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예술을 더하다, 데카르트 마케팅
기술(技術)과 예술(藝術). 언뜻 의미가 전혀 다른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단어는 기술에서 나왔다. 기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다. 테크네는 '작품을 만드는 능력'을 뜻한다.
프랑스에서는 아트(art)라는 단어에 기술이라는 뜻과 예술이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처럼 기술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예술을 만든다. 비디오 아트스트 백남준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는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했다. 1974년 발표한 작품 'TV부처'는 TV를 보고 있는 부처를 CCTV로 찍어, 부처가 보고 있는 TV에 송출하는 모습의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성찰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기존의 그림이나 조각 같은 장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았다. 한 매체는 이런 백남준을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늘날 기술과 예술이 서로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나면 한층 더 진보한 기술이 등장하고, 일 년이 지나면 이전 기술은 이미 퇴물취급 받는다. 때문에 기술의 이미지는 점점 더 딱딱해지고 차가워지고 있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 데카르트 마케팅
마케팅 용어 중 '데카르트(Techart)' 마케팅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기술(tech)과 예술(art)을 합친 용어로, 특히 IT제품에 이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IT제품의 차갑고 기계적인 이미지에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을 접목해 감성을 더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 작품, 유명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같은 데카르트 마케팅이라도 그 방향이 다양하다. 제품 외관에 예술가나 브랜드의 작품 및 상징을 입히기도 하고, 예술가가 제품 디자인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아예 제품 자체를 예술품으로 승화하는 것도 있다.
제품 외관에 예술 작품을 더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는 스마트폰 케이스다. 특정 제조사를 지목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제조사가 세계적인 명화를 자사의 제품에 담아내고 있다. 충격 방지라는 본연의 기능에 보는 즐거움까지 더했다.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의 상징이나 장식을 케이스에 적용한 예도 있다. 크리스탈아트 전문업체 아니스데코는 액세서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큐빅을 사용해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든다.
카메라 제조사가 사진전을 여는 것도 데카르트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은 이미 그 자체로 예술이다. 카메라는 이런 사진을 찍는 도구기 때문에, 예술가(사진작가)가 해당 제품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캐논은 신진작가 8명이 자사의 DSLR 카메라 EOS D70로 작업한 결과물을 전시하는 사진전을 열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후지필름은 전쟁 사진의 거장 '로버트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 개최를 후원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제품 자체가 예술품이 되는 유형은 LG전자가 출시한 갤러리 OLED TV를 예로 들 수 있다. 갤러리 OLED TV는 명품 액자형 틀(frame)이 화면을 감싸는 형태의 디자인으로, 화면을 볼 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TV를 보지 않을 때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고갱의 '아레아레아' 등 명화가 화면에 나타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데카르트 마케팅이 반드시 성공하는 필승전략은 아니다. 제품으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우선 갖춰야 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더라도,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면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물론 마케팅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즉 기술과 예술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