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에서 벗어나 서버를 엿보는 ARM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내장된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사(Architecture)로 유명한 ARM이 서버용 프로세서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 5일 서버 플랫폼 표준을 발표했다. '서버 베이스 시스템 아키텍처(SBSA, Server Base System Architecture)'라고 부르는 이 표준 규격은 ARM의 최신 프로세서 아키텍처 ARMv8-A를 기반으로 한다. ARMv8-A는 애플의 64비트 프로세서 A7에 도입된 규격으로, 아이폰5s, 아이패드 에어,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 등에 적용돼 있다.
(ARM은 원래 ARMv8-A 아키텍처를 ARMv8으로 불렀으나, 자동차 및 임베디드용으로 개발한 ARMv8-R 아키텍처를 발표함에 따라 개명했다. 참고 바란다)
SBSA의 의의를 이해하려면 어떤 회사가 이 표준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ARM이 밝힌 협력사는 다음과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윈도 서버), 레드햇(레드햇 리눅스), SUSE(수세 리눅스), 캐노니컬(리눅스 우분투), 리나로(리눅스 개발 및 표준 제정), 시트릭스(유닉스 및 가상화솔루션) 등 서버용 운영체제 개발사와 AMD(옵테론 A), 브로드컴(ARMv8 기반 64비트 서버 프로세서 발표, 이름 미정), 어플라이드마이크로(엑스진), 캐비움(프로젝트 썬더) 등 프로세서 개발사 그리고 HP, 델 등 서버 완제품 제조사가 참여한다. 인텔을 제외한 나머지 서버 관련 회사들이 모두 한 발 걸친 셈이다.
사실 서버 시장은 인텔의 독무대였다. 서버용 운영체제는 윈도, 리눅스, 유닉스가 경쟁하고 있지만, 서버용 프로세서는 인텔 제온(Xeon) 프로세서가 낮은 TDP(열설계전력)와 높은 성능을 바탕으로 독주했다. IBM이 파워PC를 포기하고, AMD의 옵테론이 별 다른 힘을 쓰지 못하면서 인텔 제온의 점유율은 나날이 증가했다. 무어 인사이트&스트래터지 팻 무어헤드(Pat Moorhead) 애널리스트는 "2013년을 기준으로 인텔의 서버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한다"며, "AMD의 점유율은 고작 4.5%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친환경설계가 서버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제온 프로세서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제온 프로세서의 막대한 성능을 유지하려면 강력한 냉각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는 곧 서버 유지비용(전기세)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 많은 회사가 IDC를 구축하며 서버 유지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고, 대안으로 떠오른 게 저전력 프로세서 아키텍처 ARMv8이다. ARMv8 기반 프로세서로 열이 적게 방출되는(전기소모가 적고, 냉각비가 적게 드는) 서버를 제작하겠다는 뜻이다.
서버 시장 진입을 향한 ARM의 행보는 2009년부터 시작됐다. 여러 개발사들과 접촉해 ARM 기반 서버 제작을 유도했다. 그 결실이 이번 SBSA다. SBSA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오라클 역시 ARM과 협력해 자바(Java)를 ARM 아키텍처에 최적화하고 있다.
ARM 마이크 뮬러(Mike Muller) 최고기술관리자(CTO)는 "이번 SBSA 발표를 통해 ARM의 서버 생태계가 급속히 성장하게 될 것"이라며, "개발사들이 ARM 아키텍처에 최적화된 서버 운영체제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인텔이 순순히 ARM의 서버 시장 진입을 허용할 리 없다. ARM을 견제하고, 에코 서버시스템 시장 진입을 위해 아톰 프로세서를 서버용 프로세서로 전환했다. 그렇게 등장한 프로세서가 바로 아톰 'S1200'이다. 이어 인텔은 아톰 베이트레일처럼 22나노(2013년 기준 가장 최신 공정이다)를 채택한 서버용 아톰 프로세서 아보톤(Avoton)을 출시했다. 아보톤은 TDP 6~20W로 ARMv8과 전력 소모량이 비슷하다. ARMv8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입장이다.
이번 발표로 인텔과 ARM은 모든 분야에서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ARM 프로세서가 장악한 모바일 시장에 끼어들기 위해 인텔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버 시장은 모바일 시장과 정반대다. 인텔 홀로 독주하고 있는 서버 시장에 ARM이 이제 막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현재 서버 시장은 인텔, 정확히 말하자면 x86 기반 스택이 장악한 상태다. 서버,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등 모든 부분이 x86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ARM과 SBSA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이 벽을 넘어야 한다. SBSA에 포함된 협력사를 통해 서버, 운영체제는 ARM 아키텍처로 끌어들일 수 있을 전망이다. 이제 애플리케이션이 ARM 생태계에 합류할 수 있도록 ARM 서버만의 강점을 보여줘야 한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