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UHD 시대 좋든 싫든 활짝, 웨어러블 시대는... 글쎄?
사용자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 들이는 형태는 둘 중 하나다. '기존에 사용하던 기술이 모두 사라져 좋든 싫든 새로운 기술로 넘어가야 하는 형태'와 '사용자가 진정 그 기술의 필요성을 느껴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2014년 IT 시장의 화두인 UHD TV와 모니터는 전자에 해당한다. HD TV가 풀HD TV로 대체된 것처럼 풀HD TV 역시 UHD TV로 대체될 전망이다. 모니터도 마찬가지다. 4:3 비율의 모니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16:9 모니터가 차지한 것처럼, 풀HD 모니터 역시 어느 순간 시중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UHD 모니터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심으로 UHD 해상도를 반기는 사용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 불어오는 UHD 열풍은 제조사의 입김에 더 가깝다. 정체된 TV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UHD 패널을 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공정을 완성하고, UHD TV를 전략적으로 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4:3 비율보다 16:9 비율의 채산성이 더 좋기 때문에 4:3 비율 모니터를 모두 단종 시켰던 그때처럼.
슬프게도 이러한 제조사의 행보에 사용자는 간섭하지 못한다. 좋든 싫든 1~2년 후면 UHD TV와 UHD 모니터는 대세가 될 것이다. 풀HD TV와 풀HD 모니터는 HD TV와 4:3 비율 모니터가 사라진 것처럼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질 테다.
이 같은 현상은 고착화된 시장에서 자주 관찰된다. TV, 자동차, 이동통신 등 기존 사업자의 입김이 막강하고,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어려운 시장이 그러하다. 물론 신기술이 사용자에게 나쁜 것 만은 아니다. UHD TV는 풀HD TV보다 4배 선명하고, LTE는 3G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사용자의 선택권과 관계없이 신기술 혼자 치고 나가는 데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모든 신기술이 사용자에게 강제로 주입 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할 만큼 단점이 많은 기술은 사장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3D TV다. 3D TV는 영화, 스포츠 경기 등을 입체감있게 볼 수 있어 차세대 TV로 각광 받았으나, 오랜 시간 시청하면 눈이 피로하다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해 사용자에게 외면 당했다. 아무리 제조사가 강조해도 아닌 제품은 아니라는 경고랄까.
하지만 UHD TV는 3D TV만큼의 단점이 존재하지 않으니 무난히 받아 들여질 전망이다.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제품을 대규모로 생산해 가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가 완성되면 결국 UHD TV는 현재 풀HD TV와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해질 터. 과거 HD TV, 풀HD TV 때와 동일한 행보다.
그럼 이제 후자의 사례를 얘기해보자.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이다. 전문가와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던 스마트폰은 아이폰 쇼크 이후 우리의 삶 속으로 녹아들었다. 사용자는 아이폰에 열광했고, 이후 등장한 안드로이드에도 큰 관심을 보냈다. 제조사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 스스로 스마트폰을 원했다는 뜻이다. 사용자와 언론은 이를 혁신이라 했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몰락을 동반한다. 스마트폰 열풍은 피처폰(일반폰) 시대의 강자를 제물로 원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그들이다. 세계 1위의 핸드폰 제조사였던 노키아는 몰락할 대로 몰락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인수당하는 처지가 됐고, 모토로라 역시 구글에게 인수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누군가가 강요할 때보다 사용자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 그 파급력이 더 크다는 점이다. 사실 피처폰 시장은 고착화된 시장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슬림한 휴대폰이 잠깐 돌풍을 일으켰지만, 노키아의 아성을 흔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그러한 노키아마저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TV 시장도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이야 제조사가 주는 대로 넙죽 UHD TV를 받고 있지만, 사용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제품이 등장하면 그쪽으로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난 1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올라온 파하드 만주 칼럼니스트의 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CES 2014에 UHD TV, 커브드 TV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지만, 사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제조사의 아이디어는 바닥났고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현재 TV 시장은 피처폰 시장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이란 분석이다.
안타까운 것은 혁신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시장도 TV 시장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사가 스마트폰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혁신은 없었다"고 언론과 제조사가 지적하는 이유다. 혁신, 다시 말해 사용자가 진정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자취를 감추고 제조사의 필요에 맞춘 제품과 서비스만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커브드 스마트폰에 사용자가 냉소를 보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UHD TV와 함께 2014년 IT 시장의 대세로 주목받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는 두 가지 형태 중 어디에 해당할까. 안타깝지만 전자에 해당한다. 스마트폰 제조사 또는 관련 제조사가 스마트폰을 대신할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전자가 시장에서 통하려면 고착화된 시장이어야 한다. 사용자가 좋든 싫든 그 제품을 구매할 정도로 제조사의 입김이 강하면서, TV, 자동차, 이동통신처럼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우리 삶에 밀접해야 한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는 제조사의 입김이 세지도 않고, 생활필수품에 근접한 제품도 아니다.
그렇다고 웨어러블 기기가 사용자의 구매욕을 자극할 정도로 혁신적인 제품인 것도 아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당신에게 지금 시중의 웨어러블 기기가 정말 필요한 제품인가? 그 제품이 기대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여기에 "맞다"고 대답할 사용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시중에 등장한 웨어러블 기기가 실패의 쓴맛을 본 이유다.
그나마 후자에 가까운 웨어러블 기기도 존재한다. 구글글라스다. 하지만 구글글라스도 사용자가 진정 필요해서 관심을 가졌다기보다는 신기하니까 관심을 보내는 것에 가깝다. 구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출시를 미루고 사용자에게 구글글라스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2014년은 UHD와 웨어러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대부분의 언론이 입을 모았다. 필자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UHD TV와 모니터는 좋든 싫든 대세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가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에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핵심은 사용자다.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제조사의 배를 불리기 위한 제품은 제 아무리 많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도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