다이얼을 여기에 맞추면 셔터속도 자동이 된다. 다시 말해 사용자가 맞춘 조리개 수치에 따라 셔터속도가 자동으로 바뀌는 조리개 우선 방식이다. 반대로 렌즈에 있는 단추를 A에 맞추면 셔터속도에 따라 조리개가 자동 조절되는 셔터 우선 방식이 된다. 양쪽을 모두 A에 놓으면 적정 노출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프로그램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수동으로 촬영하려면 양쪽 모두 원하는 값으로 맞추면 된다. 추가로 왼쪽에 있는 ISO 감도 다이얼에도 A가 있는데, 다이얼을 여기에 맞추면 감도가 자동 조절된다.
각각의 다이얼 밑에는 조작 레버도 있다. ISO 감도 다이얼 밑에는 릴리즈 모드(연사)를 선택할 수 있는 레버가, 셔터속도 다이얼 밑에는 측광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레버가 있다. 수 많은 세부 조작 기능을 모두 외부 다이얼/레버로 노출했기 때문에 일반 미러리스 카메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조작 편의성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허둥댔지만, 익숙해지니 직관적이고 재미있는 방식이다. 다만 모드 선택 다이얼을 갖춘 제품과 비교하면 조작 속도는 느린 편이다. 예를 들어 셔터속도가 60으로 맞춰진 상태에서 조리개 우선식으로 변경하려면 다이얼을 반바퀴 정도 돌려야 한다. 모드 선택 다이얼이 있다면 한 칸만 움직였으면 될 일이다.
기존 EVF는 잊어라
후지필름이 이 제품을 출시하면서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전자식 뷰파인더(이하 EVF)다. 필자는 콤팩트카메라나 미러리스 카메라를 볼 때 EVF 유무를 따진다. EVF가 있으면 후면 액정화면만 있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환경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X-T1은 전자식 뷰파인더를 갖췄을뿐만 아니라 전자식 뷰파인더의 성능/기능도 우수하다.
우선 일반적인 EVF보다 큰 화면을 내장했다. 배율로 따지면 고급 DSLR 카메라의 광학식 뷰파인더 수준이다. 이덕에 뷰파인더 사용 시 시원한 느낌이 들고, 수동 초점을 맞출 때도 더 정확하다(크게 보이기 때문에). 큰 화면 덕에 일반 EVF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기능도 있다. 바로 '듀얼 디스플레이'다. 뷰파인더에 피사체를 보여줌과 동시에 화면 한쪽 옆에는 포커스 어시스트(피사체의 일부분을 확대해 더 정확한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 화면을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층 더 정확하게 수동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EVF의 반응속도도 빠르다. 보통 EVF는 카메라를 빠르게 움직일 때 뷰파인더에 잔상이 남고, 주변 밝기가 심하게 바뀌면 화면이 잠깐 멈추기도 한다. 렌즈로 들어온 빛 정보를 디지털화한 뒤 뷰파인더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X-T1의 EVF는 이런 현상이 거의 없다. 게다가 뷰파인더 화면 표시수(EVF는 액정화면에 처리한 정보를 동영상처럼 보여주니 프레임이라는 개념이 있다) 초당 54프레임을 지원해 거의 끊김 없이 피사체를 바라볼 수 있다.
세세한 편의기능도 있다. 카메라를 세로로 세워 촬영하면 노출계, 셔터속도, 조리개, 배터리 잔량 등 내부에 표시되는 정보가 세로 화면에 맞게 자동으로 움직인다(EVF 자동회전). 스마트폰을 눕혀 사용할 때 하단 독바가 아래로 이동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구동속도, AF속도, 연사속도, 저장속도 모두 '빠르다'
제품의 성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빠르다'. 우선 전원을 켰을 때 초기 구동속도가 1초 이내다. 이를 통해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을 그대로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자동 초점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후지필름이 밝힌 자동초점 속도는 0.08초다. 이 시간을 직접 측정할 수는 없었지만, 날아가는 갈매기를 패닝(피사체를 따라 카메라를 움직이며 촬영하는 기법)으로 촬영하면서도 초점을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
연사속도도 빠르다. 최대 연사속도는 초당 8매 정도로, 같은 크기의 이미지센서(APS-C)를 탑재한 DSLR보다 빠르다. 사실 콤팩트카메라나 미러리스 카메라 중에는 연사속도가 빠른 제품도 있는데, 이는 이미지 센서가 작고 화소수가 낮아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X-T1은 일반 DSLR 카메라 수준의 대형 이미지 센서를 탑재하고도 빠른 연사속도를 지원한다. 연사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저장매체의 속도도 빨라야 한다. X-T1은 SD카드(SDHC) 중 전송속도가 가장 빠른 UHS-II 규격의 메모리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최고속도로 연속 촬영할 수 있는 매수는 35매 정도며, 이후부터 연사속도가 떨어진다.
플래그십 제품다운 내구성도 갖췄다. 제품 뼈대를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 견고하다. 특히 후지필름 미러리스 카메라 최초로 부품 결합부를 밀봉해, 방진/방습 성능까지 더했다.
드디어 탑재된 원격제어 기능
최근 등장하는 카메라는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등의 무선 통신기술로 스마트폰/태블릿PC 등의 스마트 기기와 연결할 수 있는 제품이 많다. 이를 통해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리거나 스마트폰에 저장한다. 그런데 많은 카메라 제조사가 스마트폰을 통해 카메라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했지만, 후지필름은 지금까지 사진 전송기능만 지원했다.
하지만 X-T1부터는 다르다. 사진전송 외에도 사진 및 동영상 등을 원격에서 모니터링하고 촬영할 수 있다(FUJIFILM Camera Remote 앱). 화면을 터치해 초점을 맞출 수도 있으며 셔터속도, 조리개 등의 노출 값도 조절할 수 있다.
로우패스필터 제거로 선명한 결과물
X-T1은 로우패스필터를 제거한 X-Trans CMOS II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다. 로우패스필터는 이미지 센서(CCD, CMOS 등 촬상소자) 바로 앞에 붙는 필터로, 이미지 센서에 흠집이 생기거나 먼지가 들어가는 물리적 피해를 줄여준다. 이와 함께 무아레 현상을 막아준다. 무아레란 색상이 섞여 사진에 물결무늬의 노이즈를 말한다.
그런데 로우패스필터엔 문제가 하나 있다. 스마트폰에 보호필름을 붙이면 화면이 약간 어두워지는 것처럼 로우패스필터도 이미지 센서에 들어가는 빛에 물리적 변화를 준다. 대표적으로 사진의 선예도를 떨어트린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로우패스필터를 제거한 제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전에 발생하던 무아레 현상은 화상처리엔진이나 이미지센서 제조기술로 극복했다.
로우패스필터가 없는 제품은 풍경 사진을 찍을 때 유리하다. 선예도가 높아 풍경 사진의 색감이나 섬세함 등을 잘 살릴 수 있다. 다음은 X-T1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X-T1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제품이다. 대형 이미지 센서를 탑재해 해상력이 높고, 아웃포커싱(배경을 흐리게 처리하는 기법) 효과를 만들기도 좋다. 특히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하는 듯한 조작감과 플래그십 제품다운 성능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고감도 사진 촬영 시 노이즈가 심하다. ISO 감도는 최대 25600까지 확장할 수 있는데, 이때 노이즈가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다음은 노이즈감소 2단계를 적용한 뒤 ISO 25600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부분에서 더 많은 노이즈가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제품 출고가는 번들렌즈 포함 199만 9,000원이다. 일반인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제품 자체의 성능은 충분히 그 가치를 한다.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의 완성도가 높고, 아날로그 방식의 조작 다이얼은 사진 촬영에 색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기존 DSLR 카메라나 미러리스 카메라와 조작방식이 조금 달라 어색한 감도 있지만, 직관적인 방식이라 금세 익숙해질 수 있다.
DSLR 카메라를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휴대성이 좋은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DLSR 카메라 수준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이전에 사용하던 카메라보다 높은 성능과 조작감을 맛볼 수 있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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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