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5로 시장 굳히기에 나선 삼성전자
잠깐 자동차 얘기부터 하자. 현대자동차의 80~90년대 최고급 모델은 그랜저였다. 2000~3000cc급 강력한 엔진과 5명이 타도 넉넉한 차체는 한 자동차 회사의 플래그십(기함)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더 뛰어난 엔진과 차체 기술을 갖춘 신형 자동차가 출시됨에 따라 그랜저는 플래그십 모델에서 내려오게 됐다. 2400~3400cc급 엔진과 5명이 탈 수 있는 넉넉한 차체만으론 플래그십의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이번에 발표된 삼성전자 갤럭시S5의 처지가 그랜저와 같다. 삼성전자는 이제 명백히 노트 제품군을 플래그십(최고급), S 제품군을 하이엔드(고급)로 밀어붙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24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컨벤션센터에서 삼성 모바일 언팩 2014 행사를 개최하고, 상반기를 이끌어 나갈 스마트폰 '갤럭시S5(Galaxy S5)'를 공개했다. 갤럭시S5는 하드웨어 성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 갤럭시S 제품군과 달리 UX(사용자 경험)에 집중한 제품이다.
성능은 전작 갤럭시S4와 유사
성능 자체는 전작 갤럭시S4와 유사하다. 일단 화면부터 살펴보자. 크기 5.1인치, 해상도 풀HD(1,920x1,080), 선명도 432ppi의 슈퍼 AMOLED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 베젤(화면 테두리)을 극히 얇게 설계해 제품 크기를 유지한 채 화면 크기만 늘리는 게 최근 스마트폰 디자인의 추세다. 그런데 갤럭시S5는 이런 디자인 추세와 달리 화면 크기와 함께 제품 크기도 증가했다. 베젤이 얇으면 외부 충격에 취약해지는 만큼, 디자인보다는 내구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갤럭시S5에 적용된 슈퍼 AMOLED 디스플레이가 전작처럼 펜타일 방식인지, 아니면 개선된 RGB 방식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QHD(2,560x1,440) 해상도를 채택할 것이라는 세간의 소문과 달리 해상도는 풀HD 그대로다. 애플리케이션 호환성과 초고해상도에 따른 성능 부담 때문에 해상도 향상 경쟁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프로세서는 LTE 카테고리4(LTE-A, 광대역LTE)를 지원하는 퀄컴 스냅드래곤 801 쿼드코어 프로세서(2.5GHz)를 채택했다. 성능은 전작 스냅드래곤 800과 유사하지만, 이미지 처리 기능을 강화해 UHD(3,840x2,160) 동영상과 고해상도 사진을 한층 빠르게 저장한다. 스냅드래곤 801 프로세서를 바탕으로 갤럭시S5는 UHD, 30프레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카메라 촬영 시 실시간 HDR이 적용된다. 클럭 속도도 미세하게 빨라졌다.
카메라 기능 강화에 초점
후면 카메라는 한층 강화됐다. 1,600만 화소 신형 아이소셀(isocell) 센서를 채택해 사진의 선예도를 높였다. 이 신형 센서는 위상차 AF용 센서를 품고 있다. 때문에 갤럭시S5는 DSLR, 고급 미러리스 카메라처럼 위상차 AF와 콘트래스트 AF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AF를 지원한다. 이 기능을 통해 초점을 한층 빠르고 정확하게 잡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 기능을 '패스트 오토포커스(Fast Auto focus)'라고 이름 붙였다. 미국 IT매체 엔가젯에 따르면 갤럭시S5가 초점을 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0.4초에 불과하다.
아이소셀은 센서를 구성하는 화소와 화소 사이에 절연부를 형성함으로써 인접한 화소를 서로 격리시키는 구조를 채택한 삼성전자의 신형 카메라용 센서다. 빛이 주변 화소에 영향을 주는 간섭형상을 최소화해 빛의 손실을 줄이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빛을 받아 들이는 수광면적이 같은 크기의 구형 센서보다 30% 증가해, 어두운 곳에서도 보다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또한 촬영 후 사진, 동영상을 보정하는 기존 HDR 모드를 한층 강화한 '리치 톤 HDR' 기능을 추가했다. 이는 DSLR, 미러리스 카메라처럼 촬영 도중에도 실시간으로 HDR이 적용되도록 하는 기능이다. HDR은 역광이나 어두운 장소에서 흔히 발생하는 과다 노출을 방지해 한층 자연스러운 사진과 동영상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다만 경쟁사와 달리 광학손떨림보정(OIS)은 지원하지 않는다. 전면 카메라는 200만 화소 그대로다.
메모리(RAM)는 갤럭시S4와 동일한 2GB다.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노트3의 메모리가 3GB였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다. 저장공간은 모델별로 16GB, 32GB이며, 기본 탑재 앱을 줄여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10GB, 26GB 수준으로 향상됐다. 또한 SDXC를 지원하는 신형 마이크로SD카드 슬롯을 채택했다. 128GB 마이크로SD 카드를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배터리 용량은 2,800mAh이며, 교체할 수 있다. 또한 갤럭시노트3와 마찬가지로 USB 3.0을 지원한다. 본체는 갤럭시S4보다 크고 무거워졌다(142.0x72.5x8.1mm, 145g). 노트 제품군의 가장 초기 모델인 갤럭시노트1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활방수 기능을 품고있는 점도 흥미롭다. 갤럭시S5는 갤럭시S4 액티브처럼 IP67급의 방수, 방진 기능을 지원한다. 얇은 물에 짧은 기간동안 빠져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강력한 방수, 방진 기능은 아닌만큼 시험해보겠다고 제품을 물에 빠뜨리는 것은 곤란하다. 제품 위에 물이 쏟아져도 고장나지 않게 보호해준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지문 인식 기능 추가, 아이폰 따라하기?
몇 가지 유용한 기능이 추가된 점도 눈에 띈다. 일단 보안을 강조하기 위해 전면 홈버튼에 지문인식 센서를 추가했다. 이를 활용해 스마트폰의 화면 잠금을 해제할 수 있고, 페이팔 등 온라인 결제 사이트에서 지문만으로 본인인증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애플 아이폰5s에 추가된 지문센서 터치아이디와 유사하다. 다만 손가락 전체를 인식하는 터치아이디와 달리 손가락을 밀어 내려 지문을 스캔하는 스와이프 방식이다.
후면 카메라 하단에는 심박수를 확인해주는 심박센서가 추가됐다. 제품 자체를 헬스케어로 활용할 수 있고, 심박수 측정 결과를 삼성 기어2, 삼성 기어 핏 등 다른 헬스케어 기기에 전송해 사용자 스스로 운동량을 관리할 수 있다.
이밖에 LTE와 와이파이 망을 동시에 활용해 한층 빠르게 데이터를 내려받는 '다운로드 부스터', 통화와 메시지 관련 기능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을 모두 차단하고 화면을 흑백으로 바꿔 전력소모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울트라 파워 세이빙 모드',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지문을 통해 본인 인증을 받기 전까지 파일을 찾거나 실행할 수 없도록 해 타인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프라이빗 모드' 등을 탑재했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4.4 '킷캣'이며, 기존 갤럭시S 제품군처럼 외장 버튼을 채택했다. 하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메뉴, 홈, 취소 버튼이 아닌 멀티태스킹, 홈, 취소 버튼 순으로 배치돼 있다. 멀티태스킹 버튼 사용을 권유하는 구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기 위해서다. 메뉴 버튼은 앱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
제품 색상은 검은색, 하얀색, 파란색, 금색 등 네 가지이며, 후면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펀칭 패턴이 적용됐다. 펀칭 패턴이란 미세한 점이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디자인이다. 출시일은 오는 4월 11일이며, 150개국에 동시 발매된다(국내 포함).
저렴한 출고가를 바탕으로 시장 굳히기에 나서
출고가는 아직 미정이지만, 상당히 저렴하게 책정될 전망이다. 미국의 경제지 블룸버그 통신은 "갤럭시S5를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미국 이동통신사가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작 갤럭시S4보다 100달러 가량 저렴할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의 경우 전작 갤럭시S4 LTE-A의 출고가는 95만 원 선이었다. 갤럭시S5의 출고가는 80만 원 선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갤럭시S5는 여기저기서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공급받은 퀄컴 스냅드래곤 프로세서를 전면에 내세우고, 생산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메모리의 양을 줄였다. 다른 부품도 수직계열화를 달성한 계열사로부터 공급받았다. 이를 통해 생산 원가를 줄였고, 낮아진 생산 원가만큼 출고가를 낮춰 타사와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눈에 띄는 하드웨어 사양 강화는 없지만, 사실 경쟁사의 주력 스마트폰과 비교해도 그리 뒤떨어질 것은 없다. 사양이 유사하면 사용자는 결국 가격이 낮은 제품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전략은 간단하다. 갤럭시S5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공급해 경쟁사를 시장에서 배제하고,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굳힐 계획이다. 점유율이 낮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예: HTC, 소니)는 이러한 삼성전자의 전략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HTC와 소니의 신형 스마트폰이 갤럭시S5와 경쟁해 얼마나 선방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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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