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시절의 소니 노트북, 지금 봐도 우와~
특정 브랜드가 한 시대를 풍미하며 곧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자리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마트폰 부문의 '아이폰',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부문의 '워크맨', 그리고 게임기 부문의 '닌텐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러한 자리를 끝내 유지하지 못하고 좌초할 위기에 빠진 하나의 브랜드가 가시화되고 있다. 바로 프리미엄급 노트북의 대명사였던 소니의 '바이오(VAIO)'다.
일본 소니는 6일 실시된 3분기 실적발표회장에서 바이오 브랜드를 포함한 PC사업부를 투자펀드회사인 일본산업파트너스(JIP)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소니는 작년 1,100엔(약 1조 2,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으며, PC사업부가 적자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
소니의 PC사업부를 인수받은 JIP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 지는 아직 미정이다. 사모펀드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무리하게 회생작업을 진행할 가능성은 낮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를 다른 업체에 되팔 가능성이다. 2005년 IBM이 자사에서 운영했던 PC 사업부를 중국 레노버에 매각한 것과 유사하다. 이 결과로 IBM의 노트북 브랜드였던 ‘IBM 싱크패드’는 '레노버 씽크패드'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다만, 당시 IBM의 PC 사업부는 적자 상태도 아니었고 충분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막대한 적자 끝에 털어내듯 사업을 넘긴 소니의 사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엔 JIP가 바이오 브랜드를 포함한 소니의 PC사업부를 청산해 버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바이오 브랜드는 자체가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
현재 이런 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과거 바이오 브랜드의 영화를 기억하고 있던 매니아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던 소니, 그리고 이런 소니가 자사의 기술력을 집결시켜 완성한 최상급 노트북이 바로 바이오였기 때문이다.
PC 혁신의 상징이었던 바이오, 잘나가던 시절
사실 소니가 노트북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바이오 시리즈의 첫 번째 제품인 ‘PCV-T700MR’은 1996년에 미국에 첫 출시되었다(일본에는 이듬해 출시). 게다가 이 제품은 노트북도 아닌 데스크탑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니의 노트북 사업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애플의 첫 번째 노트북인 '파워북'의 디자인과 생산을 담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소니에서 만들고 애플에서 출시한 최초의 파워북은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에 나온 다른 모든 노트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높은 휴대성을 갖춘 세련된 디자인뿐 아니라, 마우스 없이 커서 조작이 가능한 트랙패드 및 트랙볼을 탑재하는 등, 기존의 휴대용 PC와 확연한 차별점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워북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바이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바이오는 영상과 음향에 관련된 기능을 크게 강조했는데, 바이오(VAIO)라는 이름 조차도 영상과 음향의 조직체를 뜻하는 '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의 약자였다. 2008년 이후엔 'Visual Audio Intelligent Organizer(지능적 영상 음향 조직자)'로 의미가 다소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콘셉트는 그대로 이어져 온 셈이다.
실제로 PCV-T700MR 바이오 데스크탑은 TV 수신 기능 및 영상 입력 기능, 동영상 캡처 기능, 그리고 CD 레코딩 기능 등, 1996년 당시 PC로선 파격적인 고급 AV기능을 다수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체 크기가 타사 제품의 절반 수준이었고 여기에 당시 최고의 화질을 자랑하던 소니 트리니트론 모니터를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가격이 40만 엔(약 420만 원)에 달했음에도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바이오 = 프리미엄 노트북의 공식을 확고히 한 것은 이듬해인 1997년에 출시된 'PCG-505(통칭 바이오 505)'시리즈였다. 당시 팔리던 일반적인 노트북은 무게가 2Kg 정도만 되어도 초경량이었고 두께는 40mm에 육박했다. 하지만 바이오 505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1.35kg의 무게와 23.9mm의 두께를 실현,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으로 기록된다.
두께와 무게뿐 아니라 디자인도 큰 호평을 받았다. 플라스틱이 아닌 마그네슘 합금 재질을 사용해 질감을 향상시켰고, 검은색이나 회색 일색이었던 여느 노트북과 달리 잔잔한 은색을 띈 보라색을 본체 전면에 도입,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갖고 싶은' 노트북의 대명사로 등극했다.
이후에도 바이오 시리즈의 파격은 계속 이어져 1998년에는 크기를 더 줄이고 최초로 회전식 카메라까지 탑재한 'PCG-C1'이 등장했으며, 2001년에는 분리형 도킹스테이션으로 휴대성과 다기능을 동시에 추구한 'PCG-R505', 2002년에는 노트북 수준의 공간활용성과 디자인을 데스크탑에 도입한 'PCV-W101'이 등장하는 등 인기를 이어갔다.
바이오 시리즈의 전성기 중에는 단순히 작고 예쁜 것에 그치지 않고, 다소 파격적인 콘셉트를 도입한 제품도 종종 나왔다. 노트북에 고성능 캠코더, 회전 LCD를 결합한 'PCG-GT3/K(2002년)', PC의 인테리어 소품화를 노리던 'type L(2006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PC를 칭하던 'type U(2006년)'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었다.
전성기의 끝, 그리고 안타까움
하지만 이런 바이오의 전성기는 2007년 즈음에 들어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 한없이 번창할 것 같던 일본의 거품경기가 바닥을 드러냈고,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시작으로 전반적인 소비력이 크게 축소됨에 따라 고급, 고가 전략을 추구하던 소니의 바이오 시리즈는 점차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IT업체 전반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 됨에 따라 한때 절대적이었던 소니의 기술적 우위도 점차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이나 대만, 중국 등에서 저렴하면서도 만만찮은 품질을 갖춘 노트북을 대량으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바이오 시리즈는 경쟁력을 크게 상실했다. 스마트폰, 태블릿PC를 비롯한 신세대 모바일 기기의 대두 역시 바이오의 몰락에 한 몫을 했다.
지금, 소니 바이오 브랜드의 소멸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업을 인수한 JIP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그리고 바이오 브랜드의 사업을 이어받고자 하는 기업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향후 바이오라는 이름이 'PC 혁신의 상징'으로 다시 언급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소니, 그리고 바이오의 전성기를 기억하던 사람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울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